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Mar 15. 2024

'여행 스크립트'가 흥미진진하다

- 여행의 묘미를 더해 준 몇몇 에피소드

보딩 때 '우선 탑승'을 했다.

제주항공 비행기를 탑승할 때였다. 남편이 먼저 섰고 몇몇 사람 뒤에 내가 섰다. 사위는 내 뒤쪽, 딸은 우리 일행 중 마지막이었다.


"어? 이거? 이리 나오세요. 이쪽으로 타세요."


안내하는 직원이 나의 모바일 탑승권을 보더니 중요한 일인 듯이 말했다.


"저기 앞에 붉은 패딩 입은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아, 그래요? 일행 또 있으세요?"

"저기도 일행이에요."


내가 사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위가 행렬에서 나와 탑승권을 그분에게 내밀어 보였다.


"어, 이분은 골드네요."

"저기도 일행이에요". 나는 줄의 뒤편에 서 있는 딸에게 손짓했다.

"일행 모두 함께 여기로 들어가세요."


우리 일행 넷은 긴 줄에서 빠져나와 옆에 있는 별도의 입구로 보딩 했다. 탐승객 중 우리 가족만 우선 탑승을 했다. 아직까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제주항공의 우선 탑승은 4가지였다. VIP, Gold, Silver+, Silver 등등.


아무튼 내가 왜 우선 탑승을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모바일 탑승권 상단 왼편에 S, P, P, S 등의 글씨가 있긴 하다. 내 생각에는 스페셜, 프리오러티 등인 듯하다. 그런 단어의 이니셜로 보인다. 사실은 우리가 앞 좌석을 선택하긴 했다. 돈을 좀 더 주고 '사전 좌석 구매'를 해두었다. 하여간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날 우린 보딩 순서에서 구별되는 대우를 받았다.



첫날 아침을 우리 부부가 먼저 먹었다.

[첫날 조식, 반찬은 하나도 없다.]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넘었다. 두 시간 늦은 시차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3시 정도였다. 도착하여 그 밤을 1/2박 한 후에 온종일 투어를 하고 리조트까지 샌딩해 주는 <모닝투어> 패키지를 예약해 두었다.


그 패지는 푸꾸옥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여 숙소에 데려다주고 다시 아침에 스파까지 싣고 갔다. 마사지가 끝나고 킹콩 마트까지의 라이딩도 제공했다. 거기서 간단한 여행 용품을 구입하고 마트 옆에 있는 망고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닝투어>로부터 유심칩도 받았다. 단독차량으로 리조트 샌딩까지 우리 일행만을 위한 자유 일정이 가능했다.


유심침을 교체할 때, 내가 준비해 갔던 대형 옷핀이 제격이었다. 유심칩에 동봉된 핀은 힘이 약하고 길이가 짧았다. 옷핀은 한 방에 칩팩을 열었다.


도착 당일 우리가 잠시 묵었던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다. 딸내외는 좀 늦게 먹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만 1층으로 내려갔다. 남편은 나만 졸졸 따라왔다. 나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중학교 때부터 영어와 담을 쌓았단다. 그래도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서 7등을 했다나? 그 이유는 시험 과목에 영어가 없어서 가능했던 일이라나?


나는 2017년까지는 원어민과 늘 지내며 소통이 자유로웠다. 오랜만에 현지에서 살아남기 영어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겁날 것은 없었다. 그 호텔 프런트에 가서 조식을 신청했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그네 같은 객이지만 아침 조식이 너무 심플했다. 다음 날부터 리조트에서 호텔 조식으로 포만을 느낄 우리였는데 그날 아침은 쌀국수 달랑 한 그릇이었다. 다행히 그 국수에 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고 맛은 일품이었다. 고수를 넣은 듯하나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국수를 먹을 때 기본으로 나오곤 하는 깍두기나 김치가 보이지 않았다.


"이즈 데어 애니 아더 사이드 디쉬?"(반찬은 없나요?)


내 질문에 서빙하던 여자는 눈만 껌뻑거렸다. 영어를 1도 모르는 베트남 현지인이었다.

반찬 없이 첫 끼니를 때웠다. 남편은, 내가 왜 아들('other'이라는 영어 발음을 잘못 알아들음) 관한  얘기를 갑자기 하는지 어리둥절했단다. 해프닝이었다. 그래도 해외에서 밥을 굶지 않을 정도의 영어 소통이 되어 내심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 변기 수압을 높여 달라고 서비스를 의뢰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의 개인 풀장, 그런데 한 번도 이용할 시간이 없었다. 그림의 떡이었다.]

우라가 머물 숙소의 문을 여니 입이 쩍 벌어졌다. 수영장을 갖춘 단독 객실이었다. 80평 규모의 객실이었다.

 

우리 방과 딸 내외의 방에 각각 화장실이 있는데 거실에 별도로 화장실이 또 있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머물 방에 딸린 럭셔리한 화장실에 문제가 있었다. 변기의 수압이 매우 약했다. 화장실을 사용한 남편이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변기의 물이 시원스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나는 로비에 연락하여 사정을 말했다. 죄송하다며 당장 엔지니어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친절한 기사가 수압 조절을 잘하고 갔는가 싶었는데 좌변기 급수구 나사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 물이 줄줄 샜다.

