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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땅을 밟으며

CHAPTER 1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영국 땅을 밟으며

by ziniO

01. 영국 땅을 밟으며..


흔히 영국을 두고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고 한다.

역사적인 의미로는 빅토리아 여왕 재위시절(1837-1901), 영국은 전 세계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영국 본토에서 해가 진다고 하더라도 반대편에 있는 영국 식민지는 해가 뜨는 시간이라고 한다. 때문에 항상 해가 떠 있는 영국 제국이라는 뜻에서.. 한 마디로 전 세계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는 초강대국이라는 뜻에서 비유된 말이다.


하지만 오늘 난 이 의미를 저주받은? 영국 날씨에 무식하게 빗대고 싶어 진다.

반짝 해가 긴 여름? 외에 오후 세 네시부터 어두워지는 영국 날씨가 난 너무나도 싫다.

더구나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그래서 영국 정부에서는 얼마 전부터 백인보다 피부색이 어두운 동양인이게 비타민 D를 처방하기 시작했다. (동네마다 다를 수도 있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비타민 합성을 방해하는 멜라닌 색소가 더 많은데 해도 잘 없으니 비타민 D의 섭취가 시급하다고 판단을 한 것 같다.


음... 여름 몇 달 외엔 정말 해가 잘 뜨지 않는 나라이다.

시간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여름..

한국의 멋진 가을 하늘을 뒤로한 채 영국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만 해도 그러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 뭔가 흥미롭게 펼쳐질 것 같은 내 꿈... 그 큰 꿈을 한가득 품은 채 히드로에서 다시 북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이나는 긴 줄의 행렬과 빠지는 속도의 차이에 긴 한숨을 쉬며 외국 땅에의 첫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한국땅을 뒤로한 채 늦은 오후 런던 히드로에서 바라본 공항의 하늘은 대낮 같았다. 8월의 영국 하늘은 밤 10시 11시가 되도록 밝았다. 한국 땅을 지구 반대편에 둔 채 이곳은 뭔가 밝고 환한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은 느낌.. 아… 이래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구나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9월.. 10월이 되면서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11월이 되니 오후 3시가 넘으면 어둑어둑해진다. 거의 반년을 어둡고 추적추적 한 날씨와 함께 일상을 보내다 보면 그 긴 시간들은 해가 잘 뜨지 않는, 해가 아주 귀한 나라가 되어 버린다. 날씨라는 게 인간에게는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서 영국에서는 나만의 삶의 루틴과 활력이 될 만 한걸 잘 찾지 않으면 은근 날씨 탓을 하면서 삶의 모티베이션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스무 다섯 해를 살았던 나라, 뭔가 다이내믹하고 덥고 춥고 맑고 따뜻한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 그리고 모든 것들이 내가 딱히 능동적이지 않아도 주변 환경이 뭔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아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어색하고 뒤쳐질 것 같은 나라 한국과는 달리, 영국은 모든 부분에서 내가 원하는 부분은 먼저 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찾아내어 행동해야만 했다.

내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날 귀찮게 간섭하는 사람들도 환경도 분위기도 딱히 없다.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나 메이크업 스타일, 심지어 들고 다니는 휴대폰의 기종까지도 뭔가 주변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게 만드는, 뭔가 큰 돔 안에서 함께 더불어 산다는 기분이 드는 아주 다이내믹한 나라에서 너무 오래 살다 와서 그런지 처음에는 이 영국 생활이 너무 자유롭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없는 부분에 뭔가 자유의 희열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동안 25년간을 한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뼛속까지 깊게 베여 버린 한국문화와 그 생활방식의 차이 때문에 여기서는 뭔가 직 간접적으로라도 나를 채찍질해주는 부분들이나 날 간섭해 주는 부분들이 없다는 점이 가끔은 내가 무인도에 살고 있나 하는 기분이 들게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스무 해 정도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여기가 너무 편해졌다.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다는 영국 날씨 덕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옷장을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입고 싶은 옷을 꺼내 입으면 된다. 그래서 여름에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짧은 팔만 입은 아저씨도 있고 겨울 패딩을 입은 할머니도 계신다. 그래도 이상하다고 쳐다보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10년 전 휴대폰을 들고 다녀도 20년 30년 된 자동차를 운전해도 똑같다. 그냥 나는 나 일 뿐이야 라는 마인드로 살면 된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나 스스로 뭔가를 능동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것 또한 점점 익숙해져 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간섭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능동적으로 계획을 세워 잘 살아가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자극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한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어느덧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과 유행을 신경 쓰며 옷을 고르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화장품 가게를 들르는 나를 보면서 피시식 웃게 된다. “ 난 뼈 속까지 한국인이야”

그러다가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정착해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패션과 메이크업을 보면 또한 한국에서 어느 정도 유행하고 있는 것들에 따라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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