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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동 Dec 06. 2022

자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West Highland Way) 트래킹


* 글에 등장하는 지역 이름, 사람 이름, 위스키와 증류소 이름의 원어 표기 및 따옴표는 편의상 생략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 정도야 뭐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 글래스고 서북쪽 조그만 마을 멀가이브에서 시작해 로몬드호수를 지나,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높다는 네비스산을 옆으로 끼고, 서해안의 항구 마을 포트 윌리엄까지 걷는 길. 오래 전 양치기들이 양들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다녔던 길, 때론 가톨릭 수도사들이 선교 활동을 위해, 또 다른 시기에는 개신교 설교자들이 종교 개혁의 열망을 품고 걸었던 길. 하일랜더들이 로우랜드로, 또 반대로 곡식과 고기, 각종 생필품을 교환하기 위해 오갔던 길, 또 잉글랜드 정부군이 끝까지 저항하는 이른바 ‘북쪽의 야만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수도 없이 행군하고 퇴각하던 길. 지금은 영국의 대표적인 트래킹 코스가 되어 매년 수만 명의 트래커들을 불러 모으는 길. 총 길이 154㎞, 7일을 걸으면 하루 평균 22㎞를 걷는 길.








▲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의 스타팅 포인트, 멀가이브









‘위스키’와 ‘자연’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두 키워드이다. 여행 가이드북이나 유튜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스코틀랜드’를 검색하면 윈도우 배경 화면에서나 볼 법한 경관이 수도 없이 펼쳐진다.


도시의 삶에선 상상도 어려운 풍경들. 이왕 한 달이나 가는 거, 일주일 정도는 자연을 제대로 느껴 보자며 호기롭게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 트래킹을 결정했다. 사실, 이 정도야 뭐, 라는 생각도 있었다. 사람의 평균적인 걸음의 속도가 시속 4~5㎞라고 하면 20㎞는 4~5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한 거리가 아닌가.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점심나절 지나 도착할 것이고, 저녁엔 지나는 마을 펍에서 맥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튜브에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를 검색하니 덩치 좋은 한 백인 남성이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를 실패한 10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놓았다. 이유는 날씨, 준비 부족, 장비의 고장 등…… 여러 가지였다. 그 중 눈에 띄었던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과신’이었는데, 이 영상을 한국에서 볼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이 남성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 에든버러에서 아서스 시트를 오른 뒤 얻게 된 정강이 근육의 통증과 감기가 그것을 약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트래킹 전 글래스고에서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괜찮을 거야’ 하며 대충 넘겼던 일부 장비들 ―핸드스틱, 장갑, 헤드랜턴, 보온병……― 을 구입했다.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출발 전날까지 내리던 비와 떨어지지 않던 감기가 다음날 아침엔 말끔히 개었다.





자연 ‘감상’에서


자연에 대한 ‘도전’으로



첫날, 걷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이 평지였고, 정말로 사진에서나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파랗고 노란 언덕들, 멀리 보이는 설산,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 소리, 겨울철 잦은 비에 젖은 땅에서 나는 질퍽한 발자국 소리, 서울에선 느낄 수 없는 상쾌한 냄새의 들숨.


글래스고에서 묵었던 숙소의 관리인 아저씨는 우리더러 겨울에 스코틀랜드에서 트래킹이라니, 미쳤다고 했다. 그걸 하는 건 너네밖에 없을 거라고. 스코틀랜드는 겨울이 우기(雨期)라서,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 뿐 아니라, 날씨가 엄청나게 변덕스럽단다. 트래킹이 끝난 뒤 포트 윌리엄의 한 펍에서 만난 아저씨의 표현에 따르면 겨울철 스코틀랜드는 “골목을 돌면 날씨가 바뀐다.” 그러나 날씨는 더없이 좋았다.








▲ 첫째 날의 날씨. 멀리 양 떼가 보인다.







▲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지……







이렇게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의욕이 앞서 빠르게 걸었던 탓일까, 첫날부터 양 발에 발가락 아래쪽으로 큰 물집이 생겼다. 발바닥의 앞쪽이 바닥에 스치기만 해도 쓰라렸다. 나는 과거 군대에서 행군 때 물집을 터트리고 약을 발라 주던 하사관을 떠올렸다.


