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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20. 2024

하필, 김값이 금값일 때

- 캘리포니아롤 김밥을 만들었다

딸내미가 해준 칭찬으로 쪽파 김치를 또다시 담갔다. 그다음 요리도 이미 계획해 두었다. 바로 김밥이었다. 그러나 그 흔한 김밥이 아니었다. 이름하여 캘리포니아롤 김밥이란 것이다.


매주 반찬가게에서 딸내미네와 우리는 김밥을 한 팩씩 산다. 일요일 점심을, 교회 성도들과 맛집 투어를 하며 제대로 먹기 때문에, 저녁은 간단하게 끝내려는 심산이다. 그런데 이번 주는 김밥을 반찬가게에서 사는 대신에 내가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게는 '김치 소고기 김밥''캘리포니아롤 김밥'에 대한 추억이 있다. 


어느 해였던가? 시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가 시골로 내려가실 때였다. 시아버님은 출타하셨다가 끼니때가 되어도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 자식들을 교육시키시겠다는 맘에서였다. 그 마음을 알고 있던 나는, 시골로 내려가시는 아버님께 김밥을 싸 드렸다. 요기를 하시며 가시라는 의미였다.  그때 내가 쌌던 김밥이 '김치 소고기 김밥'이었다.


김치를 송송 썰어 꼭 짠 후에 밑간을 한다. 다진 소고기를 달달 볶아 김치와 섞는다. 그런 후에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알맞게 간을 하여 버무린다. 그 밥을 김 위에 잘 펼친 후에 준비해 놓은 김치와 소고기를 얹어서 말면 된다. 그렇게 싸 드렸던 김밥을 아버님이 맛있게 드셨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먹어본 김밥 중에서 최고였다."


아버님은 몇 번이고 그 김밥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까짓 거, 별 것도 아닌데 다시 한번 더 해 드리는 게 무슨 대수일까 했었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장손이 사고를 당한 것에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 그런 자식을 돌보고 있는 우리를 쳐다보지 못하시는 눈치였다. 속이 탈 대로 타셨던 아버님은 단순한 감기가 왔나 싶었는데 결국 일어나지 못하셨다. 노인들은 회복이 쉽지 않았다. 아버님의 경우가 그랬다. 장손이 누워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더니 정작 당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6년 전이었다. 그 하찮은 김치 소고기 김밥조차도 다시 해드리지 못했는데 아버님은 황망히 가셨다. 나는 이리저리 봐도 불효가 막심한 맏며느리였다. 


김치 소고기 김밥 - https://m.10000recipe.com/recipe/1157578




IMF 외환위기 때였다. 유집사님 댁에서 구역 예배를 드렸다. 유집사님네는 IMF 사태 때문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서 친정이 있는 섬으로 당분간 가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구역 식구들을 대접하고 싶다며 준비하신 최후의 만찬이 바로 캘리포니아롤 김밥이었다. 


"어머나, 이런 김밥도 있네요?"

"네에, 보기보다 만들기 쉬워요. 이렇게 각자 접시에 김을 놓고 싸 먹으면 돼요."


유집사님은 정성껏 준비한 김밥속 재료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그런데 유집사님의 눈은 이미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눈물로 준비한 김밥속이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쌀 한 톨까지 긁어서 지은 밥이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애써 슬픔을 감추며 그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울면서 먹었던 김밥이었다.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린 그때 눈물 젖은 캘리포니아롤 김밥을 먹었다. 그래서 지금도 캘리포니아롤 김밥만 보면 그때가 떠오르곤 한다. 그 이후로 유집사님네의 소식을 들은 적은 없다. 아무쪼록 잘 회복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 좋겠다. 




그 이후에 몇 번인가 캘리포니아롤 김밥을 준비했었다.


"엄마, 이건 하루 종일 먹을 수도 있겠다."


