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대학 3학년 2학기에 자전거 사고로 덜컥 누워버린 아들은, 인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침대에 누워서 의식 없이 보내고 있다. 33살이 된 지금도 무의식 상태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생때같은 아들을 그렇게 눕혀두고도 부모인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여행도 다닌다.
신경 정신과 선생님과 상담을 받는 중에,
“우리 몸에 고혈압이 오거나 암이 생겼더라도 치료를 받으면서 살 듯이 우리 가정에 그런 병이 왔다고 생각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때로 아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생각하면 맘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 위급한 상황이 몰려오면 몸이 오그라든다. 무심한 것에서 눈물이 나고 바람만 불어도 아들이 생각난다. 아들을 곁에 두고도 아들이 그립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시상이 있다. 틈틈이 적어 모으고 있다. 그러면 맘이 정돈된다. 맘이 좀 가라앉는다. 때로는 글이나 시가 약이 될 때가 있다.
하얀 색깔 철쭉
철쭉이 화려하게 붉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얀색으로 피어있는 철쭉을 보고 아들 생각이 울컥 솟았다.
하얀 꽃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숨 쉬고
소화시키고
잠자는 일
침상에 피어있는 꽃
아이돌 꽃
선홍 빛깔 화려한꽃들이
초록 이파리들과 웃을 때
하늘 빛깔은 더 짙어
왁자지껄한 세상에서
빛 반사로 겨우 드러난
색깔 없는
침묵의 빛깔, 너여.
다가가지 않았다면
그 외침 지나쳤을
너는 하얀 꽃으로
피어있구나.
너의 향취는 빛깔에 있지 않구나.
♥시작노트: 하얀 철쭉이 참 아름다웠다. 꽃을 바라보는 내내 뭉클한 감동이 올라왔다. 하얀 꽃처럼 빛깔을 잃고 투병 중인 나의 아들을 보는 듯했다. 내 안에 하나님 같은 사랑이 무한히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들을 돌보며 알게 되고 스스로 놀랐다. 침묵의 꽃, 사랑하는 아들! 그의 향기는 빛깔에 있지 않았다. '희망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음은 아들이 우리 곁에서 숨 쉬며 살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