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병원에서 국민 보험률을 적용해서 치료받는 것과 달리 영국은 국가에서 운영을 하는 NHS 의료 시스템으로 완전 무료이다. 더구나 북아일랜드는 아주 예전에는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산모들만 약값이 무료였는데 지금은 의사를 통해 처방받은 모든 약이 모든 국민에게 무료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라가 국민 개개인을 책임진다.
병원은 따로 돈을 지불하는 프라이빗 병원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NHS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몸이 아프면 보통 동네 GP(General Practitioner) 의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전문의가 아니라 가정의에 가깝다 보니 보다 전문적인 검사와 치료를 요구할 시에는 환자 상태를 보고 상담을 한 뒤 전문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레터를 써 준다.
그런데 신기하게 영국에선 잘 안? 아프다.
나도 한국에서 살 때에는 1년에 잔병치례를 적어도 몇 번씩은 꼭했는데 여기선 공기가 좋은지 대체적으로 건강한 편이다. 감기 몇 번 걸려도 하루 이틀 따뜻한 차 마시고 쉬면 괜찮아지는 편이고 병원에 간 적은 지난 20년간손에 꼽힐 정도로 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의견과 차이이겠지만 첨에 몇 번씩은 나 자신도 애들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꼭 GP를 보러 갔었다. 하지만 요즘은 항생제 처방을 받을 경우가 아니면 거의 집에서 푹 쉬고 약 먹고 하면 된다는 노하우도 어느 정도 생기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한 병 치료를 위해 전문의를 만나야 할 때가 문제이다.
GP 동네 의사를 통해서 간단한 병은 상담해서 약을 처방받지만 더 심각하면 의사가 레터를 써 주게 되는데 문제는 보통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Wating List에 따라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턱관절이 너무 아파 엑스레이를 찍으려고 하니 거의 두어 달은 기다려야 했었고, 예전에 새언니가 영국에 1년간 왔을 때에는, 갑자기 하혈을 계속해서 G P를 찾아갔더니 원인을 모르겠다시며 우선 Letter을 써 주시면서 병원에서 전문 의사를 보고 검사를 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2개월은 걸릴거라시면서 그동안 하혈하는 건 알약으로 멈춰보라고 하시며 약을 처방해 주셨다. 물론 두 달 동한 하혈을 하면 큰일 나는 거니 당연히 하혈은 약을 먹고 어느 정도 멈추게 되었고 두 달 후 전문의와 함께 자세한 검사를 했을 때에는 다행히 큰 이상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턱관절도 그렇고 살다 보면 그 외 웬만한 통증은 기다리다가 자연치유로 낫는 경우도 웃프지만 꽤 있었다.
그러니 여기 현지친구들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다. 정말 시간을 촉박해하는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아프면 기다리다가 죽는다고…
물론 여기 영국에도 Private doctor가 있다. 그런데 좀 많이 비싸다. 그리고 프라이빗 병원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난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아주 오래전, 남편과 한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여기 오기 직전 공항 가는 길에 발목뼈를 다쳐서 걷지를 못하고 휠체어까지 타고 겨우겨우 영국에 온 적이 있었다. 여기 와서 우선 GP를 보러 갔고 의사가 추천해 주시는 Private 뼈 전문인을 만났다. 십분 남짓 여기저기 발목을 살펴보시더니 별다른 치료는 못 하시고 의사를 만나는 비용만 정확히 100파운드가 나왔다.문제는 그때 정말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았고 본인이 아는 더 전문적인? 다른 의사를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발목을 보이기만 했다는 이유로 접수실에서 그 돈은 다 내야 했는데 그때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그 멀리까지 아픈 남편을 데리고 운전해 가서 시간 버리고 돈은 도둑맞은 기분? 까지 들었다. 원래 시스템이 그렇다고 그냥 가자는 남편 말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찾아가서 접수하는 여자 직원한테 잘 안 되는 영어로 우린 치료도 암 것도 못 받고 5분 동안 발만 보였다면서 따졌었던 나.. 그때가 아마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한국 병원과 비교만 하면서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보다 영어도훨씬 더 잘하고 여기 상황과 시스템을 다 아는 지금의 나는 어차피 그렇게 다 정해져 있는 시스템과 바꿀 수 없는 부분에 혼자 열을 내며 절대 그렇게 바보같이 따지지는 않겠지만, 그때 접수실에 있던 직원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지금 생각해도 피시식 웃음이 나온다.