아들은 이 김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가 김밥 재료를 만들고 있는데도 한쪽에서 벌써 김밥을 말아먹곤 하던 녀석이었다. 그렇게 맛있다고 했던 캘리포니아롤 김밥을 먹지도 못하고 아들은 저렇게 12년째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 있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다. 가슴이 찢어진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 둔 것 같다.

캘리포니아롤 김밥의 단점은 딱 한 가지다. 한 없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뉴욕의 델라웨어대학 학생식당에서 나는 한 달 내내, 주야장천 캘리포니아롤만 사 먹었다. 다른 메뉴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그것이 가장 입맛에 맞았다. 학생 식당에서 먹었던 것은 우리나라 김밥과는 약간 다른 '캘리포니아 롤 스시'였다. 그런데 그것이 한 끼 식사 가격 치고는 싼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되었을 때 식권 카드에 돈이 꽤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 카드에 있는 잔액으로 식사를 하는 대신에 다른 것을 구입할 수도 있느냐고 학생식당 직원에게 물어봤다.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롤로 점심을 때우고 남았던 식권 값으로 백팩과 맨투맨 티셔츠, 대학 로고가 적힌 캡 모자, 문구류 등을 잔뜩 샀다.

[델라웨어 대학의 학생식당 식권용 카드로 결제했던 백팩과 캡 모자


그러나 그 해 11월에 아들이 사고를 당하여 그런 별미를 만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바쁜 12년의 세월을 보냈다. 아픈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제 나는 퇴임하였으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마침내 캘리포니아롤 김밥을 만들어 볼 때가 된 것 같았다. 레시피는 검색해 보면 많이 나와 있다.


캘리포니아롤 알록달록 김밥으로 만들기: 네이버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rkimjd/221248282951



그런데 나는 레시피와는 약간 다르게 만들었다. 날치알과 양념장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오뎅과 김밥햄은 살짝 볶았고 계란은 황백지단으로 하지 않고 그냥 부쳤다. 


딸내미네와 우리 것을 따로 한 통씩 준비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김밥김을 각자의 접시에 올려놓고 그 위에 양념하여 버물린 밥을 펼쳐놓는다. 그다음에 갖은 김밥속을 넣고 김으로 말아 먹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김값이었다. 마트에서 캘리포니아롤 김밥을 만들 재료를 다 산 후에 김밥김을 사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하필, 내가 몇 년 만에 캘리포니아롤 김밥을 만들려고 하는데 김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쇼핑할 때 가격을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가격표를 보게 된다. 인터넷 구입하던 것을 직접 사게 되면서 생긴 버릇이다. 그리고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된다. 항상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피부로 느낀다.


김밥김을 몇 년 만에 사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밥김 10장에 3,000원~5,000원 정도 했다. 딱 10장인데... 내가 생각보다 비싼 김값에 놀라는 이유는 또 있다. 지인이 건어물을 팔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에 김을 10만 원 정도씩 박스로 구입한다. 곱창김을 대놓고 사 먹는다. 남편은 아예 그것을 식탁한쪽에 두고 먹는다. 그래서 곱창김이라 비싸겠거니 했고 김값을 가늠하지 못하고 살았다. 





솔직히 김 10장에 몇 천 원씩 주고 사려니 영 맘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싸게 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 김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모양이다. 


아침 뉴스에 김값에 관한 것이 나왔다. 김값이 금값이란다. 세계적으로 수요는 늘어나고 바이어들은 김을 구할 데가 한국 밖에 없어서 그렇다는 내용이었다.


얼른 인터넷으로 김밥김 100매짜리를 하나 주문했다. 곧 김값이 금값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음 주에는, 시아버님이 그토록 좋아하셨던 '김치 소고기 김밥'을 만들 예정이다. 그러려면 김밥김이 필요하다. 오전에 주문했더니 오후에 도착했다. 도착한 김밥김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김도 귀하신 몸이다. 



앞으로는 요기로
김밥 사 먹기도 힘들 것 같다.

김값이 금값이라니...

 #캘리포니아롤 김밥  #김치 소고기 김밥  #김값 금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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