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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5. 2022
여행은 시(詩)를 낳는다
- 1박 2일의 매력
여행의 감상을 적은
시 몇 편을 올려봅니다.
파도
을왕리의 파도는,
횟집 알바가
샤이니 빛깔 머릴
말총으로 묶고
젊은 티를 내며 일하다가
호텔로 들어가는 연인들의 눈과 마주치면
훌훌 다 내던지거나
또순이로 살겠다는
양가감정이
밀려왔다가
다시 쓸려 가는
그녀의 맘이다
일상이 반짝이는 섬, 소무의도
췌장 뒤에 꼭꼭 숨어 있는 비장 같았다. 소무의도는,
영종대교 지나 무의 대교 넘어서 인도교도 지났으니
‘뚫어 놓으니 열린 섬이네’라고
그가 말했다.
일상이 반짝이는 섬에
당도한 자들은
코로나 통발에 걸린 듯하다
'황금이'라는 앵무새는
"안녕하세요?"라고 몇 번이나 물어본다
사람이 새장 속에 갇혀 사는데
안녕은 무슨?
매미
한여름 길 위에 처참하게 죽어있는 매미
맴맴 맴맴맴
간 밤 시끄럽게 울던 그 매미인가?
숱한 시간을 땅속에서 꿈틀대다가
짧게나마 노래하려고 했을 텐데
숨가프게 살다가
사고로 덜커덩 누워버린
내 아들처럼
COVID-19
소식 없는 그대도
그대에게 갈 수 없는 나도
온통 섬이 되었다.
저마다의 섬에서
마음 걸어 잠그고
눈길만 스치는 무표정
세상의 모든 길은 절단됐다.
2020. 3. 29. 밤 12시 현재
백일장
한평생을 요약하여
해넘이 수평선 위에
한 문장으로 올려놓는 일을 위해
보문사 밑자락
닭갈비 가게에서
한숨은
누런 앞바다에 보태고
몸뚱어리
다 닳은 후에
긴 하루였다
꿈같았다
그 한마디를
노을이 남겨주는 햇살에
널어서 말리는 백일장이었다
바람
푸른 바다가 좋아서 모두 동쪽으로 떠난다
누런 파도가 달려올 때서야
동쪽으로 가는 사람들의 맘을 알았다
바람이 분다, 석모도에
누런 물이 더욱 탁하다
바람으로 씻을 수 없는 빛깔
바람에게 묻는다
죄다 파란 바다에 서 있건만
어이 나만 탁한 파도를 견뎌야 하느냐고
제 갈 길이며
제 몫이란다
노을
낙조를 매일 보는 사람을 만났다.
멀리 갔다가도 노을이 그리워서 돌아온단다.
소리쳐 불러도 말없이 얼굴만 붉히며
돌아올 맘 없었던 첫사랑처럼
어둠으로 떠나는 상서로움의 덩어리가
낼 이맘때쯤 또 붉어질 테니
참아 보라 눈짓할 때
거만하고
일 중심적인 노을을
짝사랑했다는 걸 알아
신기루를 잡은 내 손가락 사이로
어둠이 뜨겁다
가정법
바다 위를 나는 철새라면
너와 함께 군무를 추고
브이(V)를 만들며
행복을 수놓을 텐데
옛적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끝없는 저 해안 길을 너와 걸으며
'네버엔딩 스토리' 노랫말처럼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텐데
겨울 산행
나무 가지 사이로
언 하늘이 내내
동행하는 길
흐드러진 꽃
여름날의 초록
만산 붉은 단풍
그 모든 걸 추억할 수 있는 자만이
산에 오른다
여행
젊은 날에는
돈 때문에
늙어서는
몸이 따르지 않아
주저되는
여행
잠 깨어 보니
벗어젖힌 바다가
눈앞에 드러누워 있어서
화들짝 놀라는 여행
그 재미로 떠난다, 밋밋한 일상에서
문풍지
문풍지가 필요하다
밀폐를 벗어날
델타, 오미크론 알갱이 날리고
끈적이는 냄새 대신
산바람을
심호흡에 담아
생 바람은 거절하고
탁함은 버릴 수 있는
필터,
문풍지를 찾습니다
마장 호수에서
한 바퀴 돌면 끝이다
오른쪽에 산을 끼고
돌면 그만이다
산다는 것이
단순한 건데
머리도 써보고
욕심도 부렸고
주저하며 걸었던 내 인생이
물속에 다 보인다
시작한 곳까지
돌아가면 끝이다
내 삶도
출렁다리
온 인류를 모두 실은 듯한
출렁다리
유리 바닥 아래
언 호수는
침묵이다
이렇게 흔들리는데
어떻게 빨리 가?
한 아이가 짜증을 낸다
빨리 갈 수 없다
흔들지 않아도 흔들린다
출렁다리에 선 자들은
밀려서
멀미하듯 다리를 건넌다
1박 2일
매주 집을 떠났다
1박 2일,
내 주머니와 안녕을 확인하는
짧은 찰나
버릴 건 버리고
다시 꾸역꾸역 집으로 간다
얻은 것 딱 하나
내 집이 제일 좋다는 명제
그래도 우리는 집은 나선다
일산호에 가다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일산 호수 공원엘 가보라고
여태 가보지 않았던 내 불찰에
꿀밤을 놓을 테다
하얀색 비둘기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준다
호수 속에 있는 섬은
펜실베이니아 롱우드 가든 품격이다
언 호수 위에
빨강 발로 서있는
철새가
일산호에 사시사철 오라며
초대장을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