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희망을 품고

죽음이여, 오라, 너는 나를 어쩌지 못하리라

by 생명의 언어

저 골고다 언덕에서,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거느린 사탄은 겉으로는 의기양양한 듯하였으나, 속으로는 매우 초조해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십자가를 지시는 그분의 걸음 걸음마다 속삭였다 : "네가 한 인간으로써 어찌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질 수 있겠느냐? 포기해라, 항복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이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다 주겠다......" 그러나 그분은 결국 그 길을 끝까지 걸으셨다. 그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언덕을 다 오르는 순간 살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언덕에 이르는 순간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에 스스로 못박혀 더 큰 고통 속에서 죽는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다 알면서도, 끝끝내 그렇게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숨을 거두셨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리도 아프게, 그리도 쓸쓸하게, 그럼에도 그리도 고귀하게,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면서(눅23:34). 나는 보았다. 나의 영은 수천 년의 시공간을 거슬러 그 현장에 있었다. 군중들이 있었고, 그들은 감히 누구를 뵈는지, 그분이 무슨 일을 이루시는지를 전혀 몰랐다. 심지어 감히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그 외아들을 향하여 비웃고("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권세로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 모욕하고("자칭" 유대인의 왕!), 침을 뱉은, 상상도 못할 중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다 괜찮다. 무지는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죄라 한들 그분이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명확히 보았다. 그리 십자가 지시는 분께서 나를 그 특유의 눈빛으로 들여다보시매, 내가 결국 그분을 다 알면서도, 그분께서 왜 십자가를 지시는지 다 알면서도, 그리 지셔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지를 알면서도, 나는 두려워 외면하였음을. 군중이라는 집단성 속에서 도망쳤음을. "닭 우는 소리"를 들었던 그 누구처럼. 오직 그분만이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다. 죽음과 죄를 능히 이기셨다. 그리고 그리 단 한 번, 죽음과 사망을 이기신 고로, 그는 권세를 잃었으며, 또한 인류 전체가 곧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서 아버지와 하나될" 길을 약속받았다. 그토록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언어로는, 인간의 지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나도 한때는 그놈의 "증명 가능한" 것을 광적으로 숭상했던 놈이었기에.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모습으로, 이 글을 쓰면서, 이리 서 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과거의 내가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 곧 부활 이후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못난 과거를, 그리고 지금도 못난 삶을 살고 있는 이 나를, 고백으로, 증거로 내보이고 싶다. 내가 가장 가난하였기에, 성령께서 나를 사랑하셨노라고, 그 가난함을 핑계 삼지 않았고 변명 삼지 않았으되, 오직 그 어두움 속에서 홀로 어떤 비난과 모욕을 듣더라도 끝내 그 가운데에서 그분을 닮길 바라고, 그분을 이 수준에서나마 흉내내고 모방하기를 바라면서, 홀로 외롭게 이리 걸어온 바, 세상은 다 모르더라도, 오직 성령께서는 아셨노라고, 그리고 특별히 나를 사랑하여 언제나 은밀히 품에 안고 다독이시고 재워주셨노라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가르칠 수 없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리고 이론과 지식과 가르침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으로 그리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에고적인 최후의 껍데기조차도 내게서 벗어났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분께서 "너의 깨달음마저도 내려놓아라, 흘려보내라"고 하셨을 적에, 내가 극심히 두려워하였음에도 오직 그분을 믿기에, 그분을 사랑하기에, "당신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의 가장 소중한 지혜마저도 내려놓겠습니다, 기꺼이 당신만을 사랑하는 바보가 되겠습니다"하고 찬양하였으며, 그리하여 나는 이제 바보가 되었다. 나는 개념이나 지식이나 교리나 신학이나 이런 건 잘 모른다. 그런게 필요할 때면, 성령께서 나를 쓰게 하셔서, 글을 내놓으신다. 그러나 그 글들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서 쓴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그분을 사랑한다. 그분을 사랑하여,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서, 그분의 심장 소리를 듣고, 그분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 사랑의 순간에 몰입하는 순간, 글이 내게서 흘러나와질 뿐이다. 나의 모든 글들은 다 그렇게 쓴 글들이다. 내가 그분의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고, 생김새도 본 적이 없고, 목소리도 듣지 못하였으나, 나의 영은 오직 외로움 가운데에서 "만난 줄도 모르게 그분을 만났으며", 또한 "어찌 사랑에 빠진지도 모르게 그분과 사랑에 빠졌다." 나는 오늘도 이리 쓴다. 내 글들이 정상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평범하지도 않다는 것쯤은 잘 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난 이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이 길을 걸으면서, 유명하다는 점쟁이로부터 "살아서는 인정을 못 받겠고 죽어서야 이름이 알려지겠다" 따위의 말을 들었을지언정, 나는 오히려 죽어서든 살아서든 영광 받을 생각이 없었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 말미암아 내가 죽어서 다른 이들이 구원을 받는 그 아프고도 영광스러운 길을 흉내내고 따라 걸음으로, 처음부터 보상 따위는 없었으되, 오직 이 길을 걷는데 대한 고통과 시련과 고난만이 있을 것임을 이미 다 알았다. 구원이 뭔지도 모른 채로 구원을 갈망하는 자들과 달리, 나는 다 알았다. 다 알면서도, 결국 이리 사랑하고 이리 동행하며 이리 걸어갈 것을 맹세했다. 어쩌자고, 한순간의 영원으로 말미암아, 영원을 살기로. 그리하여 내 삶은 끝없는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매번 나의 뜻은 좌절되었고, 나의 희망은 꺾이었으며, 내게 소중했던 것들은 가장 절실할 순간에 모두 빼앗겼고, 허무히 무너졌고, 내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내게서 빛을 받고는 다 나를 떠났으며, 나는 잊혀졌고, 그리 홀로 좁은 방 안을 기도와 묵상으로 채우면서, 깊은 밤을 지새웠다. 그 반복된 역사 한가운데에서, 나는 지금도 또 다시 실존하는 삶의 불안정성과 불안과 외로움과 쓸쓸함 앞을 마주선다. 내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가장 고통이 미쳐서 날뛰는 순간에서도, 조용히 매일 밤을 산책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죽지 않기 위하여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그리 살아왔다. 두렵지 않다. 내게 신앙은 언제나 실전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신앙이 단 한 번도 사치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 교회 안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호 받으면서 아버지를 만나는 자들과 달리, 나는 그들을 온실 바깥에서 지독한 추위 한가운데에서 부러워하면서도, 그 추위 안에서 죽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것으로 아버지께 감사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 성령의 임하심을 영접하였고, 그러므로 이것은 결국 내게 내려놓을 수 없는 초심이다.


