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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May 10. 2023

저는 '마·혜·자·'입니다

- 당신은 '마·해·자·'신가요?

요즘 학생들은 신조어 제조기처럼 말을 곧잘 만든다.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자기네들끼리는 잘 통한다. 그럴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J가 하필 '쓰기' 수행평가 보는 날 결석했다. 그다음 날 등교한 J에게 <우선 급식권>을 발부해 주었다.


"점심 식사한 후에 곧바로 교무실로 오는 것 잊지 마. 영어 수행평가 봐야지."


J가 점심을 우선으로 먹은 후에 수행평가는 보러 오지 않을 것 같아 살짝 걱정이 됐다. 

J로 말할 것 같으면, 걔는 공부에는 관심 없는 학생이다. P가 그의 남친이다. 지난해부터 그들은 꽁냥꽁냥 잘 지내는 사이다. 쉬는 시간마다 그들은 자석처럼 붙어 다닌다. 복도나 구름다리에서 둘은 손을 잡고 있기도 한다. 아무튼 J는 열애 중이다.  


J는 영어에 대한 기본 실력이 탄탄하다. 그런데 J는 수업 시간에 졸기 일쑤다.  J가 졸고 있는 모습은 기묘하다.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꼿꼿이 앉아 있지만 알고 보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동상)처럼 숙고하는 자세로 존다. 그래도 J는 수업 중에 자기 순서가 되면 얼른 자세를 가다듬고 잠에서 깬다. 그런 후에 해당 과제를 척척 해낸다. 아마 학원에서 제대로 배우고 있거나 개인 과외 지도를 받고 있을 것 같다.


점심 식사 후에 곧바로 교무실에 온 J는 주저 없이 수행평가지에  영어 문장을 가득 채웠다. 단어를 재배열하여 문장을 완성하는 것과 주어진 어휘를 활용하여 영작하는 문제였다. 수행평가를 보는 J의 옆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마실 때는 당연히 마스크를 벗게 된다. 


"어, 선생님~"

"왜?"


작성을 완료한 수행평가지를 제출하던 J가 활짝 웃었다.


"선생님은 '마·해·자·'시네요?"

"뭐? 내가 마귀라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J에게 물었다.

그러자 J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


"스크 피해자요. 샘, 마스크 벗으니 예쁘네요."

'아하, J는 마스크를 벗은 내 얼굴을 처음 봤구나.'


그렇다. 마스크 속에 숨겨진 얼굴은 천차만별이다. 마스크 때문에 예쁜 얼굴을 가리게 되어 손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스크 때문에 못난 얼굴을 가려 덕을 볼 수도 있다. J는 내가 마스크 때문에 손해 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에 급식 지도를 할 때면, 마스크를 벗고 식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라게 된다. 상상했던 모습과 전혀 딴 판인 학생이 대부분이다.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미모를 가진 학생이 꽤 많다. 빚어놓은 조각상 같은 얼굴을 가진 학생도 더러 있다. 그러나 연예인 못지않은 비주얼인데 정작 마스크를 벗으 실망스러운 얼굴인 학생 있다. 그럴 때면 차라리 마스크를 쓰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료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처음 부임해 올 때부터 마스크 낀 모습으로 대했다가 점심 식사하는 도중에 마주 앉게 되면 내심 놀랄 때가 있다. 상상 이상으로 딴 얼굴인 교사도 있었다. 코로나 시국 내내 마스크 때문에 이런 해프닝 일어나고 있다. 




"고마워. 내가 '마·해 ·자·'라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마·해·자·'라고 하는 말을 듣고 보니... 싫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 평균 4~5시간 정도 마스크 끼고 수업다. 게다가 안경을 낀 채로 마스크를 착용한다. 평생 안경잽이로 살다가 몇 해 전에 라섹수술을 했다. 그러나  노안의 진행 속도가 빨랐다. 그래서 안경이 다시 필요해졌다. 교사용 교재에 있는 글씨가 작아서 수업 시간에는 누진 다초점 안경을 낄 수밖에 없었다. 안경을 낀 채로 마스크를 착용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고충을...

