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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27회 두타청옥구간 종주(댓재-백복령)

06년 8월 26 - 27일

8/26   22:00     신도림  출발

8/27   03:05     댓재(810)  출발

         04:40    목통령

         05:45     두타산(1352) -(15분 휴식)       6.3km

         06:45     박달령 

         07:30     청옥산(1403)                         3.35km

                     30분 아침식사, 휴식

         08:35    연칠성령(1180)

                     -망군대(1247)

         09:00     고적대 (1354)                        2.2km

         10:10     갈미봉(1260)

                     -898 안부-개간지

         11:40     이기령(810)                           6.25km

                     -970.3

         12:40     상월산(980)                           1.6km

         13:20     원방재(720)

         14:00     862 안부(10분 휴식)

         14:45     1020봉

         15:30     987.2봉

                     -959-863-832

         16:50     백복령(780)                           9.4km 

                                   13시간 45분              29.1km   

투구꽃

8월 26일_토_22:00

 30km 두타청옥구간 종주를 위해 일주일 동안 금주하며 체력을 관리한 덕분에 컨디션은 최상이다. 단지 일기예보에 전국 폭우를 동반한 구름 떼가 서쪽에서 몰려온다고 하니 동반하는 26산케 벗들이 걱정되고, 긴 거리에 닥쳐올 난관이 또 하나 더해지는가 싶어 사실 걱정이 된다. 우중 산행으로 다져진 올여름이라 각오하며 차라리 찌는 듯 더운 햇살보다 한결 편하겠다는 위로를 하며 우의들을 배낭에 챙기고 사진촬영 시 카메라 보호를 위해 작은 우산도 챙겨 넣는다. 먹을거리는 최소로 줄이고 작은 위스키병을 준비하여 태백산에서 경험한 빗속 저체온증에 대비도 한다. 배소위의 안부전화와 배병장의 염려스런 인사를 뒤로하고, 물푸레의 도움으로 백두대간 구간 종주의 가장 긴 코스로 알려진 두타를 향해 나서는 길에 한 줄기 강한 소나기가 여름밤을 식혀준다. 

 아직은 젊다고 자부도 해 보지만 이젠 어느 정도 내 삶을 조용히 정리해야 될 시기에, 혹시 다음 달부터 작은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를 일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 채 오늘 두타청옥을 걸으며 좀 더 신중한 결론을 내려보기로 한다. 늘 다짐해 오며 살아왔지만, 스스로의 삶을 어떤 흐름에 내 맡긴 채 무신경하게 꾸려 나가고 싶지는 않다. 억지로 험한 물결을 거슬리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 결과야 어떠하든 스스로의 결단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해 갈 수는 있어야 오히려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새로운 일이란 항상 어떤 탐험을 즐기듯 그 시작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예상되는 결과 또한 아름다울 수 있어야 미련 없는 선택이 이루어질 텐데... 

 신도림 출발지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총대장과 앞으로의 산행 여정과 대간 후의 자유인들의 모임을 의미 있는 만남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보람 있는 계획들을 의논해 본다. 비록 아마추어 등산인들의 취미 모임에 불과할 수도 있겠으나, 오늘날 확산되는 장거리 산행객들의 편리와 자연보호 차원의 관리를 위해서 체계적인 안내 산악회의 조직관리 또한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행락객 모집 차원의 단체들을 업그레이드시킬 방안들도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용인 휴게소에서 간단한 출발 세리머니와 함께 영동 고속도로를 질주한 산행버스는 동해시바닷가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30여 년 전 이른 봄 홀로 더플빽 하나 짊어지고 전입부대를 찾아가던 배이병을 찾아낸다. 그 시절 구경했던 그 무릉도원을 향해 삼척을 거쳐 424번 댓재 오름길을 꾸불거려 오른다.(03:20) 

두타일출

8월 27일_일_03:05 

 일기예보와는 달리 자정께 한바탕 구름을 쏟아 놓은 하늘이 간간이 별빛이 스며들 만큼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댓재 꼭대기에서 홀로 밝히고 있는 기념조형물이 외롭고 날씨를 염려한 탓인지 평소 꽤 있을 법한 산행객을 실은 차량을 한대도 볼 수가 없다. 어쩐지 기분이 좋으며 오늘 날씨는 축복받은 자유인들의 산행을 위해 모든 조건을 맞추리라는 며칠 전의 내 바램과 일치할 것 같다. 배낭에서 우중 장거리 행군을 염려하여 새로 준비한 아쿠아로빅 수중신발을 슬며시 꺼내 배낭 무게를 줄인다. 힘찬 화이팅을 외친 후 頭陀靈山之神을 모신 산령각 들머리를 올라서는 머리 위로 선뜻 시원한 바람이 불고 지나간다. 처서(處暑) 지난 추량(秋凉)을 느낀다. 

