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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r 02. 2024

일일생활권이라 좋았더라

- 열 일을 했지만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김포공항에서

스펙터클한 출발 당일의 일정을 무난히 소화해 내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1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딸내외와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왔어도 될 뻔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치감치 도착한 덕에 룰루랄라 하는 맘으로 검색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섰다. 휴대폰에 다운로드해 둔 모바일 항공 탑승권을 당당하게 내밀었다.


"이건 아닌데요?" 검색대에 들어가기 직전에 우린 멈춤을 당했다.

'앗,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제 모바일 탑승권을 발한 건데요?"라고 내가 말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듯했다.


한 달 전에 광주 공항에 갈 때도 24시간 전에 모바일 탑승권을 발하여 휴대폰만 내밀고 검색대무난히 들어갔던 일이 생생했다.


"혹시 여권 가지고 계세요?"라고 안내원이 우리에게 물었다.

'국내선에서 왜 여권을 요구하지?'

"이거 탑승권 발급하실 때 영어 이름을 입력하셨기 때문에 영어로 된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아하, 광주에 갈 때는 남편이 모바일 탑승권을 발급했었다. 아무 탈 없이 무사히 탑승했었다. 그때는 한글 이름을 입력했나 보다. 이번에는 내가 탑승권을 발권했다. 비행기를 타려면 왠지 영어 이름을 입력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어 이름을 입력하고 발급했었다.

주민등록증, 공무원증, 운전 면허증에도 영어 이름이 없었다. 헛일을 해놓고 맘 편히 있었던 것이다. 국내선을 탈 것이니 여권은 가지고 있을 턱이 없고...


"저기에 있는 무인기에 가서 모바일 탑승권을 발급하시든지 창구에서 종이로 발급해 오세요."라고 안내원이 말했다.


"거봐, 내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항상 미리미리 가야 한다고 했지?"

남편이 보란 듯이 말했다. 흑흑, 그의 말이 옳았다.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이런 변수가 있을 줄 몰랐다. 부랴부랴 신분증을 내밀고 종이로 된 항공 탑승권을 발부받았다. 빠듯하게 공항에 도착했더라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게다가 국내선을 보딩 하는 데서는 동네방네가 다 들리게 탑승하지 않은 승객의 이름을 불러 젖히지 않던가? 얼마나 남우세스러웠을까?


비행기 안에서

날씨가 참 좋았다. 사천(진주공항은 사천에 있다.) 공항으로 착륙할 때쯤, 기내에서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을 꼭 찍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내 방송에서,

<본 공항은 군사 지역으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아쉬움을 삭혔다.


KTX로 갔다 하더라도 4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를 비행기로 날았더니 달랑 40분 만에 사천(진주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이 많이 단축됐다. 바쁜 일상에 진주라 천리 길을 일일생활권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사천(진주) 공항에서

사천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진주 시내로 들어가야 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가 한 대도 없었다. 그럴 수도 있나 싶었다. 이럴 때는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게 상책이다. 금방 예약된 택시가 초록색 예약이라는 글씨 전등을 켜고 달려왔다. 그러나 외국인과 다른 승객들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천 공항에는 택시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는 게 특이했다. 일반적으로 공항에 내리면 택시가 줄지어 승객을 기다리고 있고 순번대로 타면 그만이었는데...


택시 안에서

택시를 타기는 했는데 기사님이 영 아니었다. 타자마자 정치 얘기를 막 해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희한한 유튜브를 봤는지? 자신이 본 그 영상들을 죄다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북한 이야기며 국제 정세를 숨도 쉬지 않고 늘어놓았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얘기를 했다. 승객이 어떤 성향인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쉼 없이 얘기했다. 찐 우파였다. 우리나라가 오늘 당장 어떻게 될 것같이 얘기하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심하게 멀미가 됐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럴 때 아무 내색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분은 온종일 택시 승객에게 자기 정치관을 연설하나 보다. 남편이나 내가 다투는 것을 싫어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한바탕 할 정도였다. 앱으로 이용한 택시를 탄 후에 별점으로 평점을 주는 기능이 있다. 나는 그 기능을 단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남편은 항상 별 5개로 자신을 태워주었던 택시 기사분을 격려하곤 했다.


"오늘은 별점을 안 줘야겠다."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별 하나만 눌러주세요. 그게 오히려 벌점이 될 테니까..."


그날 남편은 처음으로 별을 한 개만 눌러 그 택시 기사의 친절도를 평했다.


맛집에서

어머니가 진주로 온 이후부터 매년 한 번씩 정도는 뵈러 갔다. 코로나 팬데믹 때라 진주에 가더라도 동생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호텔을 이용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코로나도 많이 잠잠해져서 동생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 지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진주에 간다고 했더니 제부가 저녁을 준비한다고 연락이 왔다.


"어이구, 요새 누가 집에서 번거롭게 손님 접대를 하나? 우리가 저녁은 살게. 맛있는 맛집을 예약해 둬"

라고 동생에게 답장했다. 그랬더니 제부가 요리 솜씨가 많이 늘었고 손님 접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저녁 준비를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게 부담이 됐다.


"그러면 아예 너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호텔을 예약해야겠구먼. 항상 고생이 많은데 큰 손님도 아닌 우리 때문에 식사 준비를 하려면 얼마나 성가시냐? 아서라."


