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어두움 한가운데에서 선한 마음을 영혼 안에 품고

by 생명의 언어

기도하는 자가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의 착각이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들으시며, 또한 그 기도들에 대하여 반드시 천사들을 통하여 응답을 전하신다. 이것은 나의 믿음이다. 다만, 그 응답을 듣기 위해서는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야" 한다. 아픈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드리고 난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에 바람결에 스치는 미세한 감각을 통하여 문득 마음에 그분의 응답이 떠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며, 또한 기도드린 것마저도 까맣게 잊어버리는 순간에 가장 놀랍고 경이로운 방식으로 응답이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영혼들을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분께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나는 그 빛을, 그 밝음을, 선(善)을, 그 고귀하심을, 그 의로우심을, 믿는다. 똑똑하고 현명한 자는 그분이 정말로 계시는지, 설령 계신다 한들 모든 순간마다 반드시 선하고 신실하신지 등을 효율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지 모르나, 나는 오직 그분의 품 안에 매 순간 안기어 사랑하고 또한 사랑받으면서 이리 살아가는 바보이기에, 나의 지혜와 나의 깨달음과 나의 의(義)마저도 기꺼이 그분 앞에서 내려놓고 가진 것 없는 바보가 되었기에, 결국 내게 남은 것은 믿음 하나뿐이다. 그 믿음에 기대어 어떤 일도 견딜 수 있고, 어떤 길도 걸을 수 있으며,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언젠가 그분의 음성을 전하였던 한 순간에, 내가 그에게 말하였던 바와 같이 : "아버지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 사람은 믿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믿으며, 사람의 일은 의지하지 않더라도 그분의 인도하심은 전적으로 믿는 것. 이것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분별하고 가르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영혼의 언어이며, 또한 영(Spirit)이 깊고 순결하게 열리었을 적에 그분의 품에 안기어 교감하고 음성을 들을 적에만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을 넘어선 고유한 어떤 것이다. 내게 사랑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또한 사랑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그분으로 인하여 내가 기뻐하는 것과, 나의 존재와 삶의 모든 순간들로 인하여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 역시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너른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것처럼,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또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전하는 것 또한, 그와 다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내가 이것으로 인하여 단 한 순간도 교만하였던 적이 없었고, 이것으로 인하여 내가 이익을 얻고 내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데 썼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오히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전하라 하신 뜻을 전하는 그 일을 내가 사랑함으로 인하여, 남은 삶의 모든 순간들을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늘 감당하였다. 그분의 이름으로 행해야 할 일들을 행한 다음이면, 언제나 가장 깊은 시험을 받았고, 언제나 가장 깊은 통과의례를 지나왔다. 그리 나아오면서 나는 결국 사랑하였고, 또한 사랑받았으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품 안에 안기어 내가 드렸던 모든 말들과, 또한 그분께서 내 귓가에 속삭이신 그 말씀들의 귀중한 역사들이 내 가슴 안에 언제나 영원히 흐르며, 그것이 생명이 되어 오늘도 나를 살게 하며, 또한 시련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빛을 잃지 않게 하였다. 이리할 적에, 기도는 반드시 그분께로 향한다. 어디로 기도해야 할지 묻지 않으며,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어떻게 그분께로 전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가슴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답을 이미 자신의 영혼 안에서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가슴 안에 거하시는 분이지, 내 머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거하시는 성전(聖殿)은 나의 가슴이다. 내 심장이 뛸 적에, 그분을 사랑하였고, 내 숨결이 깊어질 적에, 또한 그분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으며, 나는 나의 열망으로, 곧 그분의 임재를 늘 느낄 수 있었고, 그러한 순간에 드린 모든 기도와 청들은 언제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모두 응답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증거할 수 있다. 진실하게 기도하라고, 그리 올려진 모든 기도들은 반드시 응답받을 것이라고. 만약 응답을 받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내가 듣지 못한 까닭이지 그분이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고. 내가 듣지 못한 것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열망하지 않아서이며, 열망하지 않은 까닭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바라는 마음"(히11:1)이 없기 때문이며, 결국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음은 사랑에 근거하며,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그 음성을 듣노라고.


