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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Apr 23. 2022

픽션 같은 논픽션

- 이 글이 발행되어도 바람 한 점 일지 않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강미의 곁으로 달려왔다. 죽었던 것 같았던 나무들의 가지마다 생명의 호흡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강미는 봄이 오면 언제쯤 꽃이 만발할 지를 잘 안다. 아버지가 떠나시던 날, 상여에 꽂혀 있던 종이꽃보다 더 화려하던 만산의 진달래와 들길의 개나리를 잊지 않고 있다. 달력을 챙겨보니, 어라, 아버지의 40주기 기일이 오늘, 내일인데 벌써 윗녘에 꽃이 만발했다면, 남녘 고향, 그곳에는 이미 벌써 봄이 찬란하게 한바탕 꽃을 피우고 지나갔을 게 뻔하다.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인 게 맞다. 봄이 더 빨리 오는 걸 보니 그렇다.


   고향, 희숙이네 샘물 가에 있던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떠나 버린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없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졌을 것이다.

   누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아무래도 화무삼일홍(花無三日紅)이라고 그 명언을 갈아 치워야 할 것 같다. 벚꽃이 멍울을 맺는가 싶더니 단 하루 활짝 피고는 그 꼴난 비가 좀 내렸다고 후두둑 꽃잎들이 다 떨어지고 제3일에는 꽃 빛깔 대신에 연녹으로 옷을 갈아 입어 버린다. 그런데 건물 뒤에 있던 개나리는 예외였다. 거뜬히 3주는 더 가는 느낌이다.

   강미는 개나리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숙모다. 숙이와 현이의 엄마, 작은 엄마가 입고 있던 노란 개나리 색깔 스웨터는 세월이 가도 강미의 기억 속에서 빛이 바래지 않고 있다.


  삼촌이 결혼을 했었고 작은 엄마가 새 식구로 들어왔다. 키가 컸던 작은 엄마는 말이 없었다. 초가삼간에서 삼촌 내외와 강미는 함께 살았다. 비좁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인 줄 알았다. 작은  엄마한테서는 항상 파우더 분 내음이 났다. 그날도 작은 엄마는 분첩을 열어서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쬐그만한 게 뭐가 그리 관심이 많아?

  작은 엄마는 강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손톱에는 빨갛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농갓집 아낙네가 분이나 처바르고 손톱에 색칠이나 해대고.. 쯧쯧... 벌써 글렀다. 본동댁 둘째  며느리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아.

  한 마을에 살았던 집안 최고 어르신, 나실 할머니가 대놓고 쓴소리를 했다.


 아무한테 말하지 마. 삼촌이 물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해. 잠깐만 어디 좀 나갔다 올게.

  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상호 약속이 아니라 작은 엄마 쪽에서 선포하는 일방적인 협박이었다. 작은 엄마는 장롱에서 옷 몇 가지를 꺼내서 보따리를 만들었다. 냇가를  따라서 마을 앞을 천천히 걸어갔다.


 나쁜년~

 작은 엄마의 뒷모습이 보일락말락할 때쯤, 동구 밖에서, 나실 할머니가 한마디 내뱉았다. 강미는 떠나는 작은 엄마한테 손도  흔들어 주지 못했다. 그러면 한 당이라고 여길 것 같아서 짐짓 모르는 척 했다.  그날 떠난 작은 엄마는 지금껏 돌아오지 않았고 강미는 침묵하기로 한 약속을 무덤까지 들고 갈 심산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삼촌은 새 장가를 갔다. 결혼식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새로 결혼해 온 작은 엄마는 첫 번째 작은 엄마보다 더 살집이 많았고 피부가 촉촉해 보였다. 볼이 무척 넓다. 손은 하얗고 포동포동했었다. 화장을 할 때면 그 넓은 볼 바닥을 여러 번 토닥였다. 하얀 손에 새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후 빨간 입술로 호호하며 불곤했다.

  숙이가 태어났고 얼마 후에 현이도 태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숙이와 현이는 강미 할머니, 본동댁이 돌보기 시작했다. 이삿짐을 챙겨서 대구 시내로 나간 삼촌작은 어머니는 더 이상 숙이와 현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젖먹이였던  현이는 밤마다 배가 고파서 울어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이는 배고픔보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었을 것 같다. 강미네 식구들만 못 자는 게 아니라 온 동네에 애성 섞인 현이의 울음이 울려 퍼져서 잠을 못 자게 했다. 강미도 잠을 설쳤다. 그러다가 잠시 잠이 들면, 귀신이 동구 밖으로 끌어내거나 간첩이 집안으로 쳐들어오는 꿈을 꾸곤했다. 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숙이도 함께 울었다.


