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공직에 사표를 냈다!

- 8살, 5살짜리 남매가 있었다(나는 전업 주부였고) ~

by Cha향기

혹시 이런 병이 있을까? '돈에 대해 감각이 둔한 증후군?' 아마 나는 그 증후군인 것 같다.


소개팅을 하여 처음으로 만났던 당일에 결혼 날짜를 잡았지만, 남편이 될 사람의 연봉이 궁금하지 않았다. 연봉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훗날에 알았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나는 그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대체로 돈에 대하여 둔감한 사람이니까.

나는 사소한 것에 계획적이고 꼼꼼한 편인 반면에, 중요하고 큰 일은 체크해보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남편이 반지하에 신혼방을 구해둔 것도 모자라서 시누이와 함께 사는 상황을 만들어 두었어도 그러려니 했다. 남편이 결혼 후 몇 개월 만에 지방으로 내려가자고 해도 그냥 그러자고 했다.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서 전세금을 빼고 사글세로 옮기니 통장에 약간의 여유돈이 생겼다. 이 때다 하고, 시댁에 가스레인지, 전화기 등을 설치해드리고 도배장판을 해드리자는 말을 내가 먼저 했다. 그냥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7남매 맏며느리 자리는 명절에 쉽게 비울 수 없어서, 결혼 20주년 정도까지는 친정으로 명절 쇠러 가본 적 없는, 다소 어리숙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은 참으로 다정했었다. 배가 불러서 머리 감기가 불편할 때에 나를 도와주었고 집안일을 대부분 도맡아 해 주었다. 아이가 밤낮이 바뀌어서 밤새 기저귀를 내놓고 아침쯤 되면 아이와 내가 잠이 들곤 했었다. 그러면 남편은 아침밥을 차려서 미주알고주알 적은 쪽지를 밥상에 올려 두고, 밤새 나온 천 기저귀를 빨아서 마당가 빨랫줄에 널어놓고 출근하곤 했다.


국가직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화순, 무안, 완도 등으로 발령이 났었다. 그때마다 묵묵히 짐을 쌌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있는 시험소로 차출 발령이 났을 때도 그러려니 하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집사 부부로,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 구역장 등을 하며 신앙생활을 했었다.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렸고 결혼 첫 달부터 수입의 10분의 1일은 구별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삶을 살았다.

서울로 올라온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딸이 8살, 아들이 5살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응급실을 통하여 입원을 했지만 차도가 전혀 없었다. 그 병원은 종합병원이었는데, 모든 검사를 다 해봤으나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 본인은 고개를 침대에서 1미리도 뗄 수 없다고 했다. 병 휴가용 서류를 제출하려고 진단서를 신청했다. 담당의사가 그랬다.


"진단서를 떼 드릴 수는 있는데 병명을 알 수가 없어요. 이 의학 사전을 살펴보고 남편의 증세와 가장 비슷한 것을 좀 찾아봐 주실래요?"


의사가 그러자 한다고 나는 그 두꺼운 의학사전을 한 장씩 넘기며 살펴보았다. 뇌수막염? 이 병이 그 당시의 남편 증상과 흡사했다. 그 병명으로 남편의 병가 서류용 진단서가 발부되었다.


"여보, 나 아무래도 죽을 것만 같아. 이때쯤 당신한테 고백할 게 있어, 사실 나, 결혼 전에 목회자가 되려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었어, 어머니도, 어떤 부흥사님이 '아들이 넷이니 한 명은 하나님께 바치세요?' 하니, '큰 아들이 제일 착하고 얌전하니 이왕이면 하나님께 큰 아들을 바칠게요.'라고 약속을 한 적이 있어."


엥? 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했던 제1 조건이 목회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는데?


"지난밤에 하나님께 회개했어. 살려만 주신다면 한평생 헌신하며 사는 목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어."


"당신이 그런다면 할 수 없죠."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남편이 죽는 것 보다야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목회자 아내가 되는 게 낫겠지.


"기도원에 가서 담판을 짓겠어. 평생 처음으로 기도원이란 데를 한 번 가봐야겠어."


남편이 우기니 할 수 없이, 병원에서 퇴원하여 기도원으로 갔다.


"돌아올 때는 내 차를 몰고 올 테니까 반드시 내 차를 가져가야겠어."


남편이 한사코 자신의 차를 이용하여 기도원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남편의 차를 제부가 운전하여 지인이 소개해준 기도원으로 갔다. 거기서 두 달 정도 보낸 듯하다. 남편은 차차 앉을 수 있었고, 설 수도 있고 걷기도 했다.


어느 날. 계곡에 앉아서 이런 말을 했다.

"이거 안 들려? 천군 천사가 찬양하는 소리?"

남편은 딴 세상에 있는 듯했다.


"이 세상은 잠깐이고 영원한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종으로 살다가 주님 나라에 가야지."


남편은 10년간 몸담았던 공직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이듬해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늦깎이 신학생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았던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전업 주부로 살았던 나는, 졸지에 신학생의 아내가 되어 '어린이 영어 공부방'을 개설하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계속]

[사진: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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