다행히도 우리가 첫날 도착한 작은 마을에 약국이 있었고, 문을 닫기 직전에 들어가 손톱깎이와 반창고, 약을 살 수 있었다. 우리가 구매하는 것을 보고 친절한 약사는 대번에 물집이라는 것을 알았고, 물집을 터트리지 않는 것이 2차 감염을 우려한 약사로서의 조언이라고 말은 해 주었지만, 자신은 트래킹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그의 말에 나는 내 기억 속의 하사관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물집만이 아니었다. 첫날 오전 10시에 시작한 트래킹은 저녁 5시가 넘어서 끝났다. 이곳은 겨울에 해가 매우 짧아, 5시부터는 무서운 속도로 해가 진다. 코스 중간에 있는 위스키 증류소를 들려 여유롭게 투어와 시음 프로그램을 들은 탓도 있었지만, 22㎞의 거리는 4~5시간 정도로 다 걸어지지 않는 거리였다. 질퍽한 흙길 위에서 우리의 걸음이 예상보다 훨씬 느렸다.


뿐만 아니라 다음날 도착지의 숙소를 예매하려는데 숙소들이 전화를 받지도, 영업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비수기인 탓에 트래킹을 하는 이들이 현저히 적어서 아예 문을 열지 않는 곳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길 위에는 A와 나, 거의 우리 둘밖에 없었다. 우리가 따뜻하고 안락한 도시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내일 비라도 내린다면? 물집이 정말 2차 감염을 일으킨다면?’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는 게 결론이었다. 불 켜진 집이나 사람 하나라도 있다면 이 추운 날씨에 우리를 길바닥에서 재우기야 하겠느냐. 트래킹을 결정할 당시에는 분명 자연을 ‘보러’ 가는 것이었는데, 고작 하루 걸은 뒤부터는 자연에 대한 일종의 ‘도전’ 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A는 첫날부터 엄살이라고, 걱정 말라고 했지만, 나는 솔직히 좀 무서웠다.





이놈의 몸뚱어리



다음 날에도 다행히 날씨는 좋았다. 다만 길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달라졌다. 첫날은 도시에서 시골로 넘어가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높고 낮은 바위산과 숲, 호수가 등장했다. 차로는 3시간이면 스쳐 지나갈 152㎞의 짧은 길 위에서, 그것도 고작 시속 4㎞도 안 되는 걸음걸이로 걷는 길 위에서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풍경이 펼쳐지는 것에 우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로몬드호수에서의 A








▲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의 풍경







물집을 터트리고 나니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러나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놈의 몸뚱어리. 손발에 땀이 많은 편이라, 오전 나절을 걸으면 금세 신발 내부가 젖었고, 반창고가 떨어졌고, 다시 발이 쓸렸다. 발 앞쪽이 아프니 그쪽으로 걷지 않으려 노력하는 동안 발등과 뒤꿈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걸음걸이의 변화는 온몸의 근육을 달리 사용하도록 하는 것 같다. 평소 걷지 않던 방식으로 걸으니 종아리, 허벅지,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정강이는 시작일 뿐 이었다!). 점심에 한번, 오후에 한번 양말을 갈아 신었다. 그렇게 하면 한두 시간은 버틸 만했지만, 또 다시 쓰라리기 시작했다.








▲ 발을 자주 말려야 했다.









가끔씩 펼쳐지는 감동적인 풍경 외에는 두 명의 숨소리와 발소리, 바람이 모자를 스치며 내는 소리와 새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길 위에서 나는 내 몸에 집중했다. 아픈 곳을 피해 걸으려는 의식적인 노력과, 그렇게 함으로써 벌어지는 근육들의 변화들. 당장의 아픔을 피하려다 새로운 근육통을 얻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픈 발을 일부러라도 눌러 걷기 시작했다.


우리의 몸은 냄새나 어둠, 소리나 온도에 적응하듯이 통증에도 적응한다. 밤사이 물집이 말라 굳은살이 되려고 할 때마다 다시 걸어서 땀이 차고, 결국 물집은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하지만 예상 가능한 아픔이 되며 그것은 견딜 만해졌다.





배부른 녀석들



몸에 집중하며 겪은 다른 재미있는 경험도 있었다. 둘째 날 저녁, 해가 저물고 결국은 숙소를 예약하지 못한 채로 목적지에 도착해 겨우겨우 문을 연 숙소와 연락이 닿았다. 일종의 산장이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혼자 지키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통화할 때부터 손전등이 있느냐, 밥은 먹었느냐 걱정이 많은 감사한 분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의 숙소는 잡았냐며 우리를 다그쳤다. 우린 잡지 않았으므로, 또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가 만나는 모두가 우리를 ‘crazy’라거나 ‘brave’라고 말했다― 혼났다. 아주머니는 문을 연 유일한 숙소에 강제 예약을 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의 점심이었다. 앞으로 갈 길에는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숙소에서 도시락을 싸 가야 한단다. 그러나 여름철 이곳의 많은 숙소들이 도시락을 제공하는 것과는 달리, 이 숙소는 도시락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없으므로 부엌에 있는 걸로 알아서 싸 가라고 했다. 우린 생명의 은인을 만난 기분으로 시키는 대로 부엌에 있는 거의 유일한 먹을 만한 음식인 통조림 소시지와 빵을 가지고 저녁을 해 먹고, 다음날 아침을 해 먹고, 점심 도시락을 쌌다.








