나의 결혼 제1 조건?

- 목회자만 아니면 결혼할 작정이었다

by Cha향기

긴 방황을 겪는 동안에, 몇 번의 사랑이 왔었고 그 사랑꽃은 처참하게 낙화했다. 그래서 사랑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맘먹고 비혼 주의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멋지고 예쁘다면 비혼도 쿨해 보이겠지만,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면, '에구, 키 작고 못생겨서 아무도 안 데려갔구나.'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다. 안 한 결혼이 아니라 못한 결혼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이 싫어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소개팅이 들어왔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었다. J는 전남 영암이 고향이었고 7남매 막내였으며 건설회사 계장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남자는 없을 것 같은 순둥이었다. 착한 남자였다. 단 둘이 만났을 때, 그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질러서 교사 앞에 앉은 학생 같았다. 소개해준 분이 나에 대하여 도대체 뭐라고 말했기에 J의 태도가 저 정도였을까? 의문사(누가, 언제, 어디서? 등등)로 출발하는 질문을 하면 단답형으로나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말없는 남자와 지내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래도 비호감은 아니어서 결혼하기로 하고 그다음 수요일에 상견례를 하자고 까지 해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지금의 시누이 남편이 한사코 부탁을 했다. 자기 처남을 한 번만 만나보라고...


시누이는 아름답고 멋진 여인이었다. 같은 교회에 다니며 성가대를 함께 하는 분이었다.


"그분을 보면, 그의 오빠는 안 보고 결혼해도 된다."


어머니는 시누이를 얌전하고 괜찮은 분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오빠이니 오죽하겠느냐면서 만나보지 않아도 된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인연은 모르는 것이지, 처녀, 총각이 서로 만나보는 것은 나쁠 것 없지."


옆집 아주머니도 L을 한 번 만나 보라고 부추겼다.


"언니야, 남자는 식성이 좋아야 된대. 그게 젤 중요하대."


내가 소개팅에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후배가 귀띔했다. 돈이 많거나 잘 생긴 남자가 아니라 식성이 좋은 남자가 결혼 조건이 된다는 것을 그때까지만 해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여간, 나의 결혼 제1 조건은? 목회자가 아닐 것, 그다음은 식성이 좋고/ 이야기를 술술 할 수 있고(J에게 지레 질려서)/ 신앙이 좋으면 금상첨화~


이런 조건을 가슴에 품고 L을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J와 상견례를 하루 앞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그날, 내가 서정주의 '푸르른 날'이라는 시를 읊은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늘이 몹시 푸른 가을 날이었던 것 같다.)에 L을 만났다.


L은 국가직 공무원(검사원)이라고 했다. 7남매 장남이고 전남 영암이 고향이랬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아니니 제1 조건은 통과다. 당시에 공무원이 결혼 조건으로 썩 좋지는 않을 때였다. 나에게는 그게 문제 될 게 아니었다.


"누나 , 남편을 따라다니며 발령나는 대로 팔도 유람한다 생각하며, 글 쓰고 그러면 되겠네."


한 후배가 L의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것을 좋게 해석해주었다.


그즈음의 나는 식성이 몹시 까다로웠다. 긴 방황을 하던 5-6년 동안 김치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입안에서 김치 냄새가 나는 게 딱 싫었다. 그런데 소개팅 당일에 된장찌개를 시켰다. 마땅하게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먹는다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점잖게 생긴 L은 밥을 천뚱(먹방계 레전드를 찍은 인기 유튜버)처럼 맛있게 먹었다. 나는 두 숟갈 정도 먹은 것 같다.


"혹시 그 밥 남기실 건가요? 그러면 제가 먹어도 될까요?"


가난하게 살았던 L은 식성이 좋고 말고 이런 푸념은 사치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남긴 밥은 물론이거니와 된장 뚝배기도 끌고 가서 후루룩 먹어댔다. 후배의 말대로라면 그는 제2 조건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다.


커피를 마시러 갔다. 으레 커피를 주문했었다.


"커피는 안 좋다고 하니 우유를 드시지요?"


L이 주문하는 도중에 끼어들었다.(평소의 내 성격상 이런 경우는 땡 탈락이었을 것인데)


'엥? 에라, 모르겠다.'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알겠어요, 저도 목장 우유 주세요."


L은 그때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술술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박수를 치며 웃기도 했다. 아재 개그도 몇 개 들었던 것 같다.


"제가 말이 좀 많죠? 사실 저는 말이 없는 사람인데, 기분이 좋으면 계속 말이 하고 싶어 져요."


제3 조건도 무사히 통과했다.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묻지도 않았는데 L이 자기 어깨가 대검에 찔린 얘기를 장황하게 하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었단다. 교회에 가지 말라는 상관의 지시를 무시하고 교회에 갔다가 총끝에 있는 대검으로 찔림을 당했다고 했다. 그 당시, 맘속으로는 총으로 쏠지라도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했다.


"지금도 어깨에 이만한 흉터가 있어요." L은 무용담처럼 그 때의 이야기를 했다.


'우와, 목회자는 아니지만 신앙은 순교자 수준이니 금상첨화로세.'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이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처남은 C 선생이 맘에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겠다고 하네요. 마음의 결정을 내려주세요."


소개를 해주었던 지금의 시누이 남편이 귓속말을 했다.


"아시다시피 내일 J와 상견례를 하기로 했으니 그렇다면 오늘 바로 결정을 해야겠군요. 저도 싫지는 않아요."


소개팅한 당일에, 3개월 후에 결혼을 하자고 날짜(12월 11일)까지 잡았다.




서로 맞춰보고 연애할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우리는 서로의 성격을 맞추는데 한평생이 걸리는 것 같다.


[계속]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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