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부는 혼자서 술잔을 비웠다. 묵혀 두었던 복분자 술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마셨다.
'저놈의 술 때문에 내 동생이 속앓이를 하며 여태 살아왔는데 저걸 좀 끊을 수는 없나?'
나는 제부의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마음이 쓰라렸다. 하지만 내 속만 끓였을 뿐이지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제부는 하염없이 술을 마셔댔다. 그래서 TV화면에서 누군가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는 양 제부에 대해 무신경해 버렸다. 어쩌면 동생도 한평생 이렇게 애써 마음을 컨트롤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동생의 외손녀가 쫑알대는 영상을 함께 봤다. 술꾼은 내버려 두고 우리는 영상을 보고 또 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아이가 열심히 쫑알거리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이들의 생각은 참 말랑말랑했다. 선생님이 하는 말과 행동을 다 보고 있다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손녀의 이름은 '바하'다. 음악을 전공한 바하의 부모가 지은 이름이다.
바하의 아무 말 대잔치 속에 많은 진리가 숨어 있었다. 영상 두 개를 정리해 보았다.
1편: 선생님 말씀 잘 들어보세요~
(대본도 없이 선생님 역할을 잘하는 바하)
* 그런 거 있으면 좋은데 이게 책상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책상에다 대고 밥 먹기 연습하고, 이거 연습하고 잘 거예요. 영어 하고.. 알겠죠? 근데 그렇게 하면 내가 혼자 간식할 거라고 내가 싸우거나 안 싸우거나, 내가 친구랑 안 싸웠다고 해서 거짓말하거나 그러면 선생님이 절대 안 놀아주고 절대 이야기를 안 해줄 거예요.
* 알겠죠? 안 놀아 주고 알겠죠? 밥도 안 먹여 주고 알겠죠? 밥도 안 주고...
(배고프겠다.)
* 그러면 이다음 주에 말 잘 들으면 선생님이 이거 게임도 해 주고 그럴 건데 어쨌든 그렇게 말 안 들으면 돼요? 안 돼요? 그럼 안 되죠?
(안 되죠.)
* 근데 어제처럼 막 이렇게 선생님이 약속했는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이렇게 많이 하면 선생님 이제 인제 못 놀아줘요.
알겠죠?
(예)
* 그래서 이거 연습만 하고 여기 놀면서 싸우니까 얼른 잘 거예요.
수업해야 되니까, 알겠죠?
(네)
(누구랑 누구랑 싸워요?) <-기습질문에 당황한 아이
.
.
.
.
.
.
* 엄마가 말해봐!
<갑자기 애드립이 바닥난 꼬마 선생님이 난처해하네요>
2편: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세요?
(미래의 내과 의사?)
* 여기로 이렇게 나와서 그래서 그렇게 됐어.
(다시 말해봐. 어떻게 된 거라고?)
* 어떻게 되냐면
(밥을 안 먹고?)
* 밥을 안 먹으면 소화가 돼.
왜냐면 여기는 있고(왼쪽 가슴 가리키며) 여긴 밥이 없잖아(오른쪽 가슴 가리키며).
그럼 여기로 생각이 들어갔다 나왔다...
여기에서 입에 막 생각이 나와서 그게 여기로 속삭이는 거예요.
여기로 말하는 거예요. 여기로, 여기로 아주 짧게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에 용기를 내서 그래서 그다음에 하는 거야.
(아하, 할머니한테...)
<생각은 뱃속에서 나온다고 알고 있네요. 용기도 그 속에서 나오고...>
이렇게 창의적으로 생각하던 아이도 학교 교육을 받으면 점점 틀에 갇혀 버리게 된다. 창의성은 메말라 가고 경쟁 사회 속에서 허덕인다. 얼굴에 생기와 웃음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