 첫 워밍업 햇댓등(970) 마루까지의 부드러운 오름 따라 오른쪽 동해시의 화려한 불빛이 맑게 동행하며, 대간길 종주구간 중에서 가장 길고 힘든 발걸음이 그 출발은 가볍기만 하다. 악천후에 대한 굳은 각오가 예상외로 좋은 날씨를 만나 천군만마를 만난 것처럼 다가올 작은 피로들을 일찌감치 물리친다.(03:25) 왼쪽으로 크게 꺾어 내려선 후 댓재 캠핑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두타산 일반 등산로를 만나 잘 정비된 오름길을 걸어 나가니 선들바람까지 불어주며 두타로 향하는 자유인들을 향해 댓재 영혼들이 춤을 추며 잘 다녀오라 손짓하며 배웅한다. 간밤의 소나기로 촉촉이 적셔진 마루금을 걷는 바짓 가랭이에 물기를 적셔주는 풀섶마저, 한 여름 더위를 씻어주는 물푸레의 젖은 손길 마냥 부드럽고 다정스럽다. 

 934봉을 내려선 후 잠시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름길을 9부 능선을 타고 천천히 올라 1031봉 안부에 올라선 후 이어지는 작은 두세 개의 오르내림 들을 거치니 지루한 행진을 마감하고 목통령(통골재)에 다다른다.(04:40) 마주하는 두타산의 우람한 자태를 어둠 속에서도 어슴푸레 올려다보며 1시간여의 된오름을 오늘의 첫 고행으로 담담히 맞이한다. 아직은 40여 명의 행렬이 흐트러지지도 않고 잘 이어지며, 청옥 정상까지 응원 등반 후 무릉계곡 구경에 나서기로 한 26산케 벗들도 대열 속에서 건재하다. 좋은 날씨에 운 좋게도 두타 일출의 꿈을 키우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금 발걸음을 서두르며, 오른쪽 어깨 위로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을 디카에 담고 싶은 맘을 달래며 1240 안부 전망터에 이르러 헤드랜턴을 벗고 동쪽 바다를 향하니, 남쪽에서 조금씩 밀려오는 구름을  채색하는 여명이 붉다 못해 신비스런 장관을 연출하며 엄숙한 개벽의 장을 여는 것 같다. 멀리 함백산 안테나 불빛이 따라 오르다 새벽의 피로에 지쳐 가물거린다.(05:25)

두타산 정상에서

8월 27일_일_05:45 

 지난봄부터 몇 달 동안 보질 못한 새벽 일출을 이곳 頭陀靈山에서 맞이하는 자유인들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하다. 아!, 얼마만의 맑은 일출이며, 그것도 우려했던 200mm 폭우를 잠재운 채 많은 산행객들이 포기한 아침에, 조용하고 엄숙한 장관을 맘껏 누릴 수 있는 행운을 가져왔으니.. 바쁜 오늘의 일정을 잠시 잊은 채, 먼저 청옥을 향해 떠나는 선두 대장의 재촉이 야속하리 만큼 디카에 그 추억을 담기에 바쁘다. 언제  다시 올라 접해 볼 수 있을지 모를 이 화려함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게다. 

 頭陀(dhuta)라.. 모든 번뇌와 티끌을 털고 이곳에서 내려갈 때는 가벼운 걸음 만이 남기를.. 잠시 인간들로부터 멀리 떠나 이곳 阿蘭若處 頭陀洞川(무릉계곡)에 머물며, 험한 옷 입고 험한 음식으로 수행하던 眉수 許穆(1595-1661)의 영혼이 쉰음산 두타산성 능선을 타고 올라온다. 짧은 인생 好衣好食하며 살기도 모자랄 오늘날에, 내가 두고 가야 할 모든 것과 내가 간직해야 할 그 무엇을 위해 오늘 나는 이 먼 길을 작은 수행으로 삼아 걸어가는 것일까.. 

