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무의식의 어두움 너머의 빛

긍정의 힘이라는 기적을 통과하다

by 생명의 언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막9:1)


사람은 육을 바라고, 보이는 것을 바란다. 나는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체험했다. 소위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고 나면, 그때에는 상상하던 것과 같은 절대적인 평강과 고요 속에서 영원히 거할 것 같았으나, 내가 통과하여 지나간 모든 앞서 걸어간 사람들은 결국에는 돈과 명예에 집착했고,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누군가와 갈등을 빚고, 고집과 아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앞과 뒤를 달리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정당하고 순수한 척하는 이들 역시도, 결국에는 자기가 옳다는 인식과, 그 좁은 인식으로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재단하려 드는 마음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들은 진리에 대하여 전문가들이었고, 정교하였고, 학술적이었으며, 기술자였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았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나는 소위 '기적'을 애타게 갈망했다. 어느 순간부터 뜻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랐고,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들에 집착했다. 결국 내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랐고, 내게 찾아올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랐으며, 스스로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여겼으나 그럼에도 결국에는 그 돈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결단조차 내리지 못했으되, 외적인 현실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괴로워했다. 그러한 눈앞의 현실에 내 마음이 지독하게 흔들리는 것을 나는 고요한 시선 너머에서 지켜보면서, 그 무의식의 오래된 깊은 어두움들이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깊이 얽메고 있는지를 절감했다.


지금도 나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잘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이제 확실하게 안다 : 내가 홀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아버지"라는 언어를 마침내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과, 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하늘나라(천국)"란 곧 아버지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나라가 임하는 것'이란 당연히 '아버지께서 임재하시는 것'이며, 이때에 사람의 능력과 힘으로는 결코 무의식의 거대하고 깊은 어두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되, 마침내 '권능'으로 인하여 내면에 평강과 고요와 기쁨이 잔잔히 흐르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임재"야말로 결국에는 오직 하나, 곧 "믿음"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무엇이라는 것도. 그러나 바로 그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하며, 또한 사람에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문제인지조차도.



재작년 즈음에 읽었던 책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책을 자주 읽었지만, 어느 순간 커서부터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나게 되어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책들이 아주 드물게 종종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그러한 순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쨌거나 그 책에서 처음부터 내게 굉장히 인상적으로 깊이 남았던 부분이 있었다. 그 책에서, 작가는 신과 다음과 같이 대화를 나눈다 :


: 인간의 자유의지, 곧 믿음이 가진 힘을 보라. 모세는 그 힘으로 바다도 갈랐다.

작가 : 그러나 그 일은 모세가 이룬 것이 아니라, 모세가 청을 한 것을 당신께서 이루신 일이 아닙니까?

: 좋다, 너의 말이 옳다고 치자. 그러면 너는 모세가 내게 청하면 내가 들어주고, 네가 내게 청하면 내가 들어주지 않을 것 같으냐?


이 대화가 진짜였는지, 그리고 대화 자체의 진위 여부라든가 이런 육적인 허망한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말씀이 생명이 되어서 나의 영(Spirit)을 크게 뒤흔들었고, 나는 그 순간 수천 년 전의 그 광야를 헤매었던 어느 날, 어느 장소, 어느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과연 나라면 그리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백성들을 이끌고 오직 언약의 희망에 대한 믿음만으로 담대히 길을 걸어나섰고, 뒤로 맹렬히 군대가 추적해오는 상황에서, 눈앞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서 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지 못한다면, 오직 그만을 믿고서 뒤따라온 수많은 백성들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너무도 담대하게, 그 바다를 마주하고서......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기도를 드린다면, 신께서 "정말로 바다를 갈라주실 것인가?" 아, 그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나의 영이 하나의 거대한 진실을 목격하는 것을 보았다. 내 안에는 너무나도 뿌리 깊은 어두움이 있었다 : "내가 기도하면, 신은 절대로 내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 의심과 불신과 두려움, 공포, 불안이 거대한 콘크리트 층처럼 두껍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곧, 인류 전체의 거대한 집단 무의식의 어두움, 곧 죄와 악의 실체를 나는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것이었구나. 설령 신이 계시다고 한들, 내 마음속에 이토록이나 뿌리 깊고 단단한 의심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을진대, 어찌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모이고 모여서, 인류 전체가 어마어마한 집단 무의식의 어두움에 지배, 장악, 기만당하고 있을진대, 이 세상이 이토록 어둡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그것은 나의 의식적인 성장의 과정에서 무척이나 중요하고도 소중한 가르침이셨다. 나는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었다. "나"의 이름으로는, 내가 나의 손으로 주권을 쥐고 거느려서는, 도무지 답이 없다는 것을. 이는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의 손에 한 국가의 통치를 맡기는 것마냥 무척이나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에고(ego)의 아성(我性)이라는 거대한 망상의 실체를 너무도 선명히 깨닫게 된 것이었다.