▲ 저녁 다섯시, 빠른 속도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배가 불렀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으나, 세끼 내리 먹는 통조림 소시지는 정말 너무 맛이 없었다. 우리는 때가 되어 마지못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시간 못 걸어 둘 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빠져 길 위에 엎드려 버렸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도 있었겠으나, 호수를 따라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셋째 날 길은 유독 험했다. 아주머니가 예약해 준 숙소까지 남은 거리는 5㎞ 남짓이었는데, 이미 시간이 늦어 어둑해지고 있었고, 걸어야 할 길은 숲이었다.


소시지가 너무 맛이 없다며 싫어하던 A는 소시지를 꺼내 보라며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했고, 나는 그 두려운 순간에도 평소에 맛없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 A의 성정이 생각나 한참을 웃으며 소시지를 꺼내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소시지를 먹자 몸에 힘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소시지를 먹은 뒤 우린 직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거의 뛰다시피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우린 숙소에 도착해 한참을 멍을 때렸다. 둘 다 서울에서 나름 몸 쓰는 일을 하면서도(A는 조경 일을 한다) 그 정도의 배고픔을 겪어본 적이 없었고, 무언가를 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그렇게 뼈저리게 느껴 본 적이 없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먹으면 힘이 난다’는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그러나 놀라운 사실. 우리는 배부른 인간들이 맞았고, 맛 이전에, 우리가 여태 진실로 이해하지 못했던 몸과 음식의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여긴 우리 땅이야



신체가 길에 적응하자, 주변이 보였다. 그 전까지 길이 바뀌며 마주하게 되는 커다란 풍경의 변화에 놀라고 감동하기 바빴다면, 이제 그 커다란 풍경들 속에서 작은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끼였다. 둘째 날에서 넷째 날에 걸쳐 우리는 로몬드호수를 왼편에 두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호수 옆을 걷기도 했는데,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길에서 동일한 종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을 여러 번 거쳐 지나갔다. 뚜렷하게 구분되는 군락은 소나무(Scottish pine) 군락과 자작나무 군락이었다. 이 둘 모두 아마도 인간에 의해서 심고 길러진 나무인 듯 보였는데, 이유는 중간 중간 나무 밑 둥만 남은 벌목지들이 있었고, 군락마다 나무들의 키와 모양, 나이가 비슷해보였기 때문이다. 한쪽 숲을 베면, 다른 쪽 숲에는 심도록 일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호수와 가까워질수록 가파른 경사와 돌이 많이 섞인 지반에 의해 나무들의 모양은 다양했고 ―나무의 모양이 불규칙하면 목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종도 비교적 섞여 있었다.


그러나 관리되는 군락, 관리되지 않는 군락에 개의치 않고 어디에나 펼쳐진 것이 겨울에도 새파랗게 자란 이끼였다.








▲ 뒤로 보이는 소나무 군락의 이끼







처음 그것이 눈에 띈 것은 길을 걸으며 본 어떤 소나무 군락에서였다. 새파란 이끼가 나무 끝까지 타고 올라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서, 오직 하나의 색깔로 이루어진 숲은 대낮임에도 어두운 밤처럼 캄캄한 느낌을 주었다. 그 파란 세상은 인간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긴 우리 땅이야. 숲을 벗어나자 동일한 군락의 벌목지가 나타났다.


밑등걸만 남은 나무 곁에, 그 위에, 이끼들은 끈질기게 자랐다. 자작나무 군락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무 아래, 쓰러진 나무 위에, 돌 위에, 이끼는 모든 곳을 덮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특히 하일랜드 지역은 대부분이 습지로 이루어져 있고, 과거 활발한 화산 활동의 영향으로 땅이 매우 강한 산성이며, 해양성 기후로 인해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 특히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


반면 땅을 파고들지 않으면서 그 겉에서 적은 양의 물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한 이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선 높고 낮은 산들에 쌓인 눈들이 녹아 여러 방향으로 작은 물길을 형성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물길들 역시 이끼의 번식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끼, 그것은 인간들이 심고 베는 나무뿐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 세기에 걸쳐 걸어 왔을 그 길마저 사람이 적은 잠깐의 계절을 틈타 침범하고 있었다. 여긴 우리 땅이야. 그러나 그들은 주장하지도,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그저 조금씩 ‘생성’할 뿐이다. 그 조그만 녀석들이 온 숲과 바위, 길을 무심하게 점령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라던 스피노자를 떠올렸다.