 대동여지도와 산경표에서 두타와 청옥의 이름이 지금의 두 위치와 바뀌어 나타나니, 분명 가장 큰 봉우리는 두타임에 틀림없으련만,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뒤바뀐 두 봉우리가 20리 남북으로 큰 능선을 이어가며 동쪽으로 무릉계곡을 발아래 펼친 채 크고 맑은 영혼들의 수행장으로 그 고고함을 간직하고 인간들의 범접을 허용치 않았구나.. 지난해 내림길로 택했던 오른쪽 능선을 버리고 왼쪽으로 심히 꺾어내리며 청옥산을 향한 횃대능선(衣架嶝)을 밟아 내린다.(06:00) 

문바위

 옛날 짐꾼들의 고갯길이라던 朴達嶺 내림길은 가파르긴 하나 잘 정비되어 그리 위험하진 않다. 조심스레 밟아 내리며 무릎의 컨디션을 점검해 본다. 1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내림을 견뎌 내야 할 오늘의 일정에서 결국 마지막 고통의 관건은 무릎일 것 같다. 아직은 보호대를 착용치 않아도 될 만큼 괜찮다. 점점 밝아오는 동녘 하늘 아래 동해 바다로 부터 서서히 안개 같은 옅은 구름이 밀려와 무릉 자락을 신비스레 장식하고, 화려한 일출을 연출한 엷은 구름들이 머리 위 하늘에서 햇빛을 가려 줄 준비를 한다. 30여분의 긴 내림길과 1150 안부를 지나 박달령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고른다.(06:45)  

 박달골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아침 안개가 조금 섞여 올라오며 묘갈명 三華處士李相如의 꼿꼿함을 닮은 소나무 아래에 기대어 다시 오를 청옥산 오름길을 쳐다보니 두 번째 된 오름이 만만치가 않을 것 같다. 점점 힘들어하는 정법무가 걱정된다. 그동안 50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삶에 도전하여 의욕을 불태우며 1년여 몸을 혹사한 탓일 게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건강상태를 깨달아 자주 산에도 접하며 몸을 돌보는 여유를 기대해 본다. 

 動安居士 休休 李承休의 새로운 단군 탄생 설화가 떠오른다. 곰과의 결혼을 무시하고(삼국유사), 환인의 아들 환웅을 박달나무 신(檀樹神)과 결혼시킨(帝王韻紀) 休休의 재미있는 상상력은 이곳 박달령에서 비롯되었을까.. 그의 이름처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쉬는 듯이 걸어 오르면 오늘의 긴 여정에도 끝이 있으리니.. 그 끝에 서서 함께 안아 줄 내 보람의 영혼들을 만나, 또 다음 구간에 이어질 대간길을 물어보리라..  

망군대

 박달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청옥산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지만 아무래도 정법무는 힘에 겨운 모양이다. 박달령에서 탈출을 고려해 보지만 이미 선두조가 많이 앞서 간 것 같고 30여분이면 청옥에 올라 아침식사 겸 휴식을 취한 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한고비만 잘 견뎌내 주기를... 10여분 만에 문바위재에 올라선 후 선선한 그늘길을 벗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여유로운 걸음을 걷는다.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야 할 나이에 아직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는 주변들도 돌아보고, 어울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늘 그리 쉽지만은 않은 탓에 때로는 섭섭함을 간직하기도 하고, 각자의 몸가짐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 나이가 들어 갈수록 최소한의 고상함은 지녀야겠다. 


8월 27일_일_07:30 

 청옥정상에서 식사를 하며 기다리고 있을 선두조의 진행을 위하여 벗들을 후미에 두고 혼자 서둘러 정상을 향한다. 정상 부근에 조금 못 미쳐 무릉계곡으로 이어지는 학등(鶴嶝, 암소등) 갈림길에서 문간재로의 탈출도 고려해 보지만 웬만하면 역시 경치 좋은 연칠성령 하산길이 보람될 것 같다. 청옥산 정상은 육산의 부드러움을 간직한 채 넓은 헬기장을 이루고, 다소 흐린 날씨에 햇볕마저 가려져 더위를 식히며 식사를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단지 구름 낀 하늘에서 언제 예상된 비가 쏟아 내릴지 불안하다. 부디 친구들이 하산하는 12시 정도까지만 비가 오질 않았으면.. 그때쯤 이기령에 닿을 테고.. 모진 친구 대간길 응원 나섰다가 몸이라도 상한다면 말이 안 될 일이다. 한 개씩 넘기는 김밥이 잘 넘어가질 않았지만 남은 긴 시간을 위해 한 끼는 채워 놓아야 되므로 억지로라도 삼키고 있으나, 식사가 끝날 무렵까지 뒤따르던 후미조가 모습을 나타내질 않는다.(08:00) 

