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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Mar 13. 2022

날이 밝으니 딴 사람이었어요

- 배신을 당해보셨나요?

    배신(背信)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다. 배신의 종류는 다양할 것이다. 살다가 배신이란 것은 당할 게 못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교사 발령을 받지 않아서 딱히 하는 일이 없던 나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려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은 오일장 장터 안에 나무 판때기를 대어 만든 하꼬방을 만들어서 지냈었다. 나는 그렇게는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윗마을에 있던 옛집을 처분했다. 장터 안에 있던 판자 가게를 대신하여 도로가에 있는 상가로 옮겼다. 


   그 상가는 점포가 나란히 둘 있었다. 옆 점포는 진이네 시계방이었다. 그 상가 뒤편에는 세 가정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부엌이 있었다. 점포에는 방 하나씩이 딸려 있었다. 한 부엌에 아궁이가 셋이니 어느 가정이 어떤 음식을 해 먹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한 지붕 세 가족이었으나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부엌을 함께 사용하는 상가 뒤편 방에는 일수쟁이 김여사가 늙은 할아버지와 살았다. 할아버지는 말이 어눌했고 중풍을 맞아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할아버지의 일상은, 가게 앞 낡은 소파에 앉아서 온종일 졸며 침을 흘렸다.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소파에 오줌을 지리는 게 분명했다. 냄새로 보아 충분히 알만한 일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할아버지가 김여사에게 많은 재산을 주고 그렇게 살게 되었단다. 김여사는 그 장터에서 현금이 제일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우리도 급하면 김여사에게 일수를 당겨 썼고 김여사는 고리가 짧은 일수 가방을 들고 우리 가게에 들러서 현금을 챙겨 받은 후에 일수 카드에 도장을 찍곤 했다.  

    진이네는 삼 남매였다. 진이네 엄마나 진이 자매도 나를 '언니야'라고 불렀다. 신발 가게를 했던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 그 당시 교복 자율화 바람이 불었다. 농촌이었지만 학생들이 운동화를 사서 신기 시작했다. 육칠 남매씩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운동화 사다 나르기에 바빴다. 


   어머니는 도매상에 가서 신발을 주문해서 가져오는 일로 바빴고 나는 신발을 판매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계방 진이네는 늘 한가했고 하루에 시계 하나를 못 파는 날도 많았던 것 같다. 마을의 남정네들이 몰려 앉아서 바둑을 두거나 장기판을 벌였다. 다방의 아가씨들은 내기 바둑에 진 사람들이 내는 커피를 배달하느라 바빴다.


   진이네 엄마는 우리 가게에 도매상 차가 신발을 싣고 오는 것과 쉼 없이 손님이 드나드는 것을 다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 부엌을 사용하는 한 집 식구 같은 사이였으니, 잠시 가게를 맡기고 다른 일을 보곤 했다. 특히 내가 예배를 드리러 갈 때는 아예 진이네 엄마에게 가게를 맡겼다. 그런 일이 잦아지다 보니, 진이 엄마는 신발의 원가도 알게 됐고 하루의 매출까지 다 알고 말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밤사이에 진이네 시계방 한 편이 신발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한 건물에 나란히 두 개의 신발 가게가 생긴 것이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하루아침에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키우고 있던 말라빠진 선인장 가시가 나의 심장을 후벼 파며 찌르는 것 같았다. 기분은 몹시 상했지만 싸울 일도 아니고 법적으로 고소할 일도 아니었다. 그게 끝이었다. 다만 불편한 동거가 계속됐다. 진이 엄마는 도로가에 서서 우리 가게로 오는 손님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으니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사람 같았다. 딴 사람이었다.


  진이네 엄마: 아이는 셋이요, 매월 가겟세는 내야 하는데 장사는 되지 않았다. 바로 옆 가게는 날만 새면 손님이 미어터지니 아무리 생각해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눈 한 번 감고 신발 가게와 남남이 되면 그만이다. 내가 그 집 물건을 훔쳐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 돈을 벌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이네 아빠: (아내에게 아마도 이렇게 반대하며 말렸을 것이다.)"이 사람아,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사람 속 뻔히 아는 좁은 세상에서 이러면 안 되지.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 천하에 본데없는 사람이라 하지 않겠어? 나는 못하네. 당신 혼자 신발 가게를 차리든지 말든지 나는 모르는 일이네." 


  어머니의 공격: "천하에 몹쓸 인간 같으니라고,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하루아침에 사람이 사람을 외면하는 그런 상놈의 짓을 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다 있네. 당신들 얼마나 잘 되나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다. 밥 한 그릇 나눠 먹으면 서로 굶어 죽는 법이지. 에라, 이 못된 사람들아~"

 

나의 침묵: 할 말이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진이의 살살거리는 눈웃음이 보고 싶지 않았다. 진이 동생 현이도 더 이상 귀엽지 않았다. 막내 민이의 걸음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우리는 영영 남이 되었다.


   살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야 하니 상대방은 죽어도 괜찮다는 메시지와 다를 게 없다. 배신은 상대방을 무시해서 나온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심장을 선인장 가시 같은 것으로 콕콕 찔러서 평생 잊혀지지 않을 상처를 만드는 일이다.  혹시 배신을 당해보셨나요? 그 맘 알아요.


                                                                                                          *진이, 현이. 민이: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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