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찬양Lim May 05. 2023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 한 명을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난해 가르쳤던 E는 '함구증'이었던 것 같다. 1년간 그 학생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모둠별 과제에 동참하고 수업시간에 집중도 잘했다. 졸지도 않았다. 학습지 과제나 교과서의 빈칸을 채우는 걸 보면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의 수업은, 모든 학생들이 예외 없이 순서대로 발표를 하거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E의 순서가 되면 학생들은 조용해진다. 나는 E가 잘 해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가령 대화를 듣고 답을 체크하거나 선다형 문제 등을 하도록 한다. 그럴 때마다 E는 손가락으로 정답을 가리켰다. 학생들은 그런 E를 놀리지 않았다. 대신에 E가 답을 잘 맞히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와우~ 워얼~"


그럴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모둠별 수행 평가 때였다. 모둠 활동지 뒷면에 각자가 했던 일을 적게 했다. 자료검색, 영어 문장 만들기, 밑그림 그리기, 색칠하기 등등 자신이 했던 일을 적어 놓았다. 모둠 활동의 맹점인 무임승차?(활동도 하지 않고 모둠의 점수를 불공평하게 받음)를 차단하기 위한 나만의 비법이었다. 활동지 뒷면에 E가 한 일도 적혀있었다. 그래서 E가 속한 모둠원들에게 물었다.(평가를 해야 하므로)


"E도 모둠에서 활동을 많이 했네요?"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라고 모둠 학생들이 말했다.

"그래?" '친구들과 있을 때는 E가 말을 하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단톡방에서 의견을 많이 냈어요."라고 모둠원들이 말했다.


E를 배려하며 벽 없이 잘 지내는 학급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너희들은 인성이 갑(최고)이야."라며 그들을 칭찬했다.




올해도 학기당 3 가지 수행평가를 실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1차 수행평가는 '자기소개하기'였다. 먼저 자기소개 대본을 제출하고 그것을 잘 숙지하여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올해 만난 K는 특수교육대상자다. 그래서 K가 속한 그 학급은 소위 통합 학급이다. 

어느 날, 그 반 담임에게서 연락이 왔다.


"K가 영어 수행 평가 때 발표를 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K의 어머님이 부탁을 하셨어요."

"네에, 잘 알겠습니다."라고 그 담임 선생님께 대답한 후에 K가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유심히 챙겨봤다.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K를 만나 대본을 썼더라며 미리 칭찬해 주었다. 


다행히 K는 지난해 만났던 E와는 달랐다. 말을 잘했다. 때로 질문도 했다. 수업을 방해하지 않을뿐더러 수업 준비도 잘해 왔다. 교복도 깔끔하게 챙겨 입고 있었다. 


단원 전체 학습지가 예습되어 있었다. 아직 진도가 나가지 않은 부분까지 미리 예습을 해놓았다. 글씨도 매우 정갈했다. 그래서 K의 어머니가 쓴 글씨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와 함께 학습지를 예습하는데 글씨는 자신이 썼다고 했다. 어느 날 K가 칠판에 답을 쓰는 순서였는데 또박또박 답을 썼다. 심지어 오류 없는 정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K가 특수교육대상자일까? 사실 K보다 더 답답하고 영어를 모르는 학생도 종종 있는데... 학급에는 한 두 명씩 특수교육대상자보다 더 지능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학생이 있다. 그런 학생들은 특수 교육 대상자 진단을 기피했을 것 같다지난해 만났던 E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아니었고 K는 특수반이다.


K는 지적 능력 부족이 아니라 다른 것이 약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궁금해서 담임께 그 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런 게 있어요."라고 담임 선생님이 말끝을 흐렸다.

"K가 수업을 참 잘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 그랬나요?"라고 담임 선생님은 안심하듯 말했다.



K는 자기소개 수행평가 발표 당일에 앞이 캄캄한 지 미리 작성했던 자기소개서 제대로 발표하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학급 친구들은 K가 조금이라도 더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숨 죽이고 경청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K가 무사히 자기소개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았다.


올해도 2차 수행평가는 리더스 시어터(readers' theater: 감정을 실어서 대본을 읽는 것)를 모둠별로 발표하는 것이었다. 모둠은 내가 임의적으로 짰다. 그러나 K가 속한 모둠에서 아무 불평이 없었다. 


'와아, 이 학생들의 인성 좀 보소.'


나는 맘 속으로 그 모둠 학생들의 배려와 포용에 놀라고 있었다. 


드디어 한 달 정도의 준비시간이 지났다. 리더스 시어터 모둠별 발표일이 되었다. K의 모둠은 맨 마지막 순서였다. K도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대본을 챙겨 들고 교탁 앞에 섰다. K가 맡은 역할이 있었다. (사실 자투리 시간에 모둠별로 한 5분간 연습할 시간을 몇 번 준 적이 있었다. 그럴 때 K의 모둠을 슬쩍 보니 순조롭게 연습이 되고 있었다. K도 모둠원들에게 어울려서 뭔가 읽고 있었다.)


아~ 그런데 발표 당일, 그 순간에 K는 머리가 하얘졌던 것 같다. K가 읽을 차례인데 랙이 걸린 듯이 발표가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둠원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경청하던 학생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D가 속삭이듯이 K의 귀에 대사를 읽어 주고 있었다. 평소에 D는 말이 많고 천방지축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아니었다.


D가 차근차근 도와주고 학급의 친구들이 응원한다는 마음을 받으니 용기가 났던 것 같다. K가 모기만 한 소리로 자기 몫의 대사를 읽었다. 나도 조마조마하고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그 모둠은 대본 읽는 감정선이 다 무너지고 말았다. 


"이거 뭐예요? K 때문에 우린 망했어요."

"이건 불공평해요."


만약에 누군가 저렇게 말했다면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우하하, 웃긴다. 저 모둠 망했어."


J는 그렇게 말하며 큰 소리로 분위기를 망칠 게 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J도 조용했다.

교실에 있는 30명 모두 한 마음이었다. 자신들보다 약한 부분이 있는 K가 자신의 몫을 잘 해내도록 모두가 마음을 모아주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숨을 죽였다. 숨이 멎을 뻔했다. 나는... 잠시 후에 나는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너네들 짱이다. 여러분의 경청과 배려에 감동받았어."


나는 학생들에게 두 손을 높이 들고 엄지척을 날렸다. 숨죽이고 있었던 학생들이 그 때야 긴장을 풀며 박수를 쳤다. 


"기분이다. 옛다, 모두들 칭찬 도장 한 개씩~ 선생님이 쏜다."

"와아~"


학생들은 도장 하나에 날뛰며 좋아했다. 그런 학생들이 자신보다 연약한 급우를 위하여 마음을 모아주고 기다려 줘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담임 선생님이 훈화를 했을까? 각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가정교육을 했을까? 그런 게 가르친다고 될까?



K는 좋겠다. 좋은 학교, 좋은 학급을 만나서 ㅎㅎ


[커버 사진: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