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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22. 2022

자존심만큼의 영어 "쓰기" 수업료

- 너덜너덜해진 '이발소에 두고 온 시' 라는 단편소설

늦깎이 영어교사, 연수란 연수는 다 참석했다.

   근무 시간 전후는 물론이고 방학 때도 원어민과 함께하는 연수를 꼭 챙겨서 참석했다. 거의 10년이 넘게  '영어 늪'에 빠져서 지냈다. 꿈속에서도 원어민을 만나서 영어로 대화하는 꿈을 꿀 정도였다.

   6개월간 미국 현지에 있는 원어민과 화상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연수도 받았고 4주간 미국 델라웨어 주립대학 인턴십 코스도 다녀왔다.

   그러면서도 늘 맘 속으로 간절히 바랐던 것은, Intensive Course(심화 과정) 대상자로 선발되는 것이었다. 선발되는 조건을 살펴보니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인천시에서 중등 영어 교사 20명을 선발하는 관문에서, 40세를 기준으로 하여 두 파트로 나누어서 선발한다는 공문이 왔었다. 운 좋게 그 대상자로 선발되어 6개월간 학교를 떠나서 파견교사 자격으로 원어민들과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제주도 국제학교 방문, 숙대 테솔 과정 등은 물론이거니와 캐나다에서 한 달간 어학코스를 밟는 특전도 주어졌다.

writing 수업 시간 / 수업 주제 ('쓰기'에서 당신을 최고로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법 수업 시간

  그 과정 중에 영어 '쓰기'수업은 잊을 수 없는 훈련이었다. 이 글을 쓰려고 그 당시의 메일을 살펴보니 '쓰기(WRITING)'와 문법 강사, 조지프와 주고받은 메일은 모두 삭제되고 없다. 두 번 다시는 읽고 싶지 않아서 깡그리 지워버렸던 것이다.


  파트너 소개하기

  제일 먼저 조지프와 했던 수업 과정에서, 파트너를 정해주고 일정 기간 동안 서로에 대해서 알아본 후에 그것을 적어내라고 했다.


"이게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한 거야? 그 사람은 어디 있어?"


  조지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었다. 나의 파트너였던 크리스티나의 남편 얘기며, 그 남편과 만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깨알같이 적어서 제출한 과제에 대한 조지프의 리뷰는 짧고 단호했다. 크리스티나 그 사람 자신에 대해서만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정서와 많이 달랐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그 사람의 자녀, 남편 등을 얘기하게 되는데 그건 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라? 이게 아니었네?>


  몇 번 다시 제출했지만, 조지프는 특유의 혀 차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세상에, 내가 나이가 얼마인데? 자기가 강사이면 다야? 영어 공부할 때는 위, 아래도 없단 말인가?>


 속이 몹시 상했다. 글 쓰는 것에 관해서는 늘 자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내 글에 대해 칭찬했었는데 조지프는 내 자존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영어 '쓰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넷플릭스 리뷰 쓰기

  다음 과제는 넷플릭스(그때만 해도 생소한 앱이었다)의 콘텐츠 중에서 하나를 시청한 후에 리뷰를 적는 것이었다. 나는 '그라운드 제로'를 선택했다. 창의적이고 흥미 있는 주제가 될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뉴욕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받았던 여러 가지 생각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그 영상을 꼼꼼하게 보면서 리뷰를 썼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미국 뉴욕 로어 맨해튼의 세계 무역 센터가 있던 장소이다. 그라운드 제로는 원래 폭발이 있었던 지표의 지점을 뜻하는 용어이다. 이 지역에서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포 월드 트레이드 센터, 국립 9·11 테러 메모리얼 & 박물관이 완공되었다. [출처:위키백과]

      

 "너의 글은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 마."


