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모든 면에서 잘 맞지 않는다.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린 듯하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맞선 보는 당일에 결혼식 날짜를 잡아서 그랬을 것이다.
‘서로가 사랑했고 서로가 배반했다.’ 이런 시(詩)가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전까지 몇 번의 사랑을 했고 또한 실패도 했다. 누군가의 등쌀에 떠밀려 소위 맞선이란 걸 봤었고 지긋한 일상이나 피해 보려고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금의 시누이 남편이 딱 한 번만 자기 처남을 만나보라 하여 날치기 맞선을 봤다. 바로 다음 날에 결혼 날짜를 잡기로 해둔 상태여서 지금의 남편과는 맞선 당일에 결혼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결혼 날짜는 3개월 후인 12월로 정했다. 그는 매일 한 통씩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한 번도 그 편지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에서부터 나는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에 말이 없는 그는, 기분이 좋으면 말을 많이 하는 병적인 성격이 있었다. 만장굴이었다. 제발 그만하라고 해도 그는 만담이며 코미디 같은 얘기들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 동굴의 끄트머리까지 가도록 그의 말은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할 말이 있으면 하는 편이다. 그런 나와는 달리, 그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이다. 한 예를 들어보면,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를 어떤 행인이 긁고 있었다. 이웃 주민이 문을 두드려서 그 현장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는 나를 한사코 집으로 끌어들이면서,
“이미 긁힌 거니 그만둬.”라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곳에다 불편한 말이나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있다면 꼭 나를 앞세워서 대신하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거예요.”라고 뽀로통하게 화를 내곤 했다.
요즈음에 MBTI 유형으로 성격을 진단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유형을 보고 지원자를 거르는 채용공고까지 있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과학적 일지는 모르나, 그 검사를 해보니 그와 나는 더욱 극명하게 반대였다.
그는 ISFP(성인군자형) 유형이다. 말없이 다정하고 온화하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대방을 잘 알게 될 때까지 내면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의견 충돌을 피하고, 인화를 중시한다. 인간과 관계되는 일을 할 때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민감한 경향이 있다. 이들은 결정력과 추진력을 기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출처:나무 위키]꼭 그를 두고 하는 설명이다.
나는 ENFJ(언변 능숙형), ESTJ(사업가형), ESFJ(친선도모형) 이 세 가지가 유형으로 할 때마다 번갈아 가며 다르게 나온다. 어쨌거나 네 개의 이니셜 중에서 맨 앞의 I/E, 맨 뒤의 P/J는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팽팽하다. 나는 늘 답답했고 그는 항상 쫓기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러나 3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나의 툴툴거림이 사라지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는 늘 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에 대해서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하던 얘기를 못 들었을 때는 상황이 될 때 다음에 이어서 (to be continued) 꼭 챙겨 듣기를 원했다. 그래서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내가 아는 만큼 알고 있다. 마치 직접 그들을 만나본 것처럼 그 사람들의 이름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시(詩) '고별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의 굳건함은, 내가 원을 바로 그리게 하고,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게 합니다.
우리 영혼이 둘이라고 한다면, 우리 영혼은
견고한 한 쌍의 컴퍼스의 다리처럼 둘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 움직일 기척도
없는, 하지만 다른 다리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입니다.
당신의 다리는 중심에 서 있다가도,
다른 다리가 멀리 떠나가게 되면,
몸을 기울여, 그쪽으로 귀 기울이고,
다른 다리가 돌아오면, 바로 곧게 섭니다.
당신은 내게 그런 존재입니다. 나는,
다른 다리처럼, 비스듬히 달려가야 하지만,
당신의 굳건함이 내 원을 바로 그리게 하고,
내가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게 합니다.
그는 내게 존 던이 말했던 ‘컴퍼스 다리’처럼 언제나 내가 움직이고 돌아다녀도 중심을 잡고 내 원을 바로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글을 쓴 후에 맞춤법 검사기에 몇 번이나 돌려서 확인했던 것이라도 그는 그 글의 행간까지 읽어내며 어색한 표현이나 오타를 찾아낸다. 그는 내가 무급으로 부리는 맞춤법 교정사다.
누가 물었다, 남편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냐고?
“공기!”라고 내가 답했다.
그는 내게 공기와 같은 사람이다.
공기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단 한순간도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는 나에게 공기와 같은 사람이다.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은 아무것도 염려되는 게 없다. 그가 나의 전속 매니저처럼 알아서 모든 것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내 곁에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든든히 있다. 직무 유기를 해본 적이 없다. 불의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중환자가 되어버린 아들의 병상을 10년 동안 지켜왔다. 아들에게 바짝 붙어서 병간호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핑계를 대거나 아들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손을 맞잡고
그가 존경스러울 때는, 강단에서 설교할 때다. 미자립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만 내게는 세계에서 제일 큰 목사처럼 느껴진다. 생때같은 아들을 병상에 눕혀놓고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을 해오고 있다. 내가 그 죽음 같은 터널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주일 설교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주일 오후부터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를 시작하고 원고를 숙지한 후에 혼자서 리허설하는 것을 20년 넘게 봐오고 있다. 요령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설교를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다 녹음을 해왔다. 설교가 끝나면 일주일 내내 자신이 했던 설교를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있다. 다름 아닌 자신이 가장 무서운 것 아니던가? 자신이 했던 것을 자신이 챙겨보면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가장 먼저 알 게 뻔하다. 내가 수업했던 자율 장학 영상을 본 적이 없다. 민망하고 실망스러워서 그렇다. 그도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부끄러움과 절망을 이겨내며 자신의 설교를 스스로 모니터링하고 설교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매스컴에서 우스갯소리로 웃기거나 자기 자랑을 하며 설교하는 목사님을 볼 때도 있다. 율법주의, 기복신앙, 신비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조용히 그가 외치는 말씀을 나는 무공해 설교라고 말한다. MSG가 가미되지 않은 유기농 말씀이라 해둔다.
이제야 알겠다.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 바퀴[출처:과학 학습 센터]
그는 큰소리로 외치지 않지만, 내면으로는 퍼져오는 울림은 컸다. 그는 서두르지 않지만 멈추지도 않았다.
이제야 알겠다. 톱니바퀴는 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감으로써 동력을 전달한다는 것을. 우리 부부가 그토록 서로 상반된 성격이었지만, 각자의 할 일을 해내며 인생길을 '이인삼각' 경주처럼 함께 버티어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먼 길 돌아와서 비로소 그에게로 맘을 맞춘 나는, 이제부터 그에게 귀를 기울일 테다. 그를 많이 사랑한다고 만천하에 외치고 싶다. 늦었지만, 처음으로 그에게 이 러브레터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