어쨌든 프라이빗은 등록을 하려면 매달 내는 돈이 꽤 되고그렇다고 그렇게 시스템이 빠른 것도 아니다. 예전에 MRI를 찍어보아야 하는 일 때문에 GP 한테 물어보니 Private 병원도 적어도 한 달은 넘게 걸릴 거라고 하고 또 거의 삼백만 원이 넘는 돈(물론 프라이빗 등록을 해 놓은 경우에는 다를 것이다)을 내야 한다고 해서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그래도 급할 때가 있을 수 있으니 울 가족도 등록하자고 하고선 어차피 그리 잘 아프진 않으니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소문에 의하면 GP나 프라이빗 의사나 그다지 실력에는 차이가 없다고 하는 주변인들도 있다. 같은 의사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때론 경험 많은 GP를 잘 만나는 게 차라리 더 복일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프면 꼭 G P 한테 데리고 갔었는데 어느 정도 큰 다음에는 그냥 집에서 해열제를 먹인다. 아무리 아파도 주사 한번 놓아준 적 없고 아이들에게 주는 건 Capol이라는 만병 통치약 해열 진통제이다. 힘들게 아픈 아이를 데려 가도 결국 처방전 한 장. 결국 동네 약국에도 슈퍼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약이라 집에도 몇 병 쌓여 있는 약병을 또 받는 것…. 배 아파도 이가 날 때 이가 아파도 열이나도 무조건 Capol 뿐이었다.
며칠 이상 아프면 다시 병원이 오라고 하시는데 다행히 공기가 너무 좋아 집에서 며칠 쉬게 하면 항생제를 처방할 일 없이 정말 거의 낫는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가면 꼭 크게 한 번씩 감기에걸렸다. 처음에는 영국에서처럼 집에서 푹 쉬게만 했더니 중이염이 왔다. 여기선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었던 병. 그래서 한 번도 맞아 본 적 없는 주사와 함께 왜 병원에 금방 데려오지 않았냐는 의사의 꾸지람과 함께 약을 처방받았다. 24 동안 약 먹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어야 한다고 하셔서 밤 12시에도 자는 아이를 깨워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영국에서는 웬만해서 잘 안 주는 항생제를 처음으로 먹였다. 하루 먹인 뒤 한국 의사한테 갔더니 이렇게 빨리 나은 애들도 드물단다. 워낙 약을 안 먹어봐서 그런 듯.
나의 결론..
한국은 너무 과? 하고 영국은 너무 덜? 하다.
그래도 난 25년 동안 익숙했던 한국인 체질이라.. 아프면 곧바로 의사를 만나고 고침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이 아직은 너무 편리하고 속이 시원하다.
또 한 가지, 병에 걸리면 진짜 죽는다.
이건 여기 근처에 대학교 총장님 와이프 얘기다.
암으로 돌아가셔서 위로 모임에 다녀온 한 선배의 말..
아파서 병원에 갔고 또 그 Waiting List 때문에, 기다리다 검사받고 또 한참을 기다려야 결과가 나오는 여기 느려빠진 시스템 때문에 결과 나와서 막상 치료를 하려고 할 땐 이미 암 말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있고 병 간병을 하던 여동생분이 간병을 하다가 자기도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검사받았는데 그 결과가 동생분도 암 말기.. 그래서 간병하던 여동생분이 그 병원에서 먼저 가시고 담에 말기였던 환자 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참.. 기도 안 차고 씁쓸해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왠지 불안해진다.
또 한 얘기는..
학교 친구의 얘기..
넘 허리가 아파서 G P 한테 갔더니 괜찮을 거라고 해서 돌아왔는데 한 달을 너무 아파하다가 다시 가서 너무너무 아프다고 큰 병원에 레터를 써 달라고 했더니 그냥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조금 귀찮아하시면서 정 급하면 Private에 가 보라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끝내 Private에 가긴 갔었는데 거기서 검사 나온 결과가 척추암이었다. 나도 제삼자한테 들은 거라 말한 사람이 좀 과대 표현한 거고 정말 레터도 잘 안 써 주었을까 싶지만.. 아마 레터 써 주고 기다렸다면 더 심각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Private이 조금 빠르긴 한 거니.
물론 의료보험이 너무 비싸서 아파도 약도 처방받지 못하는 미국에 비하면 영국은 정말 좋은 나라이다.
물론 NHS라는 시스템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의료시스템이 되기엔 당연히 무료이기 때문에 느리다는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적어도 영국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죽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유학생도 우리 친정 엄마도 잠시 영국에 여행 왔을 때 병원을 이용해야 했었을 때 국민이 아닌데도 영국에 입국을 한 이상 모든 치료와 약은 국민과 정말 동등했다.
아주 예전에 한 한국 유학생 부부의 아기는 아기가 영국에서 태어났는데 심장이 태어나서부터 왼쪽이 아닌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애기가 조금 크기를 기다렸다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고 돌이 갓 넘은 뒤 나이가 되어서 수술을 할 수 있을 때에는 잉글랜드로 전용 비행기를 이용해 심장 전문 병원으로 이동을 시키면서 아기 보호자의 호텔 비용까지 다 지원을 해 주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그 비싼 심장 수술비용도 전액 무료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영국의 의료 시스템.
너무 답답할 때도 많고 안타까울 때도 많지만 난 그래도 영국의 많은 부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농담 반 진단반으로 진짜 죽을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거나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그 속도가 장난 아니게 빨라진다고는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