  조지프는 더욱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 한국말로 그냥 속사포처럼 내 감정을 쏟아내고 그 연수를 포기해버리면 속이 후련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속이 상하면서 까지 영어 '쓰기'를 배워야만 하나? 정녕 내가 이렇게 자존심이 다 상하면서 영어 공부를 하려고 그 심화과정 연수를 지원했던가?>


에세이 쓰기

  그 다음은 에세이 쓰기를 했다. 신문 기사를 읽은 후에 내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었다. 글쓰기 초안(드래프트: draft)을 조지프의 메일로 보내라고 했었다. 일주일쯤 후에, 수업받는 동료들을 '함께 받는 수신자'로 지정하여 우리들의 초안에 대한 자신의 피드백을 적은 것을 답장으로 보내왔다. 내가 썼던 검은색 글씨보다 조지프가 첨삭해 넣은 붉은색 글씨가 더 많았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모든 동료들이 조지프의 첨삭이 들어간 답장을 함께 본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아예 들여다 볼 생각을 안 했다. 내 것을 봤을 때의 충격에 그럴 맘이 없었다. 다른 분들은 나보다는 빨간색 글씨가 적었을 것이다. 지적질을 영어로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내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내가 잡은 주제는 '편의점이 많이 생겨난다'는 내용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인하여 편의점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매출액도 어마하다는 내용으로 썼던 것 같다.


"너무 많아. 그리고 논리도 없어."


<아, '논리야 놀자' 이런 책을 좀 읽어 봤어야 했나 보다. 없던 논리를 이제 와서 어떻게 찾아서 놀지?>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으니 이제는 더 시야를 좁혀서 '편의점 밀키트 전망'에 대해서 썼다. 편의점 내에 밀키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다. 잠을 못 자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의 대부분을 그곳에만 몰두했다. 중간 점검 단계를 쉽게 넘어가고 싶었고 상처를 덜 받으려고, 박사 논문 과정에 있는 사위는 영어 에세이 보는 눈이 있을 것 같아서, 나의 글을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다.


"논리가 점핑됐어요. 주제는 너무 좋아요."


 에구, 사위마저 내 글의 논리가 비약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사위는 주제는 좋다는 말이라도 했다.


⇨ 결말 이어 쓰기

  또 이런 과정도 있었다. 작품을 골라서 읽은 후에 결말 이어 쓰기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재미있게 읽었던,  김형수의 '이발소에 두고 온 시(詩)'라는 단편소설을 선택했다. 먼저 그 내용을 조지프 앞에서 요약해야 했고 그 다음에 결말을 이어서 써야 했다.


<한국 작품에 대해서 이해나 하려나? '결말 이어 쓰기'는 그야말로 작가의 마음이니 조지프가 이래라저래라 따질 일은 없지 않을까?>


 마지막 남아 있는 실낱같은 열정을 불태워서 신나게 결말 이어 쓰기를 했다. 역시 이메일을 통하여 날아오는 그 예의 없는 답장은 밥맛을 잃게까지 했다. '이발소에 두고 온 시'는 계속되는 첨삭으로 이메일을 통해서 오고 갔고, 직접 조지프를 통해서 지도받느라고 그 시는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듯했다.

  연수 중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1개월간 현지 프랙티컴(현장실습)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짬짬이 자유 시간이 있어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간 적이 있다. 폭포 앞에서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쌓인 설움을 다 날리고 싶었다. 폭포는 나보다 더 큰 함성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마치 조지프가 달려오는 듯했다.

폭포 전경에 시를 올려놓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매일 아침, 지옥철인 공항 철도를 타고 외국어 수련부까지 등원하는 일 따위는 일도 아니었다. 다른 과목의 강사들이 내주는 과제 등으로 밤을 새운 적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읽기 수업에서 매일 어마한 원서를 읽어오라고 과제가 나와도 나름 차근차근 해내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영어 말하기, 읽기 등의 수업에서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연수 마지막 날 송별식에서, 나는 대표로 소감을 발표했었다.  

    https://blog.naver.com/ksg2028/221067999313 [인천교육연수원, 영어교사 심화연수 수료식]



   그리고 원어민 강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조지프와도 찍었다. 마지막으로 조지프에게 질문했다.


<그 동안 나는 무척 힘이 많이 힘들었다. 정녕 그렇게 영어'쓰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었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 장면에서, 동료가 웃으면 카메라 셔트를 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내 맘은 풀리지 않았고 내 자존심만큼의 수업료를 지불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영어 쓰기 훈련 덕택으로 한글 글쓰기는 꽤 쉽게 느껴졌다. 국민가수 이 솔로몬 팬카페 회원으로 무진기행의 결말 이어 쓰기라는 것을 재미있게 쓴 적이 있다. 영어 '쓰기' 훈장님, 조지프 덕택이다. 그 글을 브런치에 발행했었다.

https://brunch.co.kr/@mrschas/4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읽은 자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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