 뒤돌아 내려가보니 결국 정법무가 탈진증세를 보이며 백지장 얼굴로 학등 갈림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다행히 위스키 한잔을 마신 후 약간의 회복을 보여 일정 진행상 어쩔 수 없이 계획대로 연칠성령에서 탈출하기로 계획하여 인솔대장을 정해준 뒤 후미조와 함께 식사팀을 남겨두고 고적대를 향해 오른쪽 가파른 하산길을 밟아내리는 발걸음이 천근이다. 다행히 인솔대장이 경험이 충분한 구간이라 잘 인도하겠지만, 부디 체력을 잘 회복하여 결코 짧지 않은 내림길에서 무탈하기를 간절히 빌뿐이다. 

고적대 정상에서

8월 27일_일_08:35 

 천천히 급경사 내림길을 밟아 연칠성령에 닿아 후미조를 기다려 탈출팀에 무전을 날려보니 다행히 식사 후에 기력을 많이 회복하여 하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안도의 숨을 쉰다. 기다려 보고 직접 눈으로 확인 후에 진행을 하려 했으나, 선두와의 거리가 너무 떨어지면 전체 진행에 지장을 초래할 것 같아 망설임 끝에 고적대 오름길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올린다. 부디 삼화동까지 작년에 박달골을 감탄하며 두타산성길을 내려갔듯이 편안한 걸음으로 하늘재, 문간재를 벗어나 주기를... 難出嶺(望京臺-인조 때 澤堂 李植)이란 별명처럼 그리 만만치 않은 하산길이라 염려가 가시질 않는다. 

 망군대 멋진 바위를 돌아 오르면서 고적대 정상을 향한 세 번째 급경사 암릉 오름길에서 약간의 빗방울이 후두둑 거리면서 갑자기 안개가 남쪽 시야를 가리고 아까운 무릉계곡의 조망을 갈미봉으로 미룬다. 간간이 설치된 로프에 의지하질 않아도 될 만큼 암릉 표면들이 거칠어 디딤발 맛은 좋은 편이다. 고적대(高積臺) 정상에서 다시 무전을 날리니 연칠성령에 도착한 계곡 하산팀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는 소식이다.(09:00) 안도의 한숨을 날리며 갈미봉 까지 선두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걸음을 서둘러 오른쪽 급경사를 밟아 내리니 삼화동 계곡 조망이 동해바다까지 푸르게 이어진다. 

 꽤 긴 급경사를 내려와 갈미봉 까지 1시간여의 오르 내림길에서 만나는 오른쪽 무릉 협곡 사이로 기암절벽과 어우러지는 멋진 岩松들을 즐기며 카메라에 기록을 남기자니 걸음은 바쁜데 시간은 지체되고.. 아직도 선두는 보이질 않는다. 험한 암봉들을 왼쪽으로 9부로 돌아 넘어 올라서면서 몇 번의 안부를 갈미봉으로 기다려 확인하나 아직도 멀었나 보다.. 점점 지쳐가고 있는 모양이다.(10:00) 잦은 사진촬영으로 계획보다 20여분 늦게서야 갈미봉(1260) 정상에 올라서니 선두조는 조금 전에 이미 하산길로 내려갔다고 한다. 휴식을 취하는 후미조를 남겨둔 채 긴 내림길의 이기령을 향해 쉬지 않고 발길을 옮긴다. 잦은 휴식은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은 생각이다.(10:10) 

동해를 바라보며-고적대 아래에서

 갈미봉에서 오른쪽으로 편한 내림길을 밟아 내리면서 긴 잡목 숲들이 시야를 가리 지만, 햇볕을 가려주니 오히려 고맙게 여기며 이제 오늘의 후반전을 위해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분으로 천천히 다리를 흔들어 보니 아직은 괜찮은 느낌이다. 30년 전 속초를 출발한 배상병은 강릉까지의 팀스피리트 훈련 참가를 위한 3일간의 무박 행군에서 평발의 설움을 느끼면서, 찦차타고 참가하는 미군 병사의 처지를 이 땅의 산악지형에는 맞지 않는다고 괜한 투정도 부리고, 어디 전쟁이 차도에서 벌어지나 하면서 괜스레 화를 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의 우리 아들들이 과연 긴 행군의 훈련도 받으면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보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또 이러면 옛날 얘기로 돌릴지는 모르나 잘못된 것은 지금이 아닐까.. 아직은 미군의 도움을 받는 일로 이렇게 국론이 나뉠 정도로 우리들의 다리힘이 약한 탓이니. 


