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Feb 20. 2023

가슴이 몇 번이나 내려앉더라

- 그래도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영상을 봤다.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아기가 안경을 집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브이로그 담아낸 것이었다. 숨죽이며 영상을 고 있자니 내가 둘째 아이를 낳아서 카우던 일들이 하나씩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 녀석은 낳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아이가 탯줄을 감고 나와 의료진들이 진땀을 뺐다. 


째 아이가 임신되었다는 것을 알고도 산부인과에 가보지 않았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산부인과에 다니는 게 참 싫었다. 그래서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정기검진을 아예 받지 않았다. 그리고 산부인과에 갔다가 혹시 태아가 아들이 아니라는 소를 들을까 지레 겁이 났다. 그래서 둘째를 출산하는 날이 되어서야 산부인과에 갔다. 요즘 산모들에게는 그러한 나의 임산부 기간이 무모하게 여겨질 것 같다.


내가 둘째를 낳던 날의 아픔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고통은 뒷전이었다. 엄청 위험한 출산이었다는 간호사의 말도 나는 귓전으로 들었다. 내게는 둘째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그것이 초미의 관심이었다.


아들이에요?

네에, 어머님, 수고 많으셨어요.


사람들은 대적으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한다. 그런데 나는 분만실 베드에서 출산하던 자세 그대로 목청껏 감사기도를 했다. 그날 하나님 빵 터지시며 웃었을 것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 간호사들도 당황했을 것이다. 그 순간은 부끄러운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게 아들을 보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길러서 하나님 나라에 큰 일꾼 되게 하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남편도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듣자 온몸이 감전되는 것처럼 짜르르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아들은 자라면서 몇 번이나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I. 아들이 백일쯤 됐을 때다.


교회 목사님이 낮은 베이스 톤으로 "집사님~"하며 심방을 오셨다. 그 순간 자고 있던 아기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기는 온종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계속 울어댔다. 아무래도 아기가 울다가 지쳐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아기가 놀래서 온종일 울음을 그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지금 병원에 가면 될까요?


나는 병원 응급실에 연락을 하여 상담을 했다.


아기가 운다고 병원에 올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을 자주 먹이며 잘 달래 보세요. 


그리고,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아기는 여전히 누가 꼬집기라도 하는 듯이 세차게 울었다.

아기는 울다가 지쳐서 까라졌다. 아기는 하도 울어서 목이 다 쉬어버렸다. 아기의 애성을 듣는 우리의 마음도 찢어질 것만 같았다. 마침내는 아기가 울어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는 아이를 안고 그 밤을 홀라당 지새웠다. 아기와 나는 진이 빠졌다. 


II. 아들이 서너 살 쯤 되었을 때, 시댁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름이었다. 점심 식사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짜장면을 먹은 후에 아들에게 멱감기 놀이를 해 주기로 했다. 우물가에 있던  큰 대야에  물을 잔뜩 받았다. 더위를 식히며 그 속에서 놀라고 그랬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아들이 눈을 뒤집으며 정신을 잃었다. 심한 경기를 했다. 아들이 숨을 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방에 눕히고 아이의 입과 코에 호흡을 불어넣기 시작하셨다. 소위 인공호흡을 하신 것이다. 시골 노인네가 어디서 그런 응급 상황 대처법을 배웠을까? 아들의 코가 짓물렀다. 얼마나 세게 부셨는지?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시누이는 논으로 달려갔다. 남편은 그때 논 일을 돕고 있었다.


오빠, 오빠! ㅇㅇ이가 죽었어.


시누이는 맘이 급하니 타고 가던 자전거를 논길에 버려두고 맨발로 달려서 나의 남편에게 소리쳤단다. 남편도 놀라서 맨발로 시댁까지 달려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짜장면을 먹고 찬물에 들어가니 급체를 했던 것 같다.


III. 낚시를 하러 갔다. 시동생들과 함께.


그날은 큰 비가 온 뒤였다. 그런 날은 낚시가 잘 된다나? 시동생들은 낚시를 하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방죽 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방죽은 잔디로 되어있었다. 잔디는 황토와 빗물로 미끄러웠다.


나도 하고 싶어. 나도 물고기 잡고 싶어.


서너 살 된 아들이 낚시를 하고 싶다고 보챘다.


안돼. 위험해. 물이 너무 깊어.


라고 내가 말리는 순간에 아들의 발이 미끄러졌다. 무서운 사자처럼 도도히 흘러가던 그 황토물에 아기가 빠져버렸다. 그때 남편이 황토물에 뛰어들었다. 그 순간, 아들과 남편 모두를 잃었다는 두려움이 내게 밀려왔다. 그러나 남편은 사력을 다하여 아이를 붙잡았고 몇 미터 더 떠내려 가서 겨우 물에서 빠져나왔다. 남편과 아들은 하마터면 그날 끝장날 뻔했다.


