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같은 미궁에서, 오늘은 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는 날이다. 누구에게 신성한 나의 표를 행사해야 하나?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는 밝았고 대선 후보자들만큼이나 나도 떨린다. 내가 누구에게 투표를 할는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한 표가 귀중한 모양이다. 오미크론 확산을 그토록 조심하면서도 확진자들에게도 투표할 기회를 준다.한 표가 모여서 결국은 전체가 되기 때문이다.며칠 전에 만났던 사위가 20대 대선 후보들의 정치 능력에 대하여 박사답게 잘 설명했었다. 그때는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또 여기저기 들리는 소리에 그 확신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 사전투표를 끝마친 남편이 부럽다. 일단 아침을 먹고 다시 내 맘을 결정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냉동실에 누룽지가 보인다.
누룽지를 끓이다가 문득 영미 사모님 생각이 난다. 이 누룽지는 영미 사모님이 주신 것이다.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영미 사모님이 보고 싶다. 대선 투표장에 가야 하는 내가 누룽지 앞에서 울고 있다. 영미 사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에 투표를 해도 늦지는 않겠지.
포장하지 않는 데서 오는 힘
사모님은 가식이 없고 자신을 포장을 하지 않으셨다. 평생을 목회자 사모로 지내오셨다. 여전히 교회 건물 상가의 사택에서 지내신다. 편리한 것, 예쁜 것도 좋으실 텐데 그것 다 뿌리치고 그냥 사시는 모습은 존경 그 차체다. 자신을 포장하는 데 명수인 나는 늘 사모님 앞에 서면 작아진다. 어디서 그렇게 당당한 자신감이 생기시는 건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영미 사모님을 보면서 느끼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으로 베푸는 사랑의 힘
영미 사모님의 빈 가방을 보며 썼던 시
아들이 자전거 사고를 당하여 중환자가 되고부터 삶의 지각은 지진이 일어난 듯 마구 흔들렸다. 사모님과 함께 했던 '한지붕'도 유야무야 해졌다. 신비주의나 기복주의를 멀리하고 성경말씀대로 정확한 복음을 전하자는 마음이 통하여 개혁주의를 얘기하며 모이게 된 모임이다. 시간이 되면 교제를 나누고 식사도 했었다. 그 모임은 아들의 사고 때부터 없어졌지만 사모님은 누룽지와 밑반찬을 잔뜩 만들어서 전해주시기 시작했다. 특히 국이나 찌개는 한 끼 먹을 정도로 소분하되 국물을 거의 없게 하셨다.
"먹을 때 물을 더 추가해서 붓고 끓여서 드세요. 일단 먹어야 버틸 수 있어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6년의 세월 동안 사모님은 만날 때마다 먹거리를 챙겨 오셨다. 그래서 냉동실에는 반찬이 언제나 가득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감염이 우려되어 아들을 보러 오는 모든 병문안이 사절되었다. 그러면서 사모님의 반찬 셔틀도 일단 중단되었다.
사랑의 빚을 갚을 날
사모님이 대장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의 맘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제 목회의 정년을 맞이하여 일반인으로 평안하게 쉬실 때인데 건강에 적신호가 오니 인생 참 재미없다. 코로나가 가로막고 있으니 자주 뵐 수도 없고 간간이 하룻길 여행을 다녀올 뿐이다. 그마저도 함부로 식당에 들어갈 수 도 없으니 편의점에서 간편식을 구하여 먹는, 청승이 늘어진 여행이 고작이다. 오늘처럼 여유가 있는 날이면 만나서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이 평범한 소원도 사치인 시대다.
이제 곧 나는 투표하러 간다. 내가 누구를 찍든지 상관없이, 내일이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결정된다. 새 시대가 되면, 내가 사모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어떤 모양으로라도 갚을 길이 열리려나? 내가 정확하게 조준하여 새 대통령을 향하여 투표하지 못하였더라도 그 결과를 인정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