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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Nov 08. 2022

4인 4색, 산책길 풍경

- 같은 주제에 각양각색의 대화

A: 목사(남편)
B: 교사 겸 브런치 작가(나)
C: 생명과학 박사(사위)
D: 개발자(딸)

A, B, C, 그리고 D가 산책을 나섰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는 길을 걸었다. 대체적으로 화두는 B가 꺼낸다.


B: 어머나, 가을인데도 아직 장미가 피어있네.

A: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철 늦은 장미가 피어있는 산책길을 걸으며 A는 찬양을 흥얼거렸다.


D: 하늘이 참 맑네요. 어떤 입력값이 있으니 하늘이 저토록 파랗겠죠?

B:(속으로) 나라면 '눈이 부시게 하늘이 파랗네.'라고 했을 텐데 역시 D는 표현하는 방식이 나와는 다르구나.

C: 아참, 꽃의 개화 조절 기작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연구 결과가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어요.

B: 그게 무슨 말인지?.

C: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되었어요. 말하자면 어떤 단백질이 온도가 올라가면 개화를 유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에요.

B: 그런 것이 있나 보네?

A: 자연을 보면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찬양하게 되는데 인간의 노력으로 그런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참 대단한 일이네.

D: 우린 '입력값을 넣어서 결과가 나오고 또한 프로그램이 돌아간다.'라고 해야 이해가 잘 돼요.

B: 헤헤, 우린 그냥 꽃을 보면 예쁘고 하늘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뿐인데?

C: 생명과학은 생명체에 담아놓은 하나님의 함수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B: 참 멋진 생각을 하고 있군.


4인 4색이 걷는 산책길에서 나누는 대화는 주로 이렇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도 각자의 멘트는 각양각색이다. 


마른나무를 보고 나누는 대화다.

B: 저 나무는 왜 말랐을까?

D: 아마 가을이라 어떤 값이 부여되어 그 결과로 잎이 마르는 거겠죠?

B: 나는 저 나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A: 아닐 걸. 내년에 다시 잎이 날 걸.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생명이 있을 수 있으니.

B: 상록수라서 겨울이 되어도 초록빛 이어야 하는데 나무가 마르는 것은 아마 뿌리가 죽은 거 아닐까요?

C: '부름켜'라는 게 있는데 나무줄기가 이렇게 상했으니 죽은 거라고 봐야겠네요. 

A: 내년 봄에 다시 와서 이 나무가 살아있는지 확인해봐야겠네.

D: 뿌리가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죽은 것 같아요, 뿌리가 죽으면 잎이 마르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사소한 현상 앞에서 우리 네 사람은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다. 그러나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여 나누는 말에 경청한다.



우리의 산책길에서 나누는 대화는 늘 풍성하다. 

꽃이 여전히 드문드문 피어있었고 잘 다듬어진 길이 펼쳐져 있었다. 맑고 푸른 하늘에 새털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을 보니 마냥 즐거웠다. 좋은 사람과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었다. 


철도 모르고 이제라도 꽃을 피워보겠노라고 봉오리를 맺은 장미에게,

'이제 곧 서리가 내리고 금방 눈이 내릴 거야.'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한 때를 화려하게 피우고 떠나는 장미가 희귀병에 걸렸는지 검은 점이 드문드문하다. 이파리가 문드러져도 장미는 행복했을 것이다. 물방아질을 멈춘 물레방아의 게으름도 가을에는 운치 있게 보였다. 향긋한 가을 산책길에 손 맞잡고 걸었던 우리의 흔적이 오래오래 그곳에 남아 있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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