호텔이 바라다 보이는 타쉬겐트 공원 분수 앞 광장의 행인들도 점점 줄어들어 꽤 깊어가는 우즈벡의 마지막 밤은 선뜻 잠자리로 들어서질 못한 채 K노인의 5.16 혁명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계속 이어지고만 있었다. 다음날의 농장방문과 카타르 쪽으로 저녁 늦게 출발해야 하는 일정을 남겨 둔 채로, 이틀 간의 짧은 만남 속에서 이제 겨우 비극의 조국 한반도에서 경제적인 발전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는 느낌의 이야기가 이어지니, 선뜻 마무리를 지을 만한 분위기도 아니다. 이미 호텔의 테라스 쪽 불빛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카페나 식당들은 문을 닫은 모양이다.
“일제의 탄압과 전쟁과, 그리고 피 흘리는 젊은이들을 지켜보면서 일구어 냈던 1년 전의 민주의 꽃이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당하는 소위 또 다른 혁명이라는 변혁에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힘이 없어 조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자네가 생각하기엔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이 과연 군대라는 총칼의 위협에 침묵하는 백성일만큼 폭력에 대한 두려움만이 그들의 입을 막았다고 보아지는가.. “
결국은 무관심이었다. 이 땅의 국민들은 소위 정치인들의 말장난에는 결코 관심이 없으며, 어느 정도 남아 있었던 봉건적 왕조 역사의 산물로서 큰 힘의 카리스마를 거꾸로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군사정변의 결과로 나타난 엄청난 정치 발전의 후퇴로 이어진다는 것은, 훗날 전체 국민의 정서에 따라 얼마든지 뒷걸음질 칠 수도 있다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았을 뿐이다. 오늘날 점점 선거에 무관심해지고, 정치인들을 싸잡아 외면하는 현실이 또 어느 날 어떤 형태의 쿠데타로 변신하여 정치마당의 발전에는 아랑곳없는 엉뚱한 이슈에 의해 우리들의 21세기를 장식할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라는 것은 결코 발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조국 근대화라는 역동적인 구호에 모든 것을 파묻을 수 있었고, 배고픔에 시달리던 많은 국민들이 산업화를 향한 우렁찬 리더쉽에 매료되었다고 봐야겠지.. 그것이 군사혁명집단들의 처음부터 의도된 계획까지는 아니었으며, 그 배경에 대한 여러 가지의 비판적인 서술들이 난무할지언정 그것은 그들이 실패한 정치분야, 또는 인권의 가치를 논하는 70년대 이후의 이야기일 뿐... 그들의 성취의욕은 일단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었지... “
결과적으로 제3공화국을 성립시키고 긴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 권력에 의한 압제만이 그 힘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우리 땅의 민중들도 그리 호락호락한 영혼들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현실적 프로그램들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었다. 지난날 소위 낡은 정치인으로 지칭받은 초기정치인들의 이상주의적 비전에 대한 비난이 가져온 결과였다. 자유주의든, 사회주의든 좀 배웠다는 사람들끼리 낡은 관념들의 다툼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민중이다. 결국 그러한 명목으로 훗날, 인간의 유토피아는 구시대의 좌파적 사고로 흘러가고 그와 함께 묻혀간 자유주의의 꿈도 다시 소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희생을 필요로 했었지만..


갈미봉 암릉길

8월 27일_일_11:00 

 꽤 울창했을 잡목들을 가지치기하여 등로를 잘 다듬어 놓은 느낌으로 비교적 경사진 내림길을 무사히 밟으며 1142 안부를 내려서니 샘터에 다다른다. 이미 물통 2개를 다 비운 탓에 다시 가득 채우고 이기령에서의 후반전을 미리 준비한다. 시원한 그늘에서 푹 쉬고 싶은 심정이나, 후반전에 많이 뒤처질 것을 염려하여 선두조를 따라잡기로 하고 서둘러 이기령으로 향한다. 시간상으로 잘하면 오후 4시까지 13시간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지는 내림길이 많이 습한 것이 새벽의 비 탓만은 아니고 평소 늘 습지를 유지하는 느낌이다. 

