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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08. 2024

니가 해라, 엄마!

- 킹콩마트 쓸어 담기

마지막 날 조식을 우아하고 화려하게 끝냈다. 조식 후, 자투리 시간에 프라이빗 비치를 다녀왔다. 마침내 정들었던 숙소를 체크 아웃했다. 툭툭이도 마지막으로 이용했다. 푸꾸옥에서 우리의 발이 되고 서번트가 되었던 툭툭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린 시절 지게에 타본 적이 있다. 좀 더 커서는 리어카에 타봤다. 다음에는 경운기에도 탔었다. 그런 탈 것의 일종인 툭툭이는 가까운 거리 이동 수단으로 그저 그만이었다. 7~8명 정도 탈 수 있는 크기였다. 베트남을 오토바이의 나라라고들 하는데 나는 '툭툭이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었다.

[툭툭이 탑승]

수영장에서 이 젖은 채 숙소로 이동할 때였다. 메인 수영장에서 한껏 놀다가 샤워 부스에서 애벌 씻기를 했다.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툭툭이를 탔다. 툭툭이에 있는 의자는 그런 물기 정도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떤 툭툭이의 의자에는 가운데 부분이 구멍이 있기까지 했다. 수영장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툭툭이를 탔을 때 흘리는 물이 고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숙소를 오고 갈 때는 항상 툭툭이를 이용했다. 몇 번 그렇게 하고 났더니 남편은 로비에 있는 도어맨에게 다가가서 우리 숙소 넘버를 영어로 대며 등록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완벽하게 소통한 영어는 바로, "툭툭, 쓰리, 식스, 투, 투."였다. 그러면 도어맨은, "오케이"라고 하면서 메모판에 숙소 넘버를 적어 넣곤 했다.


툭툭이 기사는 현지인이라 영어를 못했다. 그러나 바디 랭귀지, 페이스 랭귀지로 소통에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툭툭이 기사는 무척 친절했다. 우리가 짐을 들려고 하면, "이츠 미~"라면서 손도 못 대게 했다. 우리를 왕처럼 대했다. 왕족이 된 기분이었다. 지인 중에 어떤 이는 돈을 열심히 모아서 개발 도상국으로 이민 가고 싶다는 농담을 했다. 그런 곳에 가서 살면 왕처럼 살 수 있다나? 하하하...

[마지막으로 툭툭이를 이용했다.]

마지막 날,  우리의 커다란 짐과 함께 우리가 타고 다닐 슈퍼카를 불렀다. 국제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차를 렌트할 필요가 없었다. 리조트 체크 아웃하는 시간부터 공항 샌딩까지 다 책임지는 슈퍼카를 이용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슈퍼카는 우리가 가자는 대로 어디든 간다. 우리가 물건이라도 사들고 올라치면 슈퍼카 기사는 얼른 우리의 짐을 받아 들고 차에 싣는다. 친절의 끝판왕이다. 온종일 이용하더라도 비용이 그다지 비싸지 않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다. 슈퍼카에 우리의 캐리어를 몽땅 싣고 마지막 날의 일정이 시작됐다.




먼저 킹콩마트에 갔다. 처음 푸꾸옥에 도착한 날, 킹콩마트에 잠깐 들렀었다. 그때는 현지에서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샀다. 마지막 날, 본격적으로 물품을 살 요량이었다. 드디어 킹콩마트 물건 쓸어 담기의 D-day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계획했던 대로 목걸이, 팔찌 세트 예닐곱 개 정도만 샀다. 그게 끝이었다. 더 필요한 게 없었다. 필요한 것은 언제라도 살 수 있는 대에 살고 있기 때문다. 인터넷 구매가 얼마나 편리한 시대인가? 저녁에 구매하면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고 오전에 구매하면 저녁에 도착하는 편리함에 익숙해 있다. 무엇 하나 아쉬운 게 없지 않는가? 다만 여행을 왔으니, 지인에게 현지에서 구입했다는 의미로 간단한 선물만 준비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딸내외는 카트에 가득가득 무엇인가를 담고 있었다. 트리플 일정에 킹콩마트에서 살 것의 리스트 메모가 있긴 했다. 그것들의 특징과 장점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후루룩 읽었다.


딸내미는 킹콩마트에서 구입한 것을 담아갈 대형 캐리어도 하나 고르는 중이었다. 그 풍경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뉴욕에 한 달 갔을 때, 아웃렛에서 이것저것을 잔뜩 산 동료들이 그것을 담아갈 큰 캐리어를 샀었다. 캐나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 중 대부분은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사고 들르는 곳마다 기념품을 샀다. 선물도 아름드리 사 젖혔다. 그러다 보니 캐리어를 하나 더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위키백과]

"엄마는 왜 아무것도 안 사요?"


딸내미가 심각한 투로 말을 걸었다.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저기, 저 한국 아줌마들 좀 봐요. 저분들처럼 엄마도 막막 좀 사요."

'그분들이 정신이 나갔나 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필요한 게 없는 데, 뭘 사?"


딸내미는 엄마가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게 속이 상한 모양이었다. 뾰로통해진 딸내미는 다시 매장 안으로 갔다.


"그게 말이에요."


그때 사위가 진지하게 말했다.


