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무서운 정신과 약의 효과
불안장애 극복하기
충분한 줄 알았지만 모자랐던 지난번 약들
약을 띄엄띄엄 거의 단약하다시피 했다가 조금 용량을 올려서 매일 한 번씩 먹은 지 보름이 지났다. 살면서 아마도.. 산후조리원 이후 제일 많이 잔 기간이었고 오래 잤다고 해서 수면의 질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주 나쁘지도 않았다. 약을 먹으면 나른해지고, 잠을 참던 기운마저도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자야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약의 힘이다.
기존에 용량이 작았던 약을 띄엄띄엄 먹을 때는 너무 졸려도 잠을 꾹 참고 약의 기운이 지나갈 때까지 참다가 결국 평소처럼 늦게 자고 또 다음날 피곤해서 예민해지는 것의 반복이었다. 작은 소리들조차도 너무 신경 쓰이고, 진동이 있는 규칙적인 울림에는 거의 경기하듯 반응했다. 그 반응은 일상생활을 힘들게 만들고 또 시작인가..라는 절망에 빠지게 했다.
보름 동안 착실하게 약을 먹고, 혹시 깜박할까 봐 시간까지 정해놓고 먹으면서 어느 정도는 의지 문제라는 것도 깨달았다. 약을 잘 챙겨 먹는 것도 의지, 약을 먹고 일찍 자려고 노력하며 실행에 옮기는 것도 의지, 그리고 고요 속에 나를 던져두고 소음에 발버둥 치지 않게 하는 것도 의지였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나의 상태에 대해, 그리고 또 약을 먹게 된 것에 대해 푸념 섞인 글을 썼는데 그 글에 달린 댓글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우선 다 같이 섞여 살고자 한다면 소음에 무뎌지는 것을 연습하자, 집에서 asmr이나 텔레비전이라도 항상 틀어놓고 정적을 만들지 말자, 내가 외딴곳에 살지 않는 이상 공동주택에 산다면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계속 소리 하나하나에 반응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서큘레이터도 틀어놓고, 음악도 틀어놓으면서 무뎌지려 노력했다. 그리고 청력 쪽에 문제가 있다면 특정 소리 나 진동이 과민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 심해진다면 이비인후과적인 검진도 고려해 보라. 등등.. 결론은 당신이 이상하거나 나약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데 극복해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니 노력을 해보자.. 등.
실질적인 조언과 자신의 경험과, 그리고 마지막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여러 댓글에 그날부터 힘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약을 늘린 것도, 매일 약을 먹고 나서 기절하듯 9시 30분부터 10시간씩 잠을 자게 된 것도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았달까.
그러다 열흘이 지날 무렵 신경 쓰이던 것들의 범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노력했다. 적막 속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 양보하고 텔레비전도 틀어놓고 노래도 틀어놓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가는 소음들을 놓쳐보려고 했다. 아이들이 뛰면 뛰는구나, 아이들을 엄하게 혼내는 어른들의 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릴 때면 아, 말리기도 하는구나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불안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다니!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던 때가 솔직히 있었다. 층간 소음이 아니더라도 원래 언제든 그럴 수 있었는데 도화선이 된 것에 대해 그냥 다 떠넘기고 싶은 마음...
아무튼 약의 효과가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다 이렇게 이런 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고?라는 생각에 허무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원래 그런 것이 보통이라면 나도 보통처럼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소리가 조금이라도 큰 쪽을 힐끗거리고, 도로를 지나던 버스가 클락션을 울리면 기절할 듯 놀라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아이가 있으면 꼭 한번 쳐다보게 되는 내가 싫었다. 우리 아이조차도 발을 까딱이며 같은 소리를 내면 소리 내지 말자라고 꼭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한 내가 싫었다. 이러지 않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뭐든 하겠다 생각했는데. 뭐든 하는 정도까지 가지 않아도 나아진다니 약의 효과가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오늘도 또 무뎌지도록 노력해 봐야지
텔레비전의 소리도 반갑게, 밖에서 울리는 클락션 소리도 무난하게, 위층 아이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걸어가는지 모두 알 것처럼 천장의 울림이 들리더라도 곧 그치겠지라고 무신경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