 898 안부까지의 평탄한 내림길에 붉고 곧게 자란 아름드리 赤松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고개를 치켜들게 만든다. 간간이 이어지는 자작군목들의 흰색 행렬 또한 화려하다. 개간지를 지나 잘 꾸며진 돌밭길을 걸으며 한적한 오솔길 기분에 잠시 내 팔짱을 끼고 있어야 할 여인을 떠올린다. 인연이란 그렇게 질기고도 거부하질 못할 만큼 두 사람의 만남을 이어주는 것일까.. 하조대 해수욕장을 찾았다가 모진 스토커의 꾀임에 빠져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채 어설픈 걸음으로 설악을 넘던 스물네 살의 물푸레를. 

 시원하게 가려주는 숲길을 편한 걸음으로 걸어내리니 개간지를 벗어나 임계면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와 동행하는 이기령(耳基嶺)에 내려서니 앞서가던 선두조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11:40) 왼쪽으로 괘병산 자락이 높게 햇볕마저 가리고, 오른쪽 이기동 하산길은 무성한 잡풀로 뒤덮여 탈출로를 숨긴다. 10여분 휴식을 취하면서 수년 전 겨울 깊은 눈밭 속에서 조난을 경험했던 총대장의 경험을 들으며  탈출로가 분명치 않은 내림길에서 섣부른 탈출은 더 큰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느낀다. 

이기령개간지

8월 27일_일_11:50  

 후미조를 기다리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을 앞서 시간을 벌기 위해 먼저 출발하여 상월산 들머리 철탑을 향해 발걸음을 올려놓는다. 벌써 9시간을 혹사한 걸음치고는 아직은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대간행 초기 남덕유의 12시간 산행에서 겪었던 악몽이 되살아나며 1년 동안에 참 많이도 발전한 내 걸음이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계획대로라면 4시간 정도 남었지만 아무래도 후반의 걸음은 많이 지친 탓이라 무리하질 말고 쉬어가면서 여유 있게 진행하기로 한다. 이젠 탈출한 벗들도 삼화동 계곡 너른 바위에 앉아 처서 지난 거시기를 거풍 하며 즐기고 있겠지... 

 이기령에서 출발한 지 20여 분 만에 상월산(970)이라 표기된 헬기장에 도착한다.(12:15) 조그맣게 가짜 상월산이라며 20분 정도 더 가야 진짜 상월산(980)이 있다고 적혀 있다. 뭔가 다툼은 있는 것 같지만 공식적인 안내표지판 설치에는 좀 더 고증과 확실한 연구를 통하여 혼돈이 없어야 할 것이다. 무성한 풀섶을 지나 잠시 내림길을 밟은 후 동쪽 斷崖를 이루는 멋진 암릉들을 조망하며 20여분 더 급경사를 올라서니 기묘한 노송 한그루 머리에 이고 진짜 상월산 표지판을 명찰 두른 좁은 정상에 올라선다. (12:40) 고사목이 쓰러진 채로 오름길을 가리고 정리되지 않은 정상에는 앉아 쉴 자리도 없다. 확 트인 북쪽 조망에 1020봉에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멀리 백복령 절개지까지 까마득하다. 

 왼쪽으로 크게 꺾어 내리는 원방재 내림길이 지친 무릎을 매우 힘들게 한다. 뒤따르던 선두조들이 이미 많이 앞서가기 시작한다. 또다시 뒤로 처지는 걸음으로 30분 만에야 매우 가파른 내림길을 밟아 이기령에서 이어진 임도가 있는 원방재에 내려선다.(720) 상월산 두 봉우리 등정을 포기한 채 총대장의 인도로 임도를 따라온 대원들이 먼저 와서 쉬고 있고 다시금 몇몇 대원이 탈출을 고려한다. 평소 건강하던 대원들이 오늘따라 많이 지쳐하니 안타깝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탈출조를 체크하니 아직도 하산을 완료하질 않은 채 통화가 잘 되질 않는다는 소식이다. 다시금 걱정이 살아난다..(13:20) 

