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오해와 불편함 속의 진실

천국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

by 생명의 언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작중 요셉 스탠슨 선교사는 머나먼 이국의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주신 작은 재능이 하필 신념을 지킬 용기이니, 어쩔 수 없지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핍박함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대사의 종교적, 철학적, 역사적 의미 같은 건 잘 모른다. 나의 가난함은 비록 부끄러움일지언정, 진실함을 위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이 길을 걷는 순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죽는다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유진 초이"가 가장 크게 상심하고 슬퍼하고 무너질 것도,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할 것이라는 것도, 모든 것을 다 알았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Spirit)은, 마침내 그 길을 걸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작고 가난한 열망으로 말미암아, 그의 불꽃처럼 뜨겁고 고귀한 열망을, 감히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의 말은 내게 가슴 아팠고, 그렇기에 더욱이 나를 부끄럽게 했고, 또한 나아가서 나를 기쁘게 했다.


이제 내가 그의 말을 흉내내어 보려고 한다.



"주께서 제게 허락하신 작은 재주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진실한 마음이니, 어쩔 수 없지요. 이 가난한 영혼의 고백과 증거가 한 영혼이라도 빛으로 인도하는데 자그마한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가난함을 자랑할 수 없을지언정, 나의 가난함과 나의 부끄러움을 사랑한다. 그 마음의 순결함에 기대어, 나의 첫번째 고백은 이와 같이 시작하려 한다 :



"아마도 이 세상에서 '순종'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나는 순종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신"을 싫어했다. 특히,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라는 말도, "그리스도"라는 말도, "오직 그리스도"라는 표현도, 그러한 것과 관련된 모든 개념들을, 거부했다. 그것들이 마치 목에 걸린 불편한 가시처럼, 나를 귀찮고 짜증나고 번거롭게 했다. 더 나아가서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기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증명 불가능한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그리하여 그 특유의 단어와 용어와 표현들을 싫어했다. 한때, 순종이라는 말을 내가 가장 싫어했다.


그러나 내 삶은 "신을 버리고 홀로 설" 능력도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집단에 속하지 못했고, 방황했고, 헤매었고, 가족은 내게 안정과 쉼이 아니라 벗어나야만 할 유배지와도 같았다. 나는 언제나 독립을 갈망했고, 때때로 잠시 그 꿈을 이루었을 때조차도, 이름 모를 외로움과 공허함과, 쓸쓸함과, 불안과, 슬픔과 같은 것들이 늘 마음속 어딘가에 강처럼 안개처럼 흘렀다.


그리고 내 삶은 그 어떤 아름다운 증거도 고백도 되지 못했다. 그리도 고집스럽고 오만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교만했던 주제에,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성취하지도 못했고, 그리 성취할 의지도 없었으며, 세상에 빛이나 소금이 되지 못했다. 나의 삶은 그저 버려도 그만, 버려져도 그만인 그러한 삶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거의 모든 삶의 주기마다 나의 오랜 업(業)의 지난한 역사를 되풀이하였고, 그로부터 말미암아 늘 항상 죄를 지어왔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처음부터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도록 태어난 것 아닙니까." 하고서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신 그 작은 재능이, 지금과 같이 꽃을 피우기 위한 바로 그 토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나는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흙 속에, 원인 모를 오래된 슬픔과 공허와 쓸쓸함과 외로움과 방황 속에서, 증오와 분노와 함께한 그 오랜 밤들에 대해서, 나의 가난함에 대해서, 나의 부끄러움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최종적으로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가난함과 부끄러움을 발판 삼아서, 다음과 같이 :



"나 같은 놈조차도 '사랑하시고', '기뻐하셨다면', 당신으로 말미암지 않으실 리가 없지 않겠는가."