내 신발, 내 신발~


아들은 자기가 죽을 뻔한 것도 몰랐던 것 같다. 아들은 물에 빠지면서 벗겨진 신발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IV. 계단 앞에서 아들이 밀침을 당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들이 자지러지게 울며 예배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가 밀었어.


아들의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들보다 두 살 더 먹은 ××가 계단 앞에서 장난을 치면서 아들을 밀었단다. 아들의 코 밑 인중 부분이 계단 모서리에 찍혔다. 인중은 물론 윗잇몸이 다 찢어졌다. 위 입술 부분이 너덜너덜해졌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아들은 평생 '도널드 덕'같은 입술로 지내게 됐다. 한 순간 ××가 아들의 입술을 정말 망쳐놨다.


V. 미싱 모서리에 찍히다.


교회 청년 회원들이 아들을 무척 귀여워했다. 그날은 청년 회원들이 우리 집에 왔었다. 거실에는 구형 앉은뱅이 미싱이 있었다. 청년 회원들은 아들이 귀엽다고 서로 안고 있겠다고 다툼이 났다. 그러다가 모두 한 번씩 안아보기를 했다. 즉 아들을 가지고 배구놀이를 했다. 아들이 배구공이 된 것이다. 토스를 하고 리시브를 하고 깔깔 대고... 그때 나는 옆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엄마, ㅇㅇ가 다쳤어요.


딸아이가 울면서 달려왔다. 집에 가보니 아들은 미싱 모서리에 부딪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지금도 코 옆에는 지울 수 없는 흉터가 선명하다. 


아이는 배구공이 아닙니다.



VI. 잘못된 고자질로 아들이 맞아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교회 유치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아이가 울면서 집에 갔다. 술주정뱅이 아이의 아빠가,


도대체 누가 그런 거야? 


하고 다그치자 아이는 생각나는 이름이 우리 아들뿐이었던 모양이다.


ㅇㅇ이가 그랬어. 


라고 답했단다.


ㅇㅇ이 어디 있어? 이리 나와 봐. 오늘 다 죽이고 말 거야.


술주정뱅이는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았다. 북한군이 쳐들어 와도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러시죠? 제가 ㅇㅇ이 아빱니다.

뭐라고? 오늘, 나, 너네들 다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술주정뱅이는 남편의 뺨을 여러 차례 때렸다. 남편의 얼굴에서 안경이 날아갔다. 아들과 딸은 사색이 되어 피아노 뒤에 숨어 있었다. 그때 담임 목사님은 그 사람을 꾸짖지 않았다. 교회는 이웃에게 덕이 되어야 하니 그런 망나니에게도 대항하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교회만 생각하고 그 사람을 대항하지 않았다. 그때 경찰을 불렀어야 했고 그 사람을 폭행죄로 넘겨야 맞다.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나라도 신고를 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교회는 우리 가족의 방주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했다.


그날 우리 가족은 모두 정신을 잃을 정도로 트라우마를 겪었다. 남편은 실어증이 걸려서 며칠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전쟁을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같은 것을 겪었다.  우리 가족은 애매히 변을 당했다. 참 억울했다.


VII. 아들이 유리를 박살 냈다.


아들의 학급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몰려온 적이 있다. 아들은 그때 집 안에 없었다.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 여자 애들이 장난을 친다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때 우리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에 살았다. 현관이 유리문이었다. 


문 열어줘. 나 급해. 아들이 문을 두들겼다.

메롱, 메롱! 약 오르지? 여자 애들은 아들을 약 올렸다.

나 화장실에 가야 한단 말이야. 아들은 화장실이 급했고 여자애들은 장난이 재미있었다.


쨍그렁!


참다못한 아들은 현관문을 주먹으로 쳤다. 유리가 깨졌다. 아들의 손목에 피가 흘렸다. 


다행이네요. 여기가 동맥인데 시계를 차고 있어서 살짝 비켜 갔네요.라고 의사 말했다.


아들은 손목을 여러 바늘 꿰매는 수술을 했다. 시계 줄이 아들의 목숨을 구했다.




니가 낳은 아들 맞나? 고놈 참 잘 생겼데이.


어머니가 내 아들을 쳐다보시며 늘 하는 말이 나는 듣기 좋았다. 아들이 우리를 여러 번 식겁하게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들을 보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사진: 픽사베이]






이전 02화 아침마다 입속에 체온계가 들어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