상월산 암릉

 이제 남은 3시간을 버티기 위해 오늘의 마지막 된 오름길인 1022봉을 향한 무거운 걸음을 언덕진 비탈에 올려놓는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벌써 세병째 물병을 비운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허기도 밀려오지만 많이 지친 상태에서의 배부른 식사는 마지막 오름에 방해가 된다. 고스락에 다다라 약간의 간식거리로 때우기로 하고 862 안부까지 달팽이산(1018)을 왼쪽에 끼고 북으로 돌아 오른다. 1시간 남짓만에 깔딱오름을 지쳐 1022봉이 바라다 보이는 능선 노송아래에 다다라 기진맥진하며 주저앉아 신발을 벗고 먹을 물로 발을 식힌다.(14;10) 10여분 휴식하며 간식을 나눈다. 이미 1022봉에 오른 선두조의 재촉 무전이 날아온다. 선두와의 간격이 30여분 떨어짐을 느낀다. 

 다시금 키자란 산죽지대를 지쳐 오르며 마지막 남은 1022봉 깔딱 오름을 넘어서니 지나온 두 상월산 동쪽 단애가 햇살 아래 화려하게 뽐내며 다가온다. 한참을 더위도 잊은 채 디카에 담기 위해 노력하나 무성한 나무 숲에 가려져 좋은 시각을 잡기가 어렵다. 정상 넘어 잡목 숲에서 기다리는 후미조를 겨우 따라잡아 이슬이 한 모금으로 마지막 기를 살려낸 후 다시금 하산길을 뚜벅인다.(14:45) 아무래도 13시간 목표는 넘어설 것 같고 14시간으로 넉넉히 늘려 잡은 채 옅은 안개에 채색된 주변을 조망하며 딱 짚어 아픈데도 찾을 수 없는 지친 다리를 조심스레 내려 밟는다. 아, 이젠 급경사 내림도 이것이 마지막이려니... 

 산죽지대를 벗어나 987봉 작은 오름길 직전의 조망 바위에 올라서니 시원한 가을이 서쪽 임계천에서 올라온다.(15;10) 앉은 채로 지나온 1022봉을 뒤돌아 보며 비교적 맑은 하늘에 또 한 번 감사한다. 12시간을 무사히 버틸 수 있는 것은 오직 날씨의 도움으로 여겨진다. 여름 내내 빗 속에서 고생하다가 오늘 폭우나 무더위를 만났다면 매우 힘들었으리라.. 다시 용기가 살아나고 마지막 1시간의 마무리 산행을 위해 좁은 보폭으로 오름길 능선을 지쳐 오른다. 경사 없는 마루금이 시야를 가린 채 잡목과 산죽이 이어지는 그늘진 숲을 헤쳐 나간다.  

1022봉을 뒤돌아보며

 마지막 오름길 987봉을 지나니(15:30) 선두는 백복령 1.3km 전 863봉을 지난다는 무전이다. 30분 이상 차이가 난다. 마음은 서둘러 지쳐 나가고 싶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그런대로 크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데는 없다. 단지 지쳐 있을 뿐이다. 후미를 맡은 총대장과 하산 후의  한잔 이슬이를 꿈꾸며 천천히 서두르질 않고 959 안부를 지나고(16:00) 잡목과 산죽지대를 번갈아 통과한 후 863 조망대에 내려서니 마주 보이는 북쪽 다음 구간 들머리인 자병산이 사라진 채 새 하얀 석회 채석장으로 다가온다.. 맘이 아프다. 내 이리 높은 산들을 더듬는 까닭 중에는 내 주변의 작고 낮은 산마저도 더욱 사랑할 배움을 깨닫고 싶을진대... 어쩌다 자병산아 너는 인간들에 돈 되는 노다지를 그리 쉬운 곳에 안고 있어 오늘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느냐.. (16:30) 


