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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Feb 25. 2022

응답하라! 첫사랑~!

- 짧은 만남, 영원한 이별

학교 가는 길은 멀었다     

[출처:합천 문화재청] 왕따 나무

  나의 고향은 합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자락에 있다. 윗마을은 솔악골, 묵촌이 있고 매일 해가 넘어가던 곳에는 독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아랫마을에는 구정리와 장터가 있고 야성강을 건너서 구장터에 이르면 샛길도 있었다. 야로의 명물 ‘왕따 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면 핏물 얼룩이 말라붙어 있는 샘이 있었다. 도살장이 있던 곳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핏물이 씻겨져 내리고 황소 귀신이 마치 머리채를 잡아채는 듯 섬찟하고 무서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멋모르고 신비한 세상으로 끌려가는 꼴이었다. 일상이 바빴던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입학식에 갈 수 없었다. 옆집에 사는 웃터 아재가 어차피 자기 아들, 기철이를 입학시키러 가는 김에 나까지 데려갔다.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옷핀으로 꽂고 그 가제 손수건 아래는 초록색 리본에다 1-2라고 학급을 적었던 것 같다. 

  황새골을 지날 때, 춘삼월의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는 나의 마음은 두렵기까지 했다. 미숭산이 내려다보이는 곳을 한참 걸어가니 하빈리 교회 종탑이 높이 솟아 있었고 교문에는‘야로국민학교’라고 적혀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거듭됐다. 내 고향은 유명 사찰인 해인사 입구여서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다녔다. ‘한 줄로 서서 걷기’와 ‘손 흔들기’를 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첫사랑을 놓치다     


 마을의 애들과 한 줄로 서서 자갈길 도로를 지날 때 우리는 배운 대로 관광버스를 향하여 손 흔들기를 했다. 그즈음에 우리 학급의 반장으로 배인호가 뽑혔다. 야외수업이 있었던 날이다. 선생님이,


“반장 나와서 노래 한 곡 불러.”     


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 우리가 배운 노래는 주로 ‘학교종’, ‘산토끼’, ‘나비야’ 이런 것이었다. 배인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학생들 앞에 섰다. 그가 부른 노래는 내게 잔잔한 충격이었다. TV도 없던 시절이었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노래였다. 구름이 운다고 했다. 구름이 울면서 고개를 넘는다고 했으며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고향을 그리는 구슬픈 내용의 노래였다. 어린 감성에 노크하는 노래였다. 

'고향 무정' 노래의 가사

 배인호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말끔한 옷을 입고 귓불이 하얬다. 그 애는 덤덤하게 그 노래를 2절까지 끝냈다. 다음 날은 배인호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궁금했다. 학교가 텅 빈 것 같았다. 죽었나?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때였다. 숫기 없는 나는 그 애의 소식이 궁금했으나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애가 보이지 않는 내내, ‘고향 무정’이라는 그 노랫말과 리듬이 내 귀에 쟁쟁거렸다.  아이들이 황새골로 걸어가더라도 어린 나는 혼자서 황소 귀신이 나올지도 모를 도살장 샘이 있는 샛길로 학교에 갔다. 그리움은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이가 좀 들어서 알게 됐다. 그 애는 부모님을 따라 도회지로 나갔고 전학을 갔다는 것을.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은 그리움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그리움으로 남다     


  50년도 훌쩍 넘은 지금도, ‘고향’, ‘사랑’, ‘친구’ 이런 단어를 들으면 그 친구 생각이 난다. 오래도록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혹시 소식이 닿아 배인호를 만날 기회가 된다면 나는 치마를 입고 나갈 것 같다. 아니, 그러다가 촌스럽게 보이면 안 되니 차라리 바지를 입고 가는 게 낫겠지. 아니지, 그러면 자칫 여성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운동화가 나을까? 구두가 더 예뻐 보일까? 립스틱 색상은 어떤 게 더 나을까? 진하면 추하겠지? 연하면 생기가 없어 보이겠지? 중간 색상은 개성이 없어 보일 것만 같다. 차라리 만나지 말고 그리움으로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해후를 꿈꾸다     


  오늘 문득 창틀에 걸터앉아 올 리 만무한 그 애를 기다려본다. 희망 없이 그 애를 기다리고 있다. 골목 끄트머리에서 오는 자가 그 애일 지도 모른다. 그 애이어야만 한다. 잠시 넋을 놓고 한 곳만 응시하고 있는데 긴 겨울 끝자락에 봄이 배시시 웃으며 다가온다. 뜰 앞의 나뭇가지에 막 움이 돋으려 하고 있다. 언제가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첫사랑과의 해후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겨울을 배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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