한평생을 "나"를 중심으로 살아왔고, "나"만으로도 족하다고 여겼으며, "나"가 세상의 중심이자 유일한 실체라고 믿어왔는데, 그 무의식의 어두움 전체를 그날 마주한 순간,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무언가가 내 안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정원의 이름 없는 풀들과 꽃들과 나무들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묵상했다. 그때는 묵상하는 줄도 모르는 채로, 처음 마주한 진리를 묵상했다. 한평생을 나의 이름과 주권을 중심으로 살아왔는데, 내가 잘났노라고 그리 살아왔는데, 정작 그 "나"는 이 정원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만도 못한 것이었구나. 이들은 생명 안에서, 아버지의 품 안에서, 언제 피어나서 언제 스러져야 할지를 알고, 순종하고, 고요히 머무는데, 정작 나만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태어났는지,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지, 나의 존재와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이었구나. 내가 이 세상 모든 생명 가운데 꼴지였구나. 이게 나의 실체구나. 죄와 악과 어리석음과 어두움으로 점철된, 처참한 나의 이름과 주권의 실체구나.


그날 나는 "1인칭 능동태"의 에고(ego)적, 망상적 세계관의 종말을 목격했다. 그 대화가 나의 영의 불꽃을 튀게 했다. 내면에서 오래도록 남았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도 절실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도하면, 신은 절대로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 한 치의 의심조차 없는, 너무나도 "절대적인 믿음", 신은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존재라는 믿음, 신과 내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믿음, 그리하여 신에게 '나'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무의미한 개미 같은 존재여서, 신을 향한 나의 기도는 그 거대한 익명성 속에 묻혀서 절대로 신에게 가 닿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확신", 그리하여 아무리 간절한 나의 기도조차도, "신은 절대로 듣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신에게서 그 어떠한 응답조차 받지 못할 것"이라는 너무나도 선명한 그 믿음, 이었다.


나는 그날, 나의 영(Spirit)이 수천 년 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모세가 바다를 마주하였던 그곳으로 돌아가매, 그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나는 바다를 가르지 못했다. 나는 실패했다. 거대한 무의식의 어두움 앞에서, 그 절대적인 불신과 의심 앞에서, 그리고 인류 집단 전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왜 이토록이나 처참하게 실패했을 수밖에 없는지도, 너무나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낱 나 하나의 어두움이 이토록이나 깊고 거대할진대, 그것들의 총합으로서의 80억 인류의 어두움이야 오죽할 것인가. 실태가 이러하니,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타인을 강제로 통제, 억압, 제거하려 드는" 미개한 원시적인 사고에서부터, 우리 인간들이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고, 오히려 원시시대 이후로 기술과 문명과 역사가 흐르면서 지독하게 퇴보하였구나. 지상을 천국으로 만들고도 능히 남음이 있는 "힘"을 지니고도, 수천만 명이 죽고 죽이는 끔찍한 역사가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았구나. 저 거대한 어두움과 죄와 악이 곧 나의 것이었구나. 내가 악이었고, 내가 죄였구나.



