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왜?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는 어디 한 군데도 다른 사람보다 나아 보이는 구석이라고는 없다.
미용실에 가면 머리숱이 적고 머리카락이 힘이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 파마를 해도 제대로 웨이브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미용사가 말했다. 미용사 입장에서는 머리숱이 많고 탄력 있는 머리카락을 가진 고객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뒤통수가 못났다. 나의 뒤꼭지는 절벽 같다. 만약 뒤통수가 예뻤다면 헤어 스타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미용실에 가는 이유는, 납작한 뒤통수를 파마 웨이브로 은근슬쩍 캄푸라치해서 조금이라도 봉긋하게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마도 예쁘지 않다. 이마 주름도 있다. 요즘은 '이마 보톡스 시술'이 유행이다. 내가 바로 그 시술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마 주름은 '안검하수'를 하면 한결 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진 피부를 끌어올리고 눈에 쌍꺼풀을 해서 이마 주름을 펴주는 것이 안검하수 기법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고통을 견디며 안검하수(쌍꺼풀) 시술을 했다.
나의 눈썹은 양쪽의 위도가 비대칭이다. 점점 눈썹이 옅어지고 양쪽이 짝짝이다. 그래서 눈썹 문신을 했다. 그건 영구 화장술이 아니어서 몇 년이 지나면 다시 해야 한다. 그 시술을 할 때도 은근 따끔거리고 아프지만 꾹꾹 참았다.
한 때 아이라인 시술이 유행이었다. 아이라인을 펜슬로 그리는 것은 할 줄도 모르거니와 바쁜 아침 시간에 할 일이 못된다. 그래서 반영구 화장인 아이라인 시술을 받았다. 그 시술을 받을 때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끼고 지냈다. 못난 얼굴을 슬쩍 가리는 가면의 역할도 적잖이 했던 안경이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안경을 끼면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 결혼식 때 혼주 석에 앉아야 하니 안경이라도 벗어 제치려고 라섹 수술을 했다. 남편은 안경 낀 키 작은 여자를 싫어했단다. 그런데 키 작고 안경을 낀 나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나는 콧대가 낮다. 코뼈 자체가 없는 듯하다. 조카가 코에 필러 시술을 한 후에 내게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런데 그건 하고 싶지 않았다. 조카는 필러 시술을 몇 번 하더니 그것이 번거롭다고 아예 코뼈 성형 수술을 했다.
"이모도 코 성형 수술하고 싶으면 말하세요. 연락처 드릴게요."라고 조카가 말했다. 그런데 내키지 않았다.
나는 대문니가 벌어져 있었다. 앞니가 벌어진 것은 내게 엄청난 열등의식으로 남아 있었다. 껌으로 그 벌어진 사이를 메꾸어 보며, 대문니가 벌어지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대문니가 벌어져 있으면 어딘가 뻥해 보일 수 있다. 벌어진 대문니가 창피해 남 앞에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벌어진 대문니 때문에 자신감이 확 떨어지곤 했다. 그런데 약 20년 전쯤에, 목사 가족에게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치과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치과 의사가 내 고민을 듣고 '레진'이라는 치료를 해주셨다. 그 치과에서 깜쪽같이 벌어진 앞니를 붙였다.
나는 특이하게 젖니 하나가 어른이 된 이후에 빠졌다. 그 젖니가 빠진 자리에 심한 덧니가 났다. 그 반대편 송곳니도 영구치가 나지 않고 그대로 젖니였다. 치과에서 그 젖니를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했다. 치과 의사 말로는 엑스레이 상으로 숨어 있는 이가 보이긴 하나 그냥 무시하고 살면 된다고 했다.
나는 목이 짧아서 슬픈 사람이다. 목이 짧으니 머리를 길러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짧은 단발 파마가 나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헤어 스타일이다. 목이 길고 쇄골이 아름다운 분을 보면 그냥 기가 죽는다. 그런 사람이 참 부럽다.
내 피부는 도자기 피부가 아니라 닭살 피부다. 매끈한 피부를 보면 부럽다. 보들보들한 피부를 보면 그들이 피부 미인처럼 보인다.
내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신체 부위는 손이다. 매일 사람들 앞에 손을 내밀게 된다. 그럴 때마다 감추고 싶다. 일단 내 손은 유연성이 부족하여 손을 쫙 펴면 손등 쪽으로는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냥 뻣뻣하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은 언젠가 배구를 하다가 부러졌는데 제 때 치료를 하지 않아 구부러져 있다. 게다가 나의 엄지 손가락은 마디가 하나뿐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엄지가 두 마디다. 그래서 엄지를 오므려서 자유자재로 물건을 집거나 어떤 일을 할 때 애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엄지 손가락을 유연하게 잘 구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멋져 보인다. 그리고 부럽다. 진작에 나는, 이 엄지 손가락 때문에 장애 판정을 받았어야 했다. 나는 엄지 손가락의 마디를 구부릴 수 없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엄지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내며 살았다. 그러나 기타나 피아노를 배우기에는 불편한 엄지 손가락이다. 마디가 없는 엄지는 구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허리가 긴 사람도 부럽다. 키가 작으니 나는 허리가 없다. 나도 허리가 길고 날씬하다면 낭창낭창하게 치마를 입거나 벨트 있는 바지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글렀다.