또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내 영어는 살아 있었다. 로비에서 내 말을 잘 알아들었고 나도 그들의 얘기를 정확하게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엔지니어가 와서 화장실 수리를 한 후에 나더러 화장실 청소는 손도 대지 말라고 했다. 곧이어 청소하는 분이 올 거라고 했다. 잠시 후에 상냥하게 생긴 여자 두 명이 와서 깔끔하게 화장실을 정리했다. 거기서 밥을 비벼 먹어도 될 정도로 고실고실하게 청소했다. 더 이상 화장실은 문제가 없었다. 내 녹슬었던 영어가 베트남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마하고 럭셔리한 리조트의 화장실 변기에 비데가 없었다. 빈펄 사장님은 비데를 모르나 보다. 우리 남편은 비데 없이 못 사는데...



우리 부부는 딸내외보다 먼저 조식을 먹으러 갔다.


뷔페의 메뉴 태그에 영어로 음식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됐다. 이번 기회에 프렌치 빈(French Bean)의 이름도 알게 됐다. 뉴욕이나 토론토의 '홈스테이 맘'은 매 끼니마다 풋콩 같은 것을 내놓곤 했다. 여태껏 그것의 이름을 몰랐다.


뷔페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남편에게 설명을 했다. 이것은 베트남 전통 음식이고, 여기는 수프를 선택해야 하고, 이것은 어떤 과일이고 등등... 영어 문맹자와 오니 내려놓았던 교사 역할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매일 아침 조식을 먹었던 뷔페 레스토랑 / 출처: 빈펄 디스커버리 원더월드 푸꾸옥 사이트]

남편은 혈압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제 때 식사를 해야 한다. 프런트에서 얼굴 인식 서비스를 신청해 두니 편리했다. 뷔페에 들어갈 때 얼굴 인식으로 입장했다. 딸내외는 느지막이 뷔페에 왔다.



아침마다 객실 문고리에 '메이크 업 룸 서비스' 카드를 걸었다.


첫날은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두기만 했다. 그렇게만 해도 청소하는 분이 객실을 정리해 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에 와서 보니 객실이 그대로였다. 알고 봤더니 '청소해 주세요.',  '그냥 그대로 두세요.' 등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는 제대로 문에 걸었다.

또 한 가지 더 신기한 게 있었다. 타월을 세탁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 카드였다.

[객실을 청소해 주세요./ 그대로 두세요./다시 사용할 타월이라면 걸어두세요. 바닥에 내려놓은 타월은 세탁할게요. 불필요한 세탁을 줄여 지구 자연환경 보전에 일조합시다.]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 '9. 11.'이지만 호적으로는 '3. 5.'이다. 


그날은 안터이항까지 가서 배를 타고 스노클링을 즐겼다. 메이 룻이라는 섬에서 호핑투어를 했다. 세계 최장이라는 해상 케이블카 갈매기처럼 유유히 날고 있었다. 반쎄오 푸꾸옥에서 가성비 좋고 맛있는 저녁도 먹었다. 실컷 보고, 마음껏 즐기고, 배부르게 먹었던 날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툭툭이란 것을 타고 객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게 뭐야?"

"도대체 이게 뭐지?"

"이렇게까지 한다고?"

"대박!"


우린 한 마디씩 한 후에 얼음처럼 굳었다. 아침에 나갈 때는 식탁 위가 마구 어질러 놓은 채였다. 그런데 쪽같이 정리되어 있었  자리에 생일 케익 세팅되어 있었다. 마치 우렁각시가 다녀갔던 모양새였다.


"누구야?"

"누구지?"

"어, 나네."


바로 나였다. 

내가 이역만리 해외에서 생일 축하를 받았다. 그것도 빈펄 디스커버리 사장님(?)으로부터. 그런데 이 생일카드에 친필 사인은 누가 했을까? 궁금했다. 사장이 직접 할까? 필체가 아주 좋은 전담 직원을 고용하여 대신하게 할까? 만약 사장이 직접 사인한다면 이건 특종감이다. 필체가 수려했다. 지금까지 봤던 필기체 중 가장 멋져 보였다. 한마디로 글씨가 바로 예술이었다. 글씨가 그림이었다. 길이길이 보관할 참이다.


나의 호적 생일이 하필 여행 중에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생일 파티였다. 우리는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퇴임 축하 노래도 불렀다. 올해는 양력, 음력 생일로 두 번이나 파티를 하게 생겼다.

[사인이 수려한 생일 축하 카드]


늦게 조식을 먹으러 온 사위가 나더러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환전을 해오라며  부탁했다.


사위는 인천 공항에서 달러로 환전했다. 미리 예약했던 은행 직원이 돈을 들고 우리 쪽으로 찾아왔다. 그 달러를 베트남 화폐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 달러 중에는 사위가 미국에 사는 고모에게 받은 100달러짜리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 달러에 칼금이 살짝 나 있었다.

한국 아줌마의 '우김'으로 그 달러까지 모두 베트남 화폐로 환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무사히 달러를 베트남 돈으로 환전했다. 그런데 그 흠집 있는 달러는 호텔에서는 환전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타운에 있는 은행에 가면 환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안터이항으로 가고 있었다. 슈퍼카로 이동 중이었다. 은행이 눈앞에 보여 칼금 있는 달러를 베트남 돈으로 환전하려고 잠시 멈췄다. 우리가 은행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1분이었다. 아뿔싸, 베트남 은행은 오전 11시에 문을 닫는단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그런 일이 결국 개인의 역사가 된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여행 중에 생긴 모든 것은
추억이 되었다.

#푸꾸옥  #여행 에피소드  #조식 뷔페  #환전






이전 02화 신박한 <앱>이 바로, <<가이드 오빠>>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