자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



자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 다섯째 날부터는 눈과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아 우리가 모르던 새에, 폭풍 시아라(Ciara)가 스코틀랜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넷째 날까지의 맑은 하늘은 일종의 폭풍전야였던 것.


우박은 2~4㎜정도의 크기였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을 땐 괜찮은데,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박이 얼굴을 때렸다. 가뜩이나 우박이 들어갈까 실눈을 뜨고 걷는데, 우박을 품은 폭풍이 우리를 덮치면 한동안 눈앞 5m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이 눈과 우박이 쌓여 길을 덮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우박이 처음 내린 다섯째 날이 걷기에 그냥 얼굴이 따가운 정도였다면, 어찌나 빠른 속도로 쌓이는지 여섯째 날엔 발이 눈에 푹푹 빠지기 시작했다.








▲ 멀리 보이는 희뿌연 안개가 모두 우박이다. 우리에게로 다가오면, 얼굴을 때린다.








▲ 하루만에 금세 쌓인 눈









급기야 여섯째 날 코스에는 ‘악마의 계단(Devil’s Staircase)’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산이 있었는데, 이 산은 눈으로 완전히 덮인 설산이었다. 그나마 개를 데리고 정상을 산행하는 동네 사람들 ―도대체 이 사람들과 개는 이런 날씨에 이런 곳을 ‘산책’ 하다니!― 덕에 50㎝씩 푹푹 찍힌 발자국을 따라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 내려간 뒤, 길은 완전히 새하얀 눈밭이었다. 발은 더 깊이 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눈이 안온 며칠 간 따라왔던 길가에 늘 헤더1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간간히 눈 밖으로 삐져 나온 헤더를 따라 길을 추측하며 걸었다.



정상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간간히 보이던 해가 모습을 감추고, 또 다시 우박이 쏟아졌다. 엄살 부리지 말라던 A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그것은 거대한 자연에 대한 공포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눈보라 치는 설산 속에 사람은 정말 우리 둘 밖에 없었고, 가끔씩 눈밭을 뛰어다니는 이름 모를 새들이 보였지만, 무서운 바람과 우박 소리로 가득 찬 거대한 침묵이었다.



우리가 느낀 공포 혹은 아름다움과, Devil’s Staircase라는 이 산의 이름은 어떤 점에서 아마도 연결된 것일 게다. 끔찍한 날씨 때문이건, 이 산 혹은 계단(사실 우리는 눈 때문에 계단은 구경도 못 했다)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건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두려움을 주는 것에 대해서 ‘악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악마는 동시에 쾌락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이다. 신화 속 악마들은 언제나 인간을 쾌락으로 유혹하며, 인간은 고통과 그것을 맞바꾼다. 어쩌면 이 산의 이름은 정상에 도달했을 때 펼쳐지는 장관의 달콤함이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 혹은 두려움과 맞바꿀 가치가 있다는 뜻일지 모르겠다.



1 헤더(heather). 후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위스키 제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꽃이며, 스코틀랜드 전역을 뒤덮고 있는 꽃이다.








▲ 악마의 계단(Devil's Staircase)눈에 덮여 계단은 보이지 않고, 빠지는 발 때문에 걷는게 배로 힘들다. 쓰러진 A.








▲ 악마의 계단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







천사와 악마, 선과 악, 그것은 인간이 그 이유를 모두 알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며 생겨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위스키를 숙성시키기 위해 원액을 오크통에 담은 뒤 최소 8~10년을 그대로 두는데, 연간 2%씩 증발되어 사라지는 원액에 ‘앤젤스 셰어(Angel’s Share)’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였다. 천사들이 몰래 통에 들어가 그만큼을 가져가고, 대신 위스키의 맛을 좋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왜 우리에게 이런 슬프거나 기쁜 일이 일어나는가하는 의문, 그것은 인간들에게 때로 감사해야 할 천사, 혹은 원망해야 할 악마가 있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언제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는 필연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파악할 수 없을 뿐이다. 그가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천사와 악마를 상상하고 믿는 것과 우리가 그것의 원인을 아직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슬픔을 피하고 기쁨을 추구하기 위하여 우리가 특정한 실천을 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의 적합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천사나 악마가 존재한다고 믿음으로써 우리는 더 적합한 원인을 찾을 필요성을 상실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은’ 알지 못하는 원인이 있고, 그것을 알고자 하는 궁금증을 놓지 않을 때에 비로소 과거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그 나름의 이유들이 차차 밝혀진다. 우리는 위스키의 일부를 천사들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위스키에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골목을 돌면 날씨가 바뀐다’던, 속을 알 수 없는 스코틀랜드의 하늘