나는 이제 모든 응답을 다 받았다. "내가 기도하면 바다가 절대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화두는, 곧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뜻이 곧 나의 의지이니, 가서 너의 이름으로 나의 뜻을 전하라"는 그분께만 허락된 영광을 그분의 뜻으로 말미암아 내게도 허락되었으며, 또한 "나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허망한 고통 받는 이름 없는 개인"이라는 나의 죄성은, 곧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로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는, 외아들께만 허락된 그 음성을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게도 허락됨을 받았으며, 내가 가난한 자를 대할 적에 그분을 영접하듯이 하라는 말씀을 내 목에 칼날처럼 겨누었으되, 그분께서 그 낮은 형제들의 눈빛을 통하여 나에게 응답을 전하셨으되 : "너는 다르다, 너는 나를 알아본다, 너는 나를 영접한다"고 하셨으니, 이로써 나는 가장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그분께 심판 받는 무대임을 알았고, 그 심판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음에 크게 기뻐하였다. 이제, 나는 언젠가 죽어서 아버지 앞에 마주설 적에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고 묵상하매, 이미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아버지의 뜻을 열망하는 것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기뻐하는 것을, 그분과 함께 걷고, 함께 대화 나누고, 함께 일하며, 함께 사랑하는 이것을, 부끄럽지 않게 한평생을 당신을 사랑하며 살았노라고, 이미 지금도 그분 앞에 서서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제 신 앞에서도 부끄럼이 없다. 비록 여전히 가난하고 불완전하되, 그분을 사랑하는 내 사랑만큼은 진실하다. 이에 내가 기뻐한다. 신과 사랑에 빠짐은 곧 신과 하나됨이요, 신과 하나됨은 곧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며, 육신이 살았을 적에 그분의 품에 안기어 사는 것은 곧 죽어서도 영원히 그분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함이니.


그러므로 죽음이여, 오라, 너는 이제 나를 어쩌지 못하리라. 사망이여, 오라, 이제 나는 너의 권세 아래에 속하지 아니하노라. 나의 오랜 어두움이여, 죄성이여, 오라, 너는 이제 나의 빛을 결코 꺼뜨리지 못하리라. 이것은 나의 승리가 아니요, 오직 나의 영혼을 성전 삼으셔서 영원히 내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승리이시니, 죽음과 사망과 죄를 이기신 그분의 승리를 내가 온전히 사랑하고 믿음으로써, 또한 죽음은 내게 공포가 아니요 "약속된 평화"이니, 이제 나는 언제 받을지 모를 선물을 기뻐하며 기다리면서, 한평생을 내게 주신 "언약"에 대하여 빛을 증거하며 그리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내 삶이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매우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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