인간의 의식 구조는 영원이요 초월이신 성부 하나님의 "의식"을 절대 담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애초에 "머리"로는 신과 소통할 수 없음이다. 오직 가슴만이,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삶의 모든 순간들의 깊은 교감과 체험과 몰입만이, 신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이다. 나의 죄성은 끊임없이 나만의 구원을 갈구한다. 내가 구원받기를 바라고, 내가 사랑받기를 바라며, 남들에게 주지 않는 특별한 것을 오직 나에게만 차별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내가 높아지기를 바라고, 내 삶에서 당장의 눈 앞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불행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내가 바라고 욕망하는 모든 것들이 다 내 손에 쥐여지기를 바란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으되 오직 타자와 세상이 문제라고 심판하고 비웃고 모욕하고 평가하며, 정작 자신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하여 반성하고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모든 어두움 한가운데에서 더불어 깊이 슬퍼하고 외로워한다. 사람의 의식은 철저히 죄성에 길들여져 있다. 노예처럼, 완벽하게, 지배, 장악, 기만당하고 있다. 그 처절한 실체를 한 번이라도 본 자는, 사람이 사람의 힘으로 선(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맞서 싸워라. 순순히 속아 넘어가지 말라. 어두움에 길들여지지 말라. 어두움을 빛보다 더 익숙하게 여기지 말라. 내 마음이 또 다시 이기적으로 움직인다면, 부러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다시 이타적으로 되돌려라. 내 짐은 남에게 다 떠넘기고 남이 받을 이익은 내가 다 뺏어오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면, 그 욕망과 함께 깊은 밤을 지새우되,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는 고요한 가운데 기도하라, 남의 짐은 내가 지기를 간구하며, 남이 맞을 채찍은 내가 대신 맞기를 감히 간청드리니, 이로 말미암아 내게 주실 축복마저도 그에게 다 주시라고, 내가 그리하여 기꺼이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히 하나님과 더불어서 이 길을 걷겠노라고, 당신의 임재와 역사 하나를 약속해주신 것으로써 나는 이미 다 받았노라고. 그리 기도하라. 그것이 주님께서 이루셨던 성육신의 고귀하신 역사다. 나는 '주님', '그리스도', '예수님' 등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그분'이라고만 부른다. 그것이 내게 편안하다. 내 영혼이 그분의 광채를, 신성을, 일찍이 영접하였으되 그 앞에서 내가 태양 앞에 선 반딧불이와 같음을 절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감히 반딧불이가 태양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으랴. 그저 '그분'을 경외하고, 나의 미약함을 통하여 그분의 위대하심을 알고, 나의 가난함을 통하여 그분의 고귀하심을 알며, 나의 죄성을 통하여 그분의 의로우심을 알기를 바라니, 그 순결한 소망 하나만을 품고서 세상의 이해와 인정을 구하지 않은 채로 이리 걸어갈 뿐인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의로움이 아니다. 나를 통한 그분의 의로우심이며, 그분께서 내게 임하시기 위해서는 나 자신은 정작 의로움의 반대, 그러니까 가난함괴 부족함과 죄성과 함께하여야만 한다. 자기가 완전한 자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법이되, 자기가 부족한 자는 그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임재를 간절히 갈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그분을 닮기를 소망하며, 또한 그분을 사랑하는 내 마음 하나만큼은 그분 앞에서도 부끄럼이 없으되, 이 하나만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서 그리 살고 있으니, 이러한 나의 삶으로 인하여 내가 신을 사랑하고, 신의 음성을 듣기를 사랑하며, 그분의 음성을 전해야 할 자에게 전하는 일을 매우 사랑하였으되,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아는 법이므로,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특별한 영적 재능이자 능력으로 그리 보였을 따름이다.


결국, 선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그들이 질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짊어지기를, 내가 대신 채찍을 맞고 그 억울함과 수치심을 어깨에 짊어지는 대가로써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을 그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나는 빈손으로 다시 그분과 손잡고 그분의 품 안에서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열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살아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이며, 그 마음 하나로 인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이 내 삶이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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