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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Feb 11. 2022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읽은 분만을 위하여

      -  결말 이어쓰기를 하다

 "늦깎이 영어교사의 이력서"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작가에 등단되었는데 서랍 속에 있는 다른 출품작이 좀 무거운 주제라서 잠시 호흡 고르기를 하며 쉬어갈 겸, '결말 이어쓰기'를 한 번 해봤습니다. 이솔로몬 가수가 추천했던  '무진기행'을, 원어민 교사와 수업할 때 배웠던 결말 이어 쓰기 기법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무진기행 전문을 읽은 후에 보시면 재미가 더할 것이고 아메리카노를 곁들이면 한층 향긋한 글 읽기가 될 것입니다.


무진(霧津)으로 가는 버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여느 때처럼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부터 눈여겨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진으로 향할 때마다 습관처럼 하게 되는 내 몸짓이다. 나는 맨 뒷자리를 차지했다. 모자는 푹 눌러쓰고 2년 넘게 내 얼굴의 일부가 되어버린 부직포 마스크를 꼈다,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볼 자는 없으리라.

  “낚시꾼들 때문에 무진이 몸살을 앓고 있네요.”

  앞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가 반수면(半睡眠) 상태인 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 TV 프로그램의 촬영지가 화근이지요, 이 무진은 자연 그대로 뒀어야 했는데.”

  다른 한 사람이 말을 거든다.

  “50여 년 전만 해도 이 무진은 안개 속이었고 호흡을 하면 폐가 리프레쉬되는 기분이었는데.”

  “그렇지 그때만 해도 인구가 겨우 오륙만(五六萬)이었으니”

  두 사람은 마치 대사를 주고받듯이 자그마한 소리로 얘기를 했다. '안개'라는 그 단어에 나의 졸음은 잠시 멈췄다.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에게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하고, 오십 년 전에 나는, 그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던 무진의 명산물을 안개라고  해두었다.

  

버스에서 만난 사람

 버스의 덜거덩거림이 덜한 것은, 그때의 자갈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기사가 버스를 조심스럽게 운전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무엇엔가 끌린 듯이 그 버스 기사의 뒷덜미를 보고 있다. 남자가 아니다. 저렇게 뒷덜미가 예쁜 남자를 나는 본 적 없다. 갑자기 잠들어 있던 내 에너지가 스멀스멀 나의 아랫도리를 만지고 있었다. 바람 때문일까?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운전기사의 뒷덜미 때문일까? 바람은 무수히 많은 입자(粒子)로 되어 있고 그 입자(粒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睟眠劑)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 생각이 된 적이 있지 않은가? 햇빛의 신선한 밝음, 공기의 저온,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를 합성하여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에 있는 어떤 약보다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가 될 것이라는 기발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당연히 전 인류의 공통 과제인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를 생각할 때인 줄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50년 이상 제약회사와는 먼발치에서 살았는데 지금에 와서 내가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넘본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모두가 손가락질한다 해도 그때는 무진을 떠나온 촌뜨기가 돈방석에만 앉으면 다시는 무진에 돌아갈 일이 없어도 괜찮다고 믿었다. 장인의 자리를 넘보며 나를 한사코 붙잡는 그때의 그녀를 뿌릴 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하인숙을 만나기 전까지는. 하인숙에게 썼던 편지를 찢은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자잘하게 종이 쪼가리로 내팽개치기만 하면 그녀를 잊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라 여겼다. 사람 관계라는 것이 내 쪽에서 끊으면 끊어지는 것이라 여겼다. 그녀가 내 삶에 일도 유익이 없을 게 뻔했다. 한사코 서울에 오겠노라고 떼쓰던 그녀의 눈빛이 떠오르는 날은 기분이 나빴다. 하룻밤 살을 섞은 것쯤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특히 그녀가 처녀가 아니란 것은 우리 서로 알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인숙에 대하여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그만큼 아내는 점점 먼 곳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우리는 상호 그렇게 의논도 없이 남이 되었다.

 버스 창에 시(詩)가 붙어있다. 저 버스 기사도 이 시를 무척 좋아하나 보다.


  귀로(歸路) / 이솔로몬     

 넘칠 듯 말 듯 물 잔에 담긴 파아란 아쉬움

 크게 한 모금 삼켜버리고

 앙다문 입술, 비장한 걸음 옮기운다     

 저 멀리 흔들리고 있는 당신의 인사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려

 주워 담을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온 내 발자국에 고였다     

 돌아오는 기차에 올라 스치는 당신을

 한 폭의 풍경에 옮겨놓고

 빈 여백 사이로 흘러가는 당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기어진 거리 사이로 당신의 온기가 스미는구나     

