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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수레 Jun 08. 2022

아이의 처음에서 엄마를 본다.


한석봉이 울고 갈 거침없는 획 긋기


 매사에 신중하고 크게 들뜨지 않는 아이에게도 늘 새로운 면은 존재한다. 연필을 쥐고 끼적거리기 시작한 지가 6년 인생에서 2년, 본격적으로 한글이라고 부를 만한 걸 따라 쓴 지가 1년, 본인이 인지하며 아는 글씨를 스스로 쓴 지가 6개월이 다되어 간다. 


처음 연필을 쥐기 시작했을 때는 누구나 다 그렇듯 어중간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저렇게 쥐어서야 연필심이 힘을 받아 선이라도 그어질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는 "나 사인펜으로 할래" 하며 더 잘 나오는 필기구를 알아서 골랐다. 크레파스로 ' 아! 이게 쓴다라는 거'를 익히고는 사인펜으로 ' 아! 이게 더 잘 나오네'를 익힌다. 그러다가 사인펜으로는 본인이 원하는 사람의 속눈썹을 정교하게 그릴 수 없음을 알고 잘 깎아놓은 연필을 찾는 게 우리 아이 필기구의 역사되시겠다. 


연필을 어정쩡하게 쥐고 끼적이던 단계에서 어쩌다 연필 쥐는 모양이 교정이 되고 나니 아이는 날개를 단 듯 그리고 쓰고를 반복했다. 내 손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성취감이던가. 특히나 조심스럽고 겁이 많은 성격 탓에 항상 나의 안쓰러움을 담당하던 아이도 종이와 연필 앞에선 약간 대담해지는 것이 나에겐 큰 이슈였다. 모르는 글씨이지만 우선 힘차게 잘못 긋고 보는 당당함, 새로운 동물 (현실에선 없는)이지만 우선 그리고 보는 자신감이 약간 귀엽고 웃기기도 했다. 


아이가 글씨를 더듬더듬 쓰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와 아이는 공통점이 많았다. 겁이 많지만 싫은 건 하지 않는 조용한 고집스러움, 처음 시작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굽히지 않는 뚝심. 나는 어쩌면 우리 아이가 잠깐이지만 함께 했던 외할머니를 닮은 게 아닐까 그렇게 나마 아이에게서 엄마의 흔적을 찾고 싶어 혼자 희망사항을 읊조리기도 했다. 


엄마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제대로 한글을 배웠다. 뭐 그렇게도 사는 사람이 있나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보니 그게 우리 엄마였다. 반기지 않는 부모에게 잘못 태어나서, 사는 게 바빠서, 그래도 다행히 글은 배워야지 하는 남편을 만나 뒤늦게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가정통신문을 가져갈 때마다 엄마가 한쪽으로 밀어놓고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던 이유가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어색한 손길로,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획을 그으며 아는 글자를 써 내려가는 아이의 손은 그때의 엄마를 닮았다. 엄마의 글씨는 길쭉하고 각이 많았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좋아했고 동그라미도 길게 쓰곤 했다. 동글동글한 내 글자와 다르게 엄마는 꼭 글자의 획마다 끝을 정확하고 날카롭게 그었다. 아마도 처음 한글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습관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보았다.


아이는 자음, 모음을 쓰며 망설이고, 또 뒤집어쓰긴 해도 그게 설사 틀렸다 한들 좌절하진 않는다. 차라리 잘 지워지는 지우개 없어? 하고 물었지, 나 글씨 안 쓸래 하고 그만두진 않는 게 마치 예전 엄마의 모습 같다. 나는 사실 아이가 글씨를 처음 쓰는 모습을 보기 전엔, 엄마의 글씨 쓰는 모습이 엄마만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었다. 힘 조절을 하지 못하고 획을 길게 확 긋거나, 글씨끼리의 크기가 균등하지 못하거나, 리을을 거울에 비친 듯 반대로 쓰거나. 하지만 아이의 한글 공부를 함께 해오며 그게 비단 엄마만의 모습이 아니라 글씨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특징이란 것을 알았다. 당연히 익숙치 않으니 힘 조절이 안되고, 한글이 결코 쉽지 않으니 뒤집어쓰기도 하고 말이다. 그냥 아이의 그런 모습에서 조차도 엄마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 어쩜 글씨 쓰는 모습도 닮았네! 하고 혼자 감탄을 했다. 이제야 그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하고 나를 위로해본다. 볼 수 없는 사람의 흔적을 항상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내 기쁨이고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나의 시작인 엄마와 나의 끝인 아이가 공존하는 나의 세상.. 오늘도 아이의 처음에서 그리운 엄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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