다리는 짧은 데다 각선미 마저 별로라서 웬만하면 다리를 내놓지 않는다. 반바지를 입는 것은 차치하고 미니 스커트는 입어볼 생각을 안 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키라도 크다면 웬만한 부끄러움이 커버될 텐데...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나 싶겠지만 그래도 살만했다. 나는 그런 외모를 지녔는데 무엇으로 이렇게 잘 살아왔을까? 아마도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오후에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본관 현관 쪽으로 나서니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학생들이 구령대 쪽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재잘대기 시작했다.
"와, 영어쌤이다. 쌤 사랑해요."
"쌤 예뻐요!"
"쌤 귀여워요!"
그래서 내가 츤데레 그들에게 대답했다.
"Who? Me? 레알(Real)?"
"Yes, Yes, You, I love you!"
학생들이 화답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손을 머리로 올려 하트 표시를 해댄다.
"시끄럽고요. 됐고요. 축구나 하셔!"
"네에, 쌤, 그래도 사랑해요."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척하며 툭 던지듯이 말했지만 맘 속으로 엄청 고마웠다.
예쁘다니? 학교에는 파릇한 새싹 같은 예쁜 애들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젊고 예쁜 선생님들도 얼마나 많은가? 왜 학생들은 나를 일컬어 예쁘다고 하거나 귀엽다고 할까?
돌아가신 시어머님 말씀 맞다나 저들이 눈이 깨져 버렸나?(시어머니는 돌직구셨다. 어느 날 시동생과 내가 서로 닮았다고 하더라 하니, "그 사람들이 눈이 깨졌나 보다."라고 하셨다. 당신의 잘난 아들과 못난 며느리와 닮았다는 말이 듣기 싫으셨던 모양이다.)
오늘도 수업을 끝내고 본관과 후관을 잇는 일명 구름다리를 지나오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학생들이 일제히 인사를 한다. 그중에 10반 학생들이 보였다.
"얘들아, 너네 어쩔래? 시간표가 바뀌어서 내일 너네 반 영어 수업이 두 번이나 들었던데?"
"잘 됐네요. 더 좋아요."
"그래요 우리 영어 좋아해요. 쌤, 사랑해요."
학생들은 "아, 뭐야? 왜요? 두 번이나 영어 수업을 한다고요?"라고 할 법도 한데...
학생들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엿가락처럼 줄줄 나온다. 만날 때마다 사랑한단다. 그러면 나도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다. 학교의 공기 중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둥둥 떠 다니는 느낌이다. 그 말에 영혼이 담겼든지 말든지 우리는 서로서로 사랑한다는 그 말을 믿으며 힘을 얻고 있다.
10반 학생의 옆에 있던 학생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바쁜 척하며 그들에게서 멀어지면서도 그들의 얘기를 엿들었다.
"누구셔?"
"우리 영어쌤이야."
10반 학생이 으스대며 말한다.
"와우, '개' 귀여우셔"(엄청 귀엽다는 말을 학생들은 '개'자를 넣어서 말한다.)
"그래, 우리 영어 쌤 개 귀여우시지?"
"맞아, 자그마하시고 파마머리가 인상적이셔." 그 학생은 마치 어른처럼 구수한 표현으로 말한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혼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예쁘거나 귀여운가? 객관적으로 보면 절대 그럴 리 없는데? 학생들 눈에 어떻게 보이나? 아닐 것이다. 저들은 '좋다'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다. 그 말은 "선생님, 좋아요." 이런 의미일 것이다.
오늘도 매점 앞을 지나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이었다.
한 학생이, "영어 선생님~"이라고 소리친다. 뭐가 저리도 반가운지? 그러자 함께 있던 여남은 명 정도의 학생들이 복창을 하여 "영어쌤, 사랑해요."라고 외친다. 연습한 적도 없고 약속도 안 했는데 어떻게 즉석에서 호흡이 맞아떨어질까? 신기했다. 그 순간은 스타 연예인이 부럽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감사한 맘이 가득해졌다.
학생들은 내가 몇 달 후에 정년 퇴임하게 된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냥 나는 학생들에게 '현재 진행형 영어 선생'일뿐이다. 적어도 오늘 현재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