그리하여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 순간 사람들을 향하여 진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목격된 진리들, 내가 깨달았던 것들, 내게 너무나도 커다란 각성과 전환의 계기가 되었던 여러 체험들, 그로 인하여 이해하게 된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굉장히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분명히 내가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나의 지식이 아니었고, 나의 언어가 아니었다. 나를 넘어선 무언가가 나의 입을 빌려서, 그 순간에서 자유로이 충만한 어떤 음성을 흘려보내는 듯한, 그리고 나의 영이 이를 고요함 가운데에서 온전히 듣고, 들은대로 그저 전하는, 마치 "통로"가 된 것 같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순간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떠한 자유를 느꼈다. 내가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나'라는 존재조차도 잊어버린 듯이, 내가 진리이고, 나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진리가 곧 나 자신이 된 것 같은, 그 안에서 너무나도 큰 자유와 해방과 평화와 기쁨과 확신이 흐르는 것을, 그 "빛"이, 내가 목격하였던 깊고 거대한 어두움의 정반대가 되는 선명한 무언가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내 삶은 바로 그러한 것들, 곧 "음성을 듣고", "들은대로 공유하고 전파하는 일", 그리고 나의 언어와 지식을 버리고 내려놓으며, 오로지 나를 넘어선 "무엇"을 깊이 받아들이고, 교감하고, 체험하며, 그것과 하나가 되는 일, 바로 그러한 일들만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나는 오로지 진리에만 몰입했고, 어느 순간 "신"의 음성을 듣고 느끼고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온통 그것에 빠져들었다. 그 "빛"에, 자유와 평화와 기쁨이 넘쳐흐르는 그것에, 그리고 그 안에 거할 적에, 일상의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비할 데 없이 귀중한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설명할 수 없는 은밀하고 고요한 기적의 순간들에. 차곡차곡 내 안에는 진리를 목격하고, 신의 음성을 듣고 받아들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어느 순간 나의 영혼의 중심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이제 "나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듣고 받아들이고 따르고 교감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여정을 성령께서 이끄시고 인도하셨음에 내가 지금도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커다란 경외와 기쁨을 느낀다. 그 여정에서 나는 무수히 목격했다. "사람의 시각으로는 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경우에서조차도, 소위 "검은 머리 짐승은 절대 고쳐 쓸 수 없는" 그 경우에서조차도, 내가 나의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나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바로 그 "음성"만을 진실로 몰입하며 이야기할 적에, 그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생각을 바꾸는 것을, 어느 순간 나로부터 물들어서, 나와 함께 그 음성에 진실하게 몰입하면서 내면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을, 무수히 목격하였다. 정작 나 자신은 그 사람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결국 "음성"에 몰입하다 보면, 이전의 내 생각과는 전혀 반대로 그는 어느 순간 달라져 있었다. 나는 알았다. 나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기적"이라는 것을.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 거대한 무의식의 어두움으로부터 절대로 저항하거나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이 온전히 "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내가 잘한 것은 오직 하나, "신을 사랑하고, 신의 음성을 듣고 교감하고 그 안에 거하며 하나되는 전체를 진실로 사랑한" 것뿐이었음을.



그리 나아가는 여정에서 어느 날 나는 문득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이전의 그 대화가 불현듯 오랜만에 떠올랐다. 영이 거듭나고, 혼이 깨어나고,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여 지나가는 여정들이 이루어졌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문득 뒤돌아보니, 그날 내가 목격하였던 거대한 어두움 앞에서의 무너짐의 순간에 비해서, 나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나는 신을 거부했지만, 지금의 나는 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어두움에 깊이 지배당했지만, 지금의 나는 빛을 사랑하고, 빛 안에 함께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타자와 세계를 대적하였지만, 지금의 나는 그 전체가 생명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의심과 불안의 노예였지만, 지금의 나는 믿음과 순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실패자였지만, 지금의 나는 작고 은밀한 역사들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그날로부터 무언가 성장을 이루었구나. 이제는, "내가 기도하면 신께서 들으신다"는 믿음이, "신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믿음이, "그 권능이 정말로 실재하며, 그것이 내 삶을 이끌고 인도한다"는 믿음이 그 어두움 가운데에서 꽃을 피웠구나. 그리하여, "이제는 내가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어쩌면 바다를 갈라주실지도 모른다"는 그 미약하고 자그마한 믿음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였구나.


내가 이것을 느끼고 알아차린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절대 불가능한"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졌음을, 그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표를 목격한 순간이었으며, 아버지께서 "역사"하신 가장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의 나를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로부터 더 나아가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살아서 아버지의 뜻을 열망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 성령의 이끌고 인도하심만을 믿고 의지하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영혼의 개화와 성장과 변화와 그 역사들을 한 걸음씩 이루어나가고 있다. 이전으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품고, 흔들릴지언정 빛을 사랑하고 빛을 증거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삶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어두움 안에서도 어두움에 속지 않으며, 영혼이 평강과 고요와 기쁨 안에 거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역사의 일부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역사 중 하나이다.


"내게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나의 두 번째 고백과 증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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