"니즈*원츠*가 있는데, 장모님은 너무 니즈 쪽으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에서 보듯이 원츠라는 것은 사람의 욕구가 고도화되면서, 존경받거나 자아실현의 욕구 단계로 간다는 거죠. OO이가 하는 말은 장모님이 필요치 않은 것일지라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시라는 뜻이에요."

'아, 어렵다. 그렇다면 내가 과소비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나는 속으로 갸우뚱하며 사위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하니 그 말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랬다. 그냥 허영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고도의 욕구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것, 즉 원츠에 관심을 가지세요."


알고 봤더니 매슬로의 욕구 단계에서 상위 두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 원츠였다. 마케팅에서는 이 원츠를 '광의의 니즈'로 보고 고객을 공략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딸에게 미안했다. 나도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저 싱글벙글거리며 맘에 끌리는 걸 좀 샀어야 옳았다.




딸내미의 핀잔을 듣고 나니 오래전에 읽었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은 딸내미가 소개하여 알게 됐다. 그 책을 읽으니 공감이 되는 말이 참 많았다. 그래서 그 책을 10권 정도 구입하여 지인들에게 선물했던 적이 있다.


'그래, 딸내미, 니가 항상 옳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두 번 정도 더, 딸내미가 속상해한 적이 있었다.


야시장에서였다. 딸내미가 철판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장면을 내가 영상으로 찍어주기를 원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왜 딸이 좋아하고 있는 장면을 찍지 않아요?

'엥? 이건 무슨 말이지?'


내가 딸내미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딸내미는 틈틈이 유튜브나 쇼츠 영상 혹은 인스타를 해 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 순간에 옆에 있는 우리가 잘 캐치하여 영상을 찍어 주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딸내미는 사실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멋진 장면을 놓치지 않고 찍는다. 그런 면에서 몇 번 원성을 들은 적이 있다.


여권 케이스를 만들 때도 그랬다.


"엄마, 아빠는 왜 안 하세요?"

"우린 필요 없다."


우린 니즈의 유무만을 말했다. 딸내미는 그걸 묻는 게 아니었다. 원츠 쪽으로 접근하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추억이잖아요?"


딸은 여행 중에 다양한 추억을 쌓고 그 와중에 재미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에 익숙해 있지 않아 딸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래전에 읽었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의 저자, 정혜신 님의 말을 정혜신 작가님 개인 TV를 통해 경청해 봤다. 가족 간에는 받을 부채가 있는 것 같아 더 바라는 것이 많다는 것이 요지였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공감에 실패하는 원인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nQe0OVGI3U


또 다른 일도 터졌다. 우리는 간단하게 샀기 때문에 우리 것만 먼저 결제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피크타임이라는 여행사에서 할인카드를 받은 게 있었다. 결제하는 액수가 일정액 이상이면 할인율이 더 높았나 보다. 우리가 샀던 것을 함께 합산하여 계산하는 게 유리했던 것이다.


우리가 샀던 것을 취소하고 딸내외의 것과 합산하여 다시 계산하는 과정을 거쳤다.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우리나라처럼 간단하게 취소하고 재 결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관리자가 달려오고 또 담당 직원은 사인을 하는 등 일이 복잡했다. 할인된 금액은 큰 금액도 아닌 것 같았다. MZ세대들은 그런 것은 눈 뻔히 뜨고 낭비한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마땅히 누려야 할 혜택은 챙기는 그들이었다.


딸내미가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다른 말을 했나 보다. 내게는 그런 버릇이 좀 있다. 그래서 몇 번 딸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었다.


"엄마 또 내 말 끝까지 안 듣고... 엄마는 늘 그래." 라며 속상해했다.


사위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끝까지 듣는 습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건 사회생활에서 품위와 연결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OO가 속상해하는 거예요."


모두 다 옳은 말이다. 에구, 언제까지 배우며 살아야 하나?

딸내미, 니가 옳다. 딸내외, 당신들이 옳다.


그런 알력을 통해 딸의 마음을 많이 알게 됐다. 딸내미는 엄마가 불안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잡히지 않는 엄마였으면 하는 맘이란 걸 알았다. 내심 창피했다.




신기한 게,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딸내외와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다. 더 돈독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얘네들 벌써 보고 싶네."


남편은 이번 여행 중에 딸내외가 잔뜩 정이 들었는지 주말이 멀었는데도 딸내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은 서로를 알아가고 또 정을 쌓기에 참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하여 보면  딸내미가 오히려 엄마 같았다. 이런 건 어쩌면 역기능적인 관계일 수도 있고 성인 아이*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그들이 주인공이라 그들이 맞다 하는 것 옳다고 본다.


언젠가 딸내미가 말한 적이 있다.


"엄마가 내 딸이라면 참 키우기 힘들겠어요. 고집 세고 말 잘 안 듣고..."



그렇다면,
니가 해라, 엄마!



*원츠: wants-> 예를 들면 운동화를 사야 하는 데 그중에서도 나이키가 신고 싶은 것.

*니즈: needs-> 운동화를 하나 장만해야 하는 것.

*성인아이: Adult Children-> 부모로부터의 학대, 가정 불화, 감정 억압 등이 보이는 역기능 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여 삶의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출처: 위키백과)

*매슬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욕구 5단계설'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출처: 위키백과)

#매슬로  #욕구 5단계  #정혜신  #당신이 옳다 # 킹콩마트 #니즈  #원츠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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