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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May 07. 2023

깐 쪽파는 한 줌에 3,980원~

- 쪽파 양념장 만들기

이번 학년도에 처음 맞이한 휴일(5/5)에
온종일 비가 내렸다. 

을왕리로 바닷바람을 쐬러 가기로 남편과 약속을 해두었다. 그런데 일기예보대로 전날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나서 보기로 한 여행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학에
매주 '1박 2일 여행'을 떠나곤 했다.

걸을 만할 때 다니기로 했다. 감동받을 만할 때 여행하자고 했다. 돈을 남겨둘 생각을 말자고도 했다.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것 하자고 했다. 그래서 매주 나섰던 여행길은 힐링이었다. 가는 곳마다 감동을 받아 시를 적어보곤 했다.


https://brunch.co.kr/@mrschas/10

우리는 중증 환자, 아들을 품고 산다. 

여행이라 해도 우리는 오래 떠날 수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다. 혹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원대 복귀하듯 급히 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제대로 된 세컨 하우스를 마련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계획대로 일이 아귀가 맞지 않아 자금 줄이 팍팍해졌다. 그래서 그 짧은 여행마저도 주저하게 되었다.


여행 가는 일이 소원해졌다. 게다가 남편이 무릎에 물이 차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를 몇 방 맞았다. 그래서 여행을 매주 가자던 약속도 잠시 흐지부지해졌다.  


우리가 짧은 여행을 자주 떠나려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생때같은 아들이 갑자기 당한 사고로  11년째 병상에서 지내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속은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다. 여행이라는 미명 하에 잠시라도 아들 곁을 떠나 있어야 우리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잘난 아들을 중증환자의 모습으로 매일 봐야 하는 일은 고문이고 고통이었다. 우리의 속을 헤집어본다면 다 타고 재만 남아있을 것이다.




비가 온다고 집안에서 뒹굴 수만은 없어서
집 앞에 있는 대형마트에 갔다. 

프레쉬, 로켓 배송으로 먹거리를 배송받으며 산지 4년 째다. 이제는 슬슬 오프라인에서 먹거리를 구입해봐야 할 때가 된 듯하다. 휴일에 여유가 생겼으니 신선한 야채를 잔뜩 사서 냉장고를 채우고 싶었다. 마트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였다.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야채와 과일을 캐리어에 챙겨 넣으니 가짓수가 참 많았다. 


장 봐온 것들을 야채실과 김치 냉장고에 일단 집어넣었다. 반찬 걱정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런 후에 아들이 지내는 아파트에 갔다. 아들을 돌본 후에 세컨 하우스로 돌아오니 그럭저럭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됐다. 


순두부에 양념장을 끼얹어 먹으려고
깐 쪽파를 구입했었다. 

쪽파를 다져서 양념장을 만들면 순두부에 끼얹어 먹을 있을 뿐만 아니라 생김(날김)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콩나물을 데쳐서 양념장을 끼얹어 먹어도 좋다. 생선을 구운 후에도 양념장을 바르면 그저 그만이다. 


맛있게 양념장을 만들겠다고 콧노래까지 부르면 쪽파를 찾았다. 없었다. 매대에서 캐리어에 담았던 기억이 분명한데 집에는 쪽파가 보이지 않았다. 오다가 길에 흘렸을 턱도 없다. 


영수증을 챙겨보니
'깐 쪽파 3,980원'이라는 목록이
똑똑히 보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 순간, 계산원이 계산대 위해 잔뜩 올려놓던 야채와 과일 무더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계산대 왼편에 마트 광고지가 놓여있었던 기억도 났다. 아마도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은 후에 상품들을 내려놓을 때 쪽파는 광고지 위에 놨던 것 같다. 광고지에 있는 다양한 실사 출력 사진이 배경이 되어, 내가 쪽파 봉지를 못 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쪽파가 없어진 줄을 알아차린 것은 저녁 6시였다. 마트를 다녀온 지 8시간이나 경과했다. 온종일 그 쪽파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손님이 착각하고 그냥 집어 갔을까?


3,980 원을 포기하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그게 그런 게 아니다. 칠칠치 못하게 내 물건을 제대로 못 챙겨 온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 순간에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기가 막히지만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웃음이 터진다. 짝짝이인 듯 아닌 듯ㅜㅜ 오늘의 양말 패션]

활동 보조사가,

"사모님, 요즘 양말은 그렇게 나오나 보죠?"라고 말했다. 


내 발을 살펴보니 기가 막히다. 긴 듯 아닌 듯 짝짝이를 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뇨, 아뇨. 제가 정신줄을 도대체 어디 두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답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래도 내가 쪽파를 제대로 못 챙겨 온 게 확실한 것 같았다. 영수증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해봤다.


정직과 친절로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트입니다.

ARS로 들리는 안내 멘트가 그날따라 귀에 확 꽂혔다. 정직, 친절 그 단어가 맘에 와닿았다. 쪽파가 발이 있어 어디로 달아나지 않았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980 원 어치 쪽파 때문에 그분들을 귀찮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한 맘이 들었다.

내 쪽파를 못 찾아온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다. 그래서,


"죄송한데요,  제가요, 오늘 오전 10시경에 깐 쪽파를 샀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내원이 말했다.


"아, 깐 쪽파요. 안내 데스크에 있습니다. 오셔서 챙겨가세요."


오전 10시부터 내 쪽파는 안내 데스크에서 파 냄새를 솔솔 풍기며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여 다시 찾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다. 온종일 쪽파를 간직해 준 **마트 안내 데스크 직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소중한 보물을 챙겨 오듯 쪽파를 되찾아 왔다. 그리고 맛있게 양념장을 만들었다.


                          [한 줌에 3,980원인 깐쪽파 / 쪽파 양념장]


남성을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여자를 '팜므파탈'이라 한다면
깐 쪽파, 너는 '쪽파파탈'이었다. 내게... 


  [커버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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