그리하여 결국 소문난 맛집이라는 순두부 집에서 식사를 했다. 사천 공항에는 택시도 한 대 없이 썰렁하더니 동생이 예약해 둔 그 맛집은 발 디딜 곳 없이 혼잡했다. 메뉴는 그냥 홍어와 삼겹살, 그리고 순두부찌개였는데... 제부는 우리를 기다리는 중에 이미 벌써 소주병 뚜껑을 열어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한평생 술에 찌들어 사는 제부를 보니 맘이 편치 않았다.


인천에서 점심 먹고 진주에서 저녁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여동생 집에서

 

마침내 여동생 집에 갔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여동생 집에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거의 40년이 다 된 세월인데도 동생 집을 방문할 일은 없었다. 그게 참 가슴 아팠다. 동생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파트를 잘 꾸미고 살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서 병원을 내 집처럼 여기며 사는 동생이다. 제부가 마음을 맞춰주지 않고 가정에 성실하지 않으니 그게 모두 동생에게는 병으로 오는 듯했다. 그렇게 사는 동안에 도움도 주지 못한 언니라는 게 스스로 부끄러웠다. 못나도 참 못난 언니였다. 내 사는 데만 급급했고 거리도 멀었던 것 같다. 가까이에라도 살았더라면 서로 의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 몸으로 어머니를 맡아 있는 동생에게 할 말이 없었다.


여동생이 신혼 때 힘들게 살았던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데 가슴이 아렸다.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아이가 먼저 생겨 살림부터 차렸던 일, 결혼 후에 제부가 군에 입대했던 일 등등을 듣는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손을 잡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워낙 인내심이 강하고 성실하여 가정을 잘 지켜 여기까지 온 동생이다. 그런 동생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동생의 큰 딸은 통역사, 번역가로 일하고 작은 딸은 피아니스트다. 한 가정에 한 사람이 희생하고 중심을 잡아 살았더니 오늘과 같은 날이 온 셈이다.


제부는 갖은 나물이며 청국장, 부침개 등을 다 준비해 놓았다. 다음 날 아침으로 먹으란다. 우린 아침을 간편식으로 해치우는데...


그리고 밤이 늦도록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며 우리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보러 간 것이지만 동기간과 우애를 다지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그리고 동생은 외손주의 사진을 보여 주며 자랑이 늘어졌다. 손주가 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주 자랑을 할 때면 얼굴이 환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손주가 있는 자'/'손주가 없는 자'로 나뉜다는 말이 있나 보다. 몇몇 영상을 보여주는 데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다음 화에 이어질 이야기

그 밤에 두 편의 동영상을 봤는데 여동생의 손녀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보며 '아무 말 대잔치' 속에 있는 각본 없는 이야기를 듣고 박장 대소했다.


[종손녀의 영상 화면 캡처]




손녀의 영상을 보다가 문득 생각난 영상이 있었다. 오래전에 봤던 경상도 사투리로 다투는 자매의 영상을 그 자리에서 동생에게 전송했다. 동생이 깔깔거리며 활짝 웃었다. 고생하며 살아왔던 내 동생이 오늘처럼 내내 웃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VYPEGJh9ygY

['찍지 마라' 귀여운 말싸움, 이 영상은 볼 때마다 웃긴다.]


그렇게 우리들의 밤은 깊어갔다. 길고 긴 하루가 마침내 끝이 나고 있었다.




PS: 유튜브 영상 '찍지 마라 귀여운 말싸움'의 대사를 글로 정리해 봅니다.

이 작업은 '클로바 노트'라는 앱을 이용하면 음성을 글로 변환시켜 주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동생: 나는 조금 작거든 그러니까 언니가 그랬으니까 양보해 줘야지.

언니: 니가 내보다 두 살 작은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동생: 그러니까 양보해 주라고...

언니: 뭘 양보해? 내가 왜 양보해?

동생: 언니가 때리니까 양보해 주라고 하지...

언니: 야, 그게 양보해 줄 일이가?

동생: 그래 양보해 줄 일이다.

언니: 그래서 뭐 하게?


부모 중 한 사람: 야, 그거 카톡에 올리라.


언니: 그래서 뭐 하게? 언니가 양보해 줘서 뭐 하게?

동생: 양보해 줬으면 아이들이 좋아할 거 아이가?

언니: 아이? 나도 아이다.

동생: 언니는 크고 나는 아이고 언니는 언니고...

언니: 니가 내보다 두 살 작은 데, 그래서 뭐 할 건데?

동생: 그래야 언니가 언니 되지.

언니: 자 그래, 내가 맨날 니가 못 먹는다고 해도 내가 니한테 그렇다 아이가?

동생: 못 먹는다고 해도 그거는 신경 쓰고...

언니: 그럼 학원에서 누가 사주는데?

동생: 학원에서 언니가 사주니까.

언니: 그래 이 양보해 줄 일이 아니가?

동생: 언니, 언니도 진짜 성질 내고 그런다?

언니: 야 니가 말이 통해야 성질 안 내든지 할 거 아니가?

동생: 그러니까 학교에서... 학교에서...(카메라 발견한 동생이 화가 머리끝까지 남) 찍·지··라!


PS(2)

이 글은 미리 작성하여 서랍장에 두었다가 현재 푸꾸옥에서 약속 날짜에 발행합니다.



#일일생활권  #사천 공항  #맛집 #제부 #찍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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