인간의 길



물론 인간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때로는 차라리 악마나 천사의 소행이라 믿는 편이 더 적합한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트래킹 마지막 날, 목적지인 포트 윌리엄에 다다라서 만난 거대한 소나무 벌목지는 흡사 대량 학살의 현장 같았다. 40-50㎝ 정도 되는 지름의 나무는 모두 베어져 있었고, 아직 많이 자라지 못한 어린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전쟁터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어느 곳보다 잘 보존되고 있다는 스코틀랜드 자연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앞서 만났던 벌목지와, 마지막에 만난 벌목지가 영 마음에 걸려 그것에 대해 찾아보았다.








▲ 거대한 소나무 벌목지저 멀리 조금씩 남은 어린 나무들이 보인다.









1980년대 영국 정부는 목재 생산을 이유로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역의 습지에 대량으로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깨닫는다.


앞서 언급했듯 이 지역에는 나무가 쉽게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이끼가 나뭇가지의 끝까지, 이파리까지 점령해 그들의 성장을 방해했다. 더 큰 문제는 이곳 습지와 여기서 자생하는 이끼가 연간 추정 4억 톤 가량의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부가 나무를 심느라 습지와 이끼를 대량으로 훼손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훼손한 습지의 일부만 가지고도 당시 스코틀랜드의 모든 가정과 산업 시설에서 배출하는 탄소량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해, 스코틀랜드의 습지 전체는 미국 전체 숲이 축적한 이산화 탄소량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뒤 시민 사회와 국제기구의 원성에 의해 영국 정부는 결국 1997년부터 습지를 보호하려고 나무를 도로 없애 재습지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벌목지의 일부 또한 그런 재습지화의 대상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나무는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이었지만, 습지와 이끼는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에 그들은 무심한 그 생성을 통해 우리에게 맑은 공기를 선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지구를 걱정한 일부 환경 운동가들과 과학자들의 적합한 질문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성찰이다.



인간의 길은 참으로 무력하다. 이끼에 침범당하고, 고작 몇 시간 내린 눈에 완전히 덮여 버린다. 그 길을 걷는 인간의 신체 또한 정말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이 조그만 점들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


트래킹이 끝난 뒤 방문한 글렌파클라스 증류소에서는 기후 위기가 위스키 증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어쩌면 이끼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선악이 없는 자연의 입장에서, 그것이 꼭 나쁜 일일까.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어쩌면 인간이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그 나름의 당연한 일이 아닐까.









▲ 우리가 걸어야 했던, 길이 보이지 않는 풍경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파괴와 파멸로 몰고 가는 존재는 없다. 인간 자신에게 슬픔이 되는 활동을 그런 식으로 합리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부적합한 인식 때문이며,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다. 모든 존재는 진정으로 더 기쁜 것을 마주친다면, 슬픔 대신 그것을 선택할 잠재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선악이 아닌 윤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리는 질문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진정 기쁜 마주침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라는.



자연에는 길과 길 아닌 것의 구분이 없다. 그 연약한 길을 따라 7일을 걸었다. 몸에 대해서 생각했고, 자연에 대해서 생각했다. 처음엔 그것을 ‘보러’ 왔었고, 나중엔 그것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 되어 있었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의 도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실천이 초래할 영향과 결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늦게라도 재습지화를 진행하는 것은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뉘엿뉘엿 해가 질 시간에 포트 윌리엄에 도착해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다들 미쳤다고 하는 겨울에 폭풍까지 만나 가며, 대책 없이 걸었다. 아마도 천사가 우리를 지켜 주었으려나.








▲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의 엔딩 포인트, 포트 윌리엄포트 윌리엄에는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는 동상이 있다.






참, 위스키 이야기는 마지막 편인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윙크)








        











글쓴이 김지원(석운동)




‘석운동’이라는 이름의 작업자로, 가구와 공간을 디자인하고 제작합니다. ‘아젠다 2.0’의 공동 편집자를 맡고 있으며, 올해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읽으면서 내 삶과 주변, 세상을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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