 1962년 정신없이 소용돌이치는 정치상황 속에서도 겉으로는 다시금 민정으로 이양된 정부에서 단지 그 실권은 혁명 위원회에 남은 채로, 새로운 정치형태에 의한 제3공화국의 탄생을 위한 바쁜 발걸음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미 정치 마당에서 퇴출된 정당인이긴 하지만 혁명세력과 가까운 친구들의 설득과 회유로, 결국 K노인의 약한 의지를 탓할 일이지만 또 한 번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파도에 휩쓸리게 되었다. 무의미하지만 민주당 정권의 대통령과 내각의 묵인하에 준비되는 새로운 정당은 민주당과 양립될 만큼 훌륭한 과업을 내세워야 했고 그 준비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불과 1년의 시간 동안에...
이미 강제로 퇴출된 사회주의 정당의 언저리에 머물렀던 K노인이 반공을 국시로 삼는 혁명 세력의 새로운 창당에 가장 깊숙한 곳에 머물며 정강 정책을 고안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차라리 유림선생의 뜻을 조금이라도 실어 놓겠다는 정당인의 안타까운 몸부림이라면 이해될 수도 있으련만... 환멸스런 정치마당이 싫어서 교직으로의 회귀와 훗날 농촌에서의 계몽을 꿈꾸던 소박한 자유인의 꿈은 그렇게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면서도 정치마당의 탁류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질 못한 채 밀려가는 태평로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것이 다음에 닥쳐올 또 다른 격류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한 채 훗날 엄청난 시련의 출발이 되고 있었지만, 주위 인맥들의 권유와 무기력했던 자신의 의지를  탓할 수밖에..
잔잔하든 급하든 간에 세월의 흐름은 단속 없이 흘러 바쁜 1년이 지나기 전에 계획된 숙제를 해치우듯 헌법이 개정되고, 강력한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정당들의 레이스가 시작되는 새해를 맞아 정리된 공화당의 탄생을 알리게 되고, 줄줄이 해금된 정치인들과 함께 소위 민주당 세력의 새로운 결집을 맞아 대한민국 정치 마당의 아픈 싹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자라 대학의 진로를 고민하는 딸아이의 대견하고 반듯함에 항상 다행스레 여기며, K노인은 딸아이의 얼굴에서 가끔씩 첫 아내의 얼굴을 읽을 수가 있었다. 많이 어리지만 작은 아들 역시 꽤 밝은 얼굴로 공부도 잘하며 학교에서 곧잘 1등을 한다고 뿌듯해하는 아내로부터 비록 힘겨운 경제사정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어쩌면 K노인으로서는 지나온 과거에 꿈꾸었던 모든 이상들을 접은 채 내 작은 둥지 속에서 웅크린 자세로 한 가지 행복을 싹 틔울 작은 햇살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집권세력들의 집요하지만 두서없는 요구들을 달래 가며 새로운 정당을 탄생시켰고, 그나마 그들이 알게 모르게 지난날 유림 선생으로부터 배운 몇 구절 정강을 삽입하여 통과시킨 보람도 있었다. 힘겨웠으나 가을의 선거에서 새로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정희와의 취임 후 면담도 약속되어 있었다. 단지, 그러한 바쁜 나날 속에서 아내와의 살가운 대화를 가지질 못했고, 집안의 또 다른 변화를 전혀 짐작하질 못한 채 작은 전과 기록들로 인하여 앞으로의 행보에 가로막힐 장애들만이 마음속에 거리낄 뿐이었다.
사라지는 자병산

     

 발아래 백복령에 도착한 선두조의 무전으로 이미 탈출조의 무사 안착을 통보받은 뒤라 느긋한 맘으로 863 안부 조망대에서 다음 구간의 석병산을 바라보며 마의 구간을 완주한 자축을 서둘러 세리머니 하며 총대장과 마지막 걸음을 밟아 백복령(白鳳嶺, 百福嶺, 希福峴)에 내려서니 이미 선두조는 임계천 맑은 물에 몸을 씻으며 하산주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릉계곡 탐사조는 10시간여의 계곡 탐사와 하늘재, 신선봉 등정을 무사히 끝내고 후미를 기다려 축하해 준다. 손을 잡은 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감추며 감사의 말을 잇지 못한 채 멀리 지나온 날머리 위를 쳐다만 보고 서 있다.      

 비 온 뒤 불어난 임계천 맑은 물에 절은 땀을 씻고 해 지는 산배추 들녘길에서 이슬이 한 잔으로 힘들었던 두타 청옥을 돌이키니 마지막 여름하늘에 흰구름만 흘러가고 내 모든 찌들었던 번뇌들이 땀과 함께 사라진 기분이다. 도회를 떠나 고향 이곳에 다시 자릴 잡은 긴 머리 멋진 젊은이의 더불어 삶에 대한 확신이 새롭게 다가온다... 


8/30  배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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