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본능도 있었네?
일단 각 조에 태블릿을 한 대씩 나눠주어 검색하고 자료를 찾도록 했다. 이러한 활동을 하기에 편리하도록 모든 교실이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교사들은 대부분 수업 자료를 챙겨서 넣어 다니는 카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수업시간마다 카트를 끌고 다닌다. 수업에 챙겨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가 무난히 잘 짜이고 수행평가를 위한 준비 활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면서 모둠들이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엿보았다.
- 이건 말이야, 먼저 나라를 잘 정해야 해.
- 맞아, 일본 중국, 미국 이런 건 다른 조도 할 거야.
- 그렇지? 좀 특색 있고 궁금한 나라를 검색해보자
- 그게 좋겠네
서로 의논하며 진지하게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중일이가 모둠원들을 이끌며 활동을 진행하는 모습은 대학생 수준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진행하는 폼이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조들도 서로 의논하고 각자가 맡을 역할을 순조롭게 잘 정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의 작품이 나올 것 같고 수행평가 점수도 대부분 A 등급(Excellent Job)일 것 같다.
그런데 조원 이름이 잘 적혀 있는지 확인한 후에 도장을 찍어주려고 다니는데, 중일이네 조원 이름 적는 란은 역시나 창의적이다. 조원 이름 다음에 괄호를 하고 조원들을 각각, '두목/ 오른팔/ 왼팔/ 마약상/ 조직원'이라고 적어놓은 게 아닌가?
"니가 두목이라고? 모둠 활동이 무슨 패의 조직이냐?"
- 당연히 이 엉아가 두목이죠." 중일이가 거들먹대며 말한다.
"마약상은 누군데?"
- 정준이요."
"왜?"
- 어울리잖아요?
"넌 두목에 어울리고?"
- 그렇죠?
에구, 중일이는 조금만 틈이 보이면 나대려고 한다. 그래도 이번 수행평가 준비과정을 지켜보니 중일이가 진행 본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나 언제나 열정적이고 무엇이든지 잘하는 중일이가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