 멀어질수록 그리워지고 흐를수록 아련해지는

 당신의 초상이 마음 두드린 기적소리 되고

 짙게 쌓인 한숨, 지난 철길에 덩그러니 남기운다     

 소슬바람 쉬어간 기억 한 켠에 놓인 한 장의 수채화

 메마른 종이를 덮은 수분이 여백을 적시고

 축축한 한 덩이 물감 비어버린 당신을 메운다     

 굳게 닫힌 입술 사이로 당신이 흘러내린다     


바다로 뻗은 긴 방죽

  바다로 뻗은 긴 방죽을 지날 때쯤에는 나만 덩그러니 그 버스에 있었다. 기사는 입을 조금만 달싹거리며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그 순간 나의 사라진 에너지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노래에서는 작부(酌婦)들이 부르는 그것에서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꺾임이 없었고, 대체로 유행가를 살려주는 갈라짐이 없었고 흔히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도 없었다. 그 버스 기사의 <목포의 눈물>은 이미 유행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비부인’ 중의 아리아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새로운 양식(樣式)의 노래였다. 그 양식은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과는 다른 무자비한 청승맞음을 포함하고 있었고 절규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 양식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포기가 보였다. 버스 창문 하나에 내가 찢어 버리고 갔던 그날의 편지를 한 조각도 남김없이 되찾아 유물을 복원하듯이 잘 꿰맞추어 다림질한 후에 코팅 처리하여 부착해둔 것이 그간의 삶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내 차례가 온 것이다. 제약회사 대표 자리를 차 버리고 무명 가수로 전전하며 한평생을 보낸 내가 그토록 애절하게 노래를 해보려 했으나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고 난 그냥 비천한 자요, 무진의 이름 없는 별이 되어 조용히 사라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긴 하루 같은 나날들이었다. 특별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아주 밑바닥도 아닌, 밥은 굶지 않고 잠은 잘 수 있는 평범한 인생이 주는 무료함을 아는 자는 알 것이다. 딱 한 번, 「예술의 극장」에서 오페라를 봤다. 무대의 화려함이 주는 중압감, 오케스트라가 받쳐주는 번득이는 현장감 그런 것 때문에 2막 1장에서 내가 운 것은 아니었다. <어떤 개인 날>을 불렀던 하인숙의 안부가 궁금해서였다. 독한 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 번쯤 서울에 와서 나를 찾았더라면 내가 그냥 절 받아들였을 텐데, 오빠라고 한 번만 불러 주었더라면 지 오빠가 되었을 텐데 하며 그녀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속은 꽤 후련해졌다. 미국으로 돌아간 남편 핑게톤을 기다리는 나비부인의 애절한 목소리는 하인숙과 꼭 닮아 있었다. 어쩌면 하인숙이 사표를 내고 지금 그 무대의 아리아를 절절하게 불러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치 내가, 그녀를 무진의 하룻밤, 현지처로 가벼이 만나고 떠나간 바람 같은 한 남자라고 여겨서 단 한 번도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무진으로 오는 남자들이 원한다면, 하룻밤 정도는 가벼이 시간을 보낼 여자였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이제는 내가 <어떤 개인 날>을 부를 차례였다. 목에서 눈물이 났다. 바다로 뻗은 긴 방죽을 보며 나는 무명 가수가 갈라쇼를 하듯 아주 평안하게 불렀다.

  

당신은 무진(霧津)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an empty dream, a crushed hope)이지요? 오빠?”

 선글라스를 낀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부른 노래에 대한 그녀의 평이 궁금했다.

 “노래 잘하시네요. 제약회사 관두고 가수나 하시지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도 많더구먼.”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았다.

 “가수는 해서 뭐하게?”

 내가 대답했다. 삶이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해오고 있던 터였다. 무진을 떠나면 뭐든지 다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진의 안갯속에 와서야 내가 평안을 누리는 것을 보며 이제 타향 객지의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무진으로 돌아올까 그리고 조용히 남은 생을 안개를 연구하며 보낼까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 근래였다. 그마저 꿈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무진의 안개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요즘 제가 하루에도 수 십 번 듣는 노래가 있어요. 한 번 들어보세요. 이솔로몬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오래전 그날>”입니다. 이런 노래는 처음이에요. <목포의 눈물>도, <어떤 개인 날>도 아닌 이 노래를 부르며 요즘은 울지 않고 살아요. 언젠가 누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아요. 이 노래를 들으면 당신은 무진을 다시는 떠나지 못합니다.”

 노래의 중간쯤 되었을 때 되었을 때 그녀와 나는 듀엣으로 부르고 있었다.  나도 이솔로몬의 노래를 온종일 켜 두고 듣곤 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 가사를 한 군데도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다.     


(생략)

너의 학교 그 앞을 난 가끔 거닐지

일상에 찌들어 갈 때면

우리 슬픈 계산이 없었던 시절

난 만날 수 있을 테니

너의 새 남자 친구 얘길 들었지

나 제대하기 얼마 전...

이해했던 만큼

미움도 커졌었지만.

오늘 난 감사드렸어

몇 해 지나 얼핏 너를 봤을 때

누군가 널 그처럼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 내 곁엔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와

잠 못 드는 나를 달래는

오래전 그 노래만이(생략)     


  내가 아마 먼저 울었던 것 같다. 그녀도 중간중간 훌쩍이고 있었다.

 우린 무진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며 인생의 황혼을 조심스럽게 보낼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때때로 이솔로몬 가수와 그 팬덤을 무진으로 초대하면서 ㅎㅎ (202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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