다행히 나는 괜찮은 마스크를 알아냈다. 코로나 초기에 여러 종류의 마스크를 사용해 봤었다. 대부분의 마스크는 답답하거나 안경에 김이 서려 수업 내내 무척 불편했었다. 그러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스크는 안경에 습기가 차지 않을뿐더러 호흡하기도 참 좋은 국산 마스크다. 그래서 주야장천 그 마스크만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착용감이 좋고 안경에 김이 서리지 않는다.

그 마스크는 불편한 것을 넘어 이제는 나의 '애착 마스크'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단하려고 끼는 마스크지만 마스크를 끼고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가면 자신감이 팍팍 솟았다. 그래서  '나는 마스크 착용 수혜자야.'라고 맘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스크는 '반쪽짜리 가면' 같았다.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하면 마치 '복면가왕'에 나온 가수 같은 심리가 된다. 자신을 적당히 감추고 나면 만사가 편해진다. 장기간 마스크 착용 시절을 보내면서  남몰래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럴 때면, 코로나 이전에 교실에서 마스크를 끼고 지냈던 학생들이 떠오르곤 했다.


 '지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나? '연예인병'에 걸렸나?'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그런 학생을 고깝게 생각했었다. 그 학생들은 화장 중독이다. 그런데 화장을 하면 적발되차라리 마스크를 끼고 학교생활을 했었다.


 몇 년간 '애착 마스크'를 사용해 온 나는 이제야 그 학생들의 마음이 소롯이 이해가 됐다.



J의 방식대로 나를 표현해 봤다.  그렇다면,


"나는 '마·혜 ·자·'(마스크 수혜자)다."


마스크로 노안을 커버할 수 있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리고 교실에 입실하면 분장한 배우처럼 배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점점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끼지 않게 된다.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이를 데 없이 편하고 좋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 꽃가게에 들렀다. '어버이 주일'이라 예쁜 꽃 바구니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도 마스크를 끼지 않고 그냥 목에 걸고 갔다. 코사지를 살까, 꽃바구니를 살까 고민하다가 작은 화분을 골랐다. 어버이날을 앞둔 꽃 가게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핑크빛 미니 장미가 심긴 화분 하나를 골랐다. 그것이 내 눈에 가장 예뻐 보였다.


"어머, 진짜 예쁜 것 고르셨네요." 옆에 있던 점원이 말했다.


"어머나, 고객님 때문에 꽃이 죽네요."

가게 안쪽에 있던 분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주인임직한 그분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네?"

"아, 고객님이 고우셔서 꽃이 죽어 보인다고요."

"어머나, 난생처음 들어 보는 멘트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얼굴을 만져보았다. 헉, 내가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있었던 것을  새삼 확인했다. 그래서 곱게 보였던 것 같다.

내 옆에서 계산을 돕던 점원도 말을 거든다.


"아니에요, 진짜 참 고우십니다."


'곱다? 그러면 나를 노인네로 봤다는 말인데? 나이를 가늠해 보고 곱다고 여긴 거겠지. 장사 속이겠지? 혹시 진짜 내가 곱게 보였나?


별의별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그 말의 속뜻이 뭐 그리 중요하랴? 웃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아침부터 기분 좋자고 하는 말이었을 게 분명하다.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 꽃이 만발한 꽃 가게에서는 덩달아 곱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마·해·자·'일까? J가 나를 ···라고 불렀던 것이 빈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여태껏 '마·혜 ·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마·해 ·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곱다'는 말도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업되었다. 혼자 낄낄거리며 교회로 발길을 향했다. 




손에 든 미니 장미 화분에 짙은 향 났다. 오월의 싱그러운 바람이 그 향기를 온통 흩날리게 하고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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