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국인은 신사?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영국인의 성향 파헤치기

by ziniO

영국인은 신사?



"영국인들은 신사"

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정말 그러할까?


결론은 맞다.

gentleman!

정말 gentle하게 행동을 한다. 여기서 15년을 넘게 운전했지만 거리에서 함부로 경적을 빵빵 울려대는 모습은 정말인지 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사실 난 시내 운전할 때 한 번을 제외하고는 15년간 한 번도 경적을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에 비해서는 양보도 진짜 잘해 준다. 먼저 가라고 멈추어 주면 거의 백 프로 차 안에서 상대방에게 미소 지으면서 손도 서로 들어준다.

한국에서 운전하면 "운전할 때 얌전한 사람도 다른 사람이 된다"라는 말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운전할 때는 운전하다 보면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종종 들게 만든다.

여기가 시내 외곽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친절하고 신사적이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의아해한다는 것 중 하나가 거리를 걸어 다니는 한국 사람들의 무표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특히 산책을 할 때에는 거의 모두가 서로를 지나칠 때 눈을 마주치고 hello인사를 건넨다. 그래서 왠지 그날 기분 나쁜 일 있어도 거리를 걸어 다닐 때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살짝이라도 약간의 미소를 짓고 걸어 다녀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또 한 가지..

이건 정말 한국에서는 본받아야 할 점이라 느낀 부분이다. 공공장소든 어디를 가던지 문을 열고 들어 가고 나갈 때는 항상 뒤에 오는 사람을 배려해서 문을 약간 잡은 채로 기다려 준다. 이것이 나도 습관이 되어 한국에 잠시 들어가서 쇼핑센터를 가거나 문이 있는 곳을 지나칠 때에는 항상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문을 잡고 뒤를 배려하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 한 번은 한국에 들어갔을 때 백화점에서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면서 미닫이 문을 손과 발을 다 사용해서 힘겹게 혼자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한 번 더 있는 문.. 마침 앞사람이 가길래 나도 마치 엘리베이터 같이 타려고 달려가듯 힘차게 유모차를 밀면서 다가갔다. 그런데 정말 그때는 충격이었다. 영국이라면 특히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면 멀리 서라도 다가와서 문을 잡아주는 게 보통이고 앞사람과 한참 거리가 있는데 본인이 들어가면서 너무 오랫동안 문을 잡으며 기다려줘서 미안할 때도 많은데 한국에서는 전혀 뒤를 배려치 않는 사람 때문에 거의 유모차에 탄 아이 다리가 문에 치일 뻔했다. 잡아 주지는 못할 망정 뒤에서 누군가 온다면 미닫이 문을 조금 배려해서 살살 닫아줘야 할 것을…

그런데 10년 전보다는 한국도 많이 나아진 것 같다.


내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주욱 자라났다면 어떠한 모습들이 남이 보기엔 이상해도 그 안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는 모습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우리 한국인이 꼭 배워야 할 것 같다.

난 사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나라에서 자라고 보면서 익힌 습관들이 나도 모르게 배어 나오게 되는 걸 보면 그 환경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고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확실히 시키는 영국이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그 인성 교육을 아주 중요시 생각하고 가르친다. 어느 나라든 좋은 점 나쁜 점 그래서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그중 좋은 점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신사와 배려가 많은 영국인들의 성향에도 겉과 속이 다른 모습들이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Curtain twitcher(커튼 트위쳐스)

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영국에서 쓰이는 속어나 은어로,

"A nosy person who watches his or her neighbours, typically from a curtained window."

출처: Wiktionary


말 그대로 영국의 신사 숙녀들은 겉으로는 남의 일에 태연하고 무관심해 보이지만 늘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커튼 뒤에서 살짝 엿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실제로 정말 느꼈던 적이 있는데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는 동네 이웃도 가족 외에는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를 왔다 갔다 했고 학교- 집- 학교-집이 거의 일상생활이었다. 그러다가 몇 달이 지나고 조금씩 이웃 사람들 얼굴도 알아볼 때 즈음 우연히 옆집 아줌마와 산책을 하다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들 속에 내가 놀란 건

" 엘리슨, 우리 딸이 그러던데 너 저번 주 수요일에 핑크 가방 들고 버스를 탔다던데 너무 그 가방이 이쁘다더라" 난 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딸은 내가 누구고 어디에 사는지도 아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뿐이 아니었다. 무슨 요일에 내가 신었던 신발이 특이하던데 그건 여기서 산 게 아니고 한국에서 산 거냐는 등등 모르는 주변인들에 둘러 싸여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기분이었다.

'서로 관심도 없는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나를 보고 있었지?' 그때는 내가 동네에 살고 있는 유일한 아시안이라서 나는 그들?을 잘 모르지만 얼굴도 모르는 많은 이들은 날 주목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 Curtain twitcher(커튼 트위쳐스)- 라는 말을 들은 이후, 난 고개가 끄덕여졌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나쁘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차라리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인간미까지 느껴진다.

사람은 국적을 떠나 누구든 고상한 척 쿨 한 척 해도 누구든 그 진짜의 모습은 모르는 것이니까.

차라리 요즘의 한국사회처럼 점점 이웃과 왕래가 없어지며 아파트 생활로 윗집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실제로 다들 살기에 바빠서 옆집이나 이웃에 너무나도 무관심 해 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더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이사도 자주 가니 더 그러한 것 같다.


영국에서 살면 보통 결혼을 하면서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내고 평생 그 집에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시와 외곽지역일수록 그렇겠지만 솔직히 우리 집도 결혼하면서 새 집을 지을 때 들어왔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런데 동네 주위 이웃들을 보면 거의 그대로이고 대부분은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함께 늙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무브 투 헤븐'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다루었 듯, 한국은 1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혼자 고독사나 병으로 죽어도 서로 커튼을 열기는커녕 결국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해야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아지는데 뭔가 인간들에게서는 점점 더 고립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영국인들은 만날 때마다 웃으면서 하이~라고 인사를 건네주고 커튼 뒤에 숨어서 이웃의 동태라도 살펴주고 위험할 때 신고라도 해 주니 고맙고 다행인 것 같다.



관심의 차이...

한국에 살면서 느껴지는 간섭과 영국에서 느껴지는 관심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난 한국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이 지나치다고 생각했고 영국인들이 무관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가면 나도 괜히 남들처럼 유행을 따라가야 하고 남들 눈치가 보여서 쓸데없는 것까지 에너지를 쏟을 일이 많다면 영국에서는 내가 20년 된 차를 타던 아주 옛날 기종의 휴대폰을 쓰던 여름에 혼자 패팅을 입고 다니던 아무런 눈치가 안 보인다. 그리고 영국에서 살아보면 다들 그런 건 신경 안 쓰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개성대로 다닌다.


하지만 이 관심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 관심이 그냥 상대방이 궁금한 관심이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걸 넘어서서 다른 것과 다른 사람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되어버린다면 서로에게 해가 되는 독약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어쨌든 영국인은 천하에 둘도 없는 신사와 매너쟁이들이면서 또한 훔쳐보기 선수이며,,,

겉과 속을 잘 알 수 없을 때가 많은 이해하기 어려운 국민들이지만

내 결론은 이렇다.


영국인들은 신사다.
신사가 맞다



여름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동네 산책을 하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