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Oct 06. 2024

노을빛 샤베트의 기억

빠빠오를 아시나요

언니, 어때요?

오렌지 음료의 맛이 어떠냐 묻기에 일 초 망설였다. ‘이걸’ 알까? 다른 걸 말해보려 드륵드륵 머리를 굴렸지만 이거만 한 건 생각나지 않았다. 딱 이거였으므로 그냥 말했다.

OOO 맛이야!

일 초 정적.

생귤탱귤은 아니고요?

그건 내가 모르는데..

젠장.


엄청 좋아했던 건 아니다. 가성비가 좋았을 뿐. 원래는 쥬스인 그것을 학교 앞 문구점에서 냉동실에 넣어 광광 얼려 팔았다. 단돈 백 원을 내고 손가락만 한 나무주걱 하나씩을 얻은 얼라들은 냉동실 위에 엎드려 윗부분이 빵빵하게 부푼 놈을 골라냈다. 아무리 열심히 긁어먹어도 입에 들어가는 건 손톱만큼씩이라 집에 다 가도록 반도 못 먹었다. 길거리에서 주전부리하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얼라들은 놀이터에 앉아 주홍색 샤베트를 삭삭 긁어먹었다. 껍데기와 나무주걱을 버리고 옷에 흘린 자국이 없나 살펴 범행 증거를 은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놀이터에 내리던 노을빛과 같았기에 손에 쥔 플라스틱 용기의 색도 노을빛 샤베트의 맛도 잘 기억하고 있다.


사진은 ‘그것’과 아무 상관 없고 마실하다 <지리멸렬>이 생각나서 찍었다. 참 좋았던 영화. 한국 최고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영화를 몇 편 봤지만 <지리멸렬>만 한 감동은 없었다. 어디 가서 말하면 비웃음만 살 테지만 내 마음이 그런 걸 어째.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고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게 살이 아닌가. 이 글만 해도 그렇다. 본의 아니게 연식 자랑이 돼 버렸잖아. 젠장.

매거진의 이전글 서있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