이제는 내게 편안해진 말, 이제는 내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내게 사랑이 된 말, 이제는 내 영혼 안으로 깊이 들어와서는 활짝 꽃을 피워낸 말, 나의 기쁨이자 나의 희망이 된 말,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나의 정교한 지식과 논리와 언어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으셨다. 나의 그럴듯한 서술과 지성과 내가 형성한 구조와 체계와 학문적 가르침 같은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내게 항상 일관된 음성만을 전하셨다 :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고백하고 증거할 때의 너의 사람을 홀리는 순수한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로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종교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교단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교회나, 성당이나, 절이나, 사원에 가지도 속하지도 않는다. 비록 나는 "골수" 개신교 집안의 핏줄로 태어났고, 그 피가 내 안에 깊고 진하게 흐르는 것을 선명히 느끼지만, 그럼에도 지금껏 내가 교회에 간 것은 딱 두 번, 아주 어려서 부모님 손 잡고 할머니께서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군 시절 15사단 신교대에서 (아마도 천주교였을 것이다)종교행사에 참여했을 때, 이렇게 딱 두 번이었다. 심지어 나는 지금껏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고, 성경을 읽는 것도, 교리나 신학을 공부하는 것도,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못생긴 잡초"다. 나의 신앙은 들판에서 혼자 제멋대로 피어났고, 나의 영성은 광야에서 홀로 외롭게 형성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증거할 수 있다 : "성령께서는 비록 교회 바깥에 있더라도, 오직 진심을 다하여 사랑하고, 열망하고, 경외하고, 기뻐하는 자들 곁에도 임해주신다"고. "비록 나와 같은 이들에게조차도 그 사랑을 나누어주신다"고. 지금의 나의 못생긴 잡초 같은 신앙과 영성이 그 증거라고. 때때로 성령께서는 내가 청하지 않았음에도, 나의 영(Spirit)의 고요하고 순수한 열망을 들으시고 내게 먼저 찾아오셔서 가르침을 주셨고, 그때마다 나는 크게 감동하였고, 크게 몰입하였으며, 그 모든 순간들이 가르침인지조차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일인 것을 알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내가 소중히 간직했다. 가슴 속에, 나의 영혼 안에 가장 소중한 보물로써.



앞서 언급한, 요샙 스탠슨 선교사의 위대한 영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아가던 날, 그의 장례식에서, 나는 아무런 예고도 계획도 없이, 단 한 문장을 목격하게 된다. 정말로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그때에는 신앙이고 뭐고 그런 것도 없었다. 다만 그 드라마를 계속 보는데, 그의 장례식을 장식하는 단 한 문장이 내 영혼 안으로 한순간에 강렬하고 깊게 파고들었다.


"신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아, 이것은 무엇인가. 그 말이 설명할 수 없이 내 안의 무언가를 울렸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즉시 보던 것을 멈추고, 그 문장의 전체를 찾아보았다. 지금도 내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경외하는 한 문장으로 망설임 없이 꼽는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 11:25-26)


이것이 내게 주신 가장 높으신 가르침이자, 동시에 가장 내 영혼의 핵이 되는 말씀이다. "영원한 생명", 그것은 딱히 종교적인 것도,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것도, 형이상학적이거나 현학적인 말장난도 아니다. 나와 같았을, 아니 나보다 더한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과 어두움 한가운데에서 헤매고 방황하고 있을 영혼들에게, 정말로 유일하고도 영원한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실재적인 무언가, 이다. 이 길을, 마음이 있는 자, 의지가 있는 자, 진실로 걷고자 하는 그 누구라도 다 걸을 수 있도록, 다 열려 있다고, 그저 용기 내어 첫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고, 그리 아버지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영혼들을 성령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오히려 그 걸음들과 마음들이 서투르고 가난하기에 더욱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고,


그리 말하고 그리 증거하고 그리 고백하고 싶은 것이, 아마도 나의 순결한 초심일 것이다.



이제, 나에게 순종이라는 말은 기쁨이 되었다. 그 말은 내게로 와서 "그분의 이름"이 되어주었다.


이는 "기적"이라고, 나의 "이전" 모습을 모두 기억하는 내가 감히 증거한다. 기적은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부활의 희망"이라는, 밤하늘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별을 본다. 그리고 나와 같은 "형제"들과 밤하늘을 헤매이면서 그 별을 찬양할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