 미친 연놈들, 천벌을 받을라꼬? 저 어린것들을 버려놓고 지들은 무슨 짓을 하고 지내는지?

 강미 엄마는 아침마다 삼촌과 작은 엄마를 향해 욕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잠을 못 자면 어지럽고 머리 아픈 병이 있는데 저것들 때문에 제 명대로 못 살끼데이.

먹고 살려고 애를 쓰는 구석이라도 보이면 내가 저것들을 돌봐 줘도 억울하지는 않겠다. 저들만 퍼질러 놀고 지내면서 왜 내가 저것들을 돌보냐고? 사람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강미 엄마의 시동생과 동서를 향한 욕설 레퍼토리는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높아졌다.


  강미는 방학 때, 대구에 있는 삼촌댁에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잠시 숙이와 현이도 대구로 데려간 후였다. 여닫이 문을 열면 주방이 있고 주방을 지나면 컴컴한 방이 있었다.


 아하, 도시에서는 낮에도 백열전구를 켜고 사는구나.


  삼촌과 작은 엄마는 화투를 치며 대낮인데도 불을 켜고 집안에서 보내고 있었다. 화투를 치다가 갑자기 서로 큰 소리로 싸우고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프라이팬에다 돼지고기를 벌겋게 볶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아하, 도시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볶아서 먹는 것이구나.


 또다시 숙이와 현이는 본동댁에게로 돌아왔고 삼촌과 작은 엄마는 이혼을 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긴 편지 한 장이 왔다. 강미는 찬찬히 그 글을 읽었다. 작은엄마의 눈물이 범벅이 된 양면 괘지는 꾸깃꾸깃해져 있었다.


 애들이 평생 저를 원망할 줄 압니다. 용서받지 못할 에미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서 애들한테 참 미안하네요.


  그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숙이는 늘 현이를 업고 다녔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가 숙이와 현이는 삼촌과 함께 대구로 갔다. 그러다가 한 번, 작은 엄마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작은 엄마가 애들을 보고 싶다 하여 중간쯤 어디에서 만다. 그때 작은 엄마는 샛노란 개나리 빛깔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작은 엄마가 밉거나 싫지는 않았다. 


엄마를 만나 보나?

자식 버리고 다른 남자한테 간 자는 엄마도 아녀.


잠시 숙이를 본적이 있었다. 숙이는 누가 가르쳐 주기라도 한 듯, 당찬 원망으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지웠다.


  세월이 훌쩍 지나서 고향 집에 갔는데 낯 모르는 여자가 툇마루를 닦고 있었다. 그 옆에 예쁘장한 여자 아기가 방글거리고 있었다. 사과 머리묶고 앞니만 두 개 달랑 나 있었다. 호적을 하러 왔다고 했다. 세 번째 작은 엄마였다. 말도 한 번 나눠보지 못하고 그 길로 헤어졌다. 그 애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분명히 혈육인데 다시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리고 몇 해 후에 삼촌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객사를 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마약쟁이한테 재수 없게 이용당한 것 같더라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가보니 너거 삼촌 맞더라. 그렇게 허망하게 살다가 가 버렸네. 안 됐다.


 현이는 폐가 나빠서 늘 기침을 달고 다고 했다. 교도소를 들락거린다는 얘기도 들렸다. 숙이는 좋은 남편 만나서 밥은 먹고 산다고 한다. 숙이와 현이를 보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숙이와 현이를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맘이 있지만 여차저차 시간만 흘렀다.  툇마루에서 잠시 봤던 혈육, 사과 머리를 했던 그 사촌이 이유없이 보고 싶었다.


   따뜻한 봄날에는 해마다, 노란 개나리 빛깔 스웨트를 입고 있었던 그 숙모, 작은 엄마가 문득 그리워지곤했다. 하얗던 손이나 볼 통통했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해졌을 것이다. 인물은 여전히 좋을 것 같다. 인생은 그냥 하룻밤의 꿈처럼 짧고도 황망하다. 이 글이 발행된다고 해도 세 분의 작은 엄마들의 존재는 묘연할 뿐이고 숙이와 현이도 소식 모르고 지낼 게 뻔하다. 이름도 모르는 사과 머리 그 혈육을 대책없이 그리워하는 강미의 눈은 이유없이 촉촉해지고 있다.


[FIN]


<강미는 작가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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