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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20. 2024

전철 안에서 받은 의문의 문자는?

- 훈훈한 소설? / 미스터리 추리 소설?

순방을 방불케 했던 진주, 대구 방문이 끝나는 날 오후였다.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서울역으로 왔다.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면 환승 없이 한 번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계양역에 도착한다. 공항철도 전철을 막 탔을 때였다.


<몇 시쯤, 댁에 도착하시나요?>


원래 말수가 적은 K샘의 문자는 짧고 간단했다.


<별일 없죠? 저희가 없는 동안에 OO이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제 막 공항철도를 탔으니 아마 6시경에 집에 도착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때 댁에서 뵙겠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우리 부부는 K샘의 문자를 받고 서로 쳐다봤다.


"뭐 맛있는 것을 준비하셨나 보네."


K샘이 특식을 주문하여 전달해 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남편의 표정은 쏴해 보였다.


"아닐 수도 있지.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 본데..."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하셨겠죠. 왜 집으로 오시겠어요?"


아무 걱정 없이 큰소리치는 나와는 반대로 남편의 표정이 상치 않았다. 우리는 공항철도 안에서 동상이몽이었다. 나는 훈훈한 소설을 쓰고 있었고 남편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쓰고 있는 듯했다.


"만약에 K샘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온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일 거예요."

"이 사람이..."


전철 안에서 남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건만 남편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듯이 나를 저지했다. 무색했다.


K샘은 도대체 왜 우리를 보러 집으로 온다는 것일까? 그것도 출타했다가 피곤한 상태로 막 귀가하는 우리를 득달같이 만나자는 것일까? 할 말이 무엇일까? 우리가 없었던 동안에 활보샘들끼리 의견 다툼이 있었을까? 그럴 분들은 아닌데... 그냥 서프라이즈로 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장난을 치는 것이겠지. 그러기에는 K샘 나이가 환갑이 넘었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K샘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K샘은, 우리 아들이 6년간의 병원을 뒤로하고 재택 투병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활동지원사로 일하셨던 분이다. 그분은 L샘과 부부다. K샘 부부는 아들 간병 부분의 2/3를 맡아서 했다. K샘은 밤 근무 담당이었다. L샘은 오후 담당이었다. 그런데 L샘은 근무가 끝나도 퇴근하지 않고 이어서 밤시간에 남편과 함께 지냈다. 그러므로 K샘 부부는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하루 24시간 중에서 16시간을 아들이 있는 우리 아파트에서 지냈다. 그분들은 매일 저녁 식사도 그곳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 부부의 근무 상황이 그렇게 되어 우리는 상호 편하게 지내려고 아예 세컨하우스를 구입했다. 아들이 있는 본가는 활보샘들이 교대로 드나든다. 그냥 그곳은 32평짜리 요양 병원인 셈이다.


K샘 내외는 우리 부부에게 천군만마와 같은 분이었다. 그분들은 아예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했고 우리 교회로 출석했다. 그러므로 K샘 내외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큰 힘이 되는 분들이었다. K샘은 덩치도 있지만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내심 K샘을 의지하는 눈치였다. 남편은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내가 놀려먹을 정도로 겁보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 우리의 아파트와 자동차를 K샘 내외와 공유하며 만 5년간 지냈다. 그런 삶을 '기묘한 win-win'이라는 브런치 글로 발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268



우리 부부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K샘은 맛집을 찾아 토종닭 백숙을 테이크 아웃하여 세컨하우스 현관문 앞에 가져다 두기도 했고, 명절마다 극상품 과일을 전해오기도 했다.


"아마 우리가 출타했다가 돌아오니 저녁을 사 들고 오시려나 보죠."

"뭘 그러겠어? 난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유는 무슨 이유? 그러니까 머리가 자꾸 빠지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겠어요?"


나는 범사에 걱정하는 타입인 남편을 타박했다.


"하여간 집에 오신다고 하니 뭔가 걱정이 되네."

"하, 그것 참, 뭘 그렇게 걱정하실까? 걱정도 팔자군요."


아주 훈훈한 서프라이즈를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옆에서 남편은 자꾸만 미스터리 추리 소설 작가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철도 전철 안에서 각자 다른 생각으로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K샘이 현관문 벨을 눌렀다. K샘은 아마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가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타이밍이 기가 막혔던 것을 보면...


"어서 오세요."


어, 그런데 K샘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리고 표정도 어두웠다. 원래 K샘은 말이 별로 없는 편이고 표정도 밝지 않은 분이긴 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남편이 K샘에게 물었다.


"네에, 일이 좀 있지요."


K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저음이었다. 그 낮은 목소리가 내 심장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방에서 차를 끓이면서 별 생각을 다 했다. 일단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훈훈하고 좋은 일은 아닌 성싶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남편의 촉이 맞을 것 같았다.


"그게 말입니다."


K샘은 말을 하다가 잠시 멈췄다.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얘기를 시작했다. K샘이.


#win-win  #동상이몽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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