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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몰랐던 당근의 맛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영국인들의 식습관과 편식의 문제점 파헤치기

by ziniO

20년 동안 몰랐던 당근의 맛



부모님께서 하시던 레스토랑을 이어서 운영하던 남편의 형 가게에는 오래된 단골손님이 참 많다. 그중 20년 된 단골손님의 이야기이다.

한 동네 같은 자리에서 30년을 훨씬 넘게 한 가게이니 웬만한 동네 사람들의 입맛은 형 가게 요리와 긴 시간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부모님과 함께 종종 어릴 적부터 즐겨먹던 음식이었고 또 본인이 결혼을 해서 자식들과 함께 즐겨먹는 음식이 되곤 할 것이다.


한 번은 나이가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시는 한 단골손님께서 형한테 찾아와 얘기를 하신다.


마틴, 이제부터는 내 음식에도 꼭 당근을 넣어줘요


사실 그 손님은 당근을 전혀 못 먹는 손님이었다.

단골 20년 손님이니 당연히 가게에서도 다 알고 항상 모든 음식에 당근을 빼고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한 번은 새롭게 일한 카운터 직원의 실수로 - No carrot- 라는 단어를 빼먹고 주문서를 주방에 넣었던 것이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아님 평생 못 먹어보던 당근을 처음으로 먹던 손님은 의외로 맛있다 느껴고 그때부터 본인은 당근을 못 먹는 게 아니고 그냥 어릴 때부터 안 먹은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 친구들을 보면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다.

20년 동안 당근을 안 먹거나 못 먹게 된 건 어린 시절 식습관의 잘못에서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뒤쪽에서 다시 언급을 하겠지만) 대부분의 서양이나 영국 부모님들이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존중이다.

굉장히 어린 나이에서부터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리고 그 선택을 굉장히 존중해 준다.

물론 참 좋은 점이고 많은 아시아 부모님들이 많이 본받아야 할 부분은 맞다.


하지만 그 모든 99개의 장점을 두고 굳이 1개의 단점을 얘기하자면 바로 음식에 대한 부분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 난, 당근이 싫어!”라고 말했을 때 아이는 그 당시 하필 삶은 요리로 먹은 당근이 너무 물렁하고 맛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아님 간식처럼 생 당근을 잘라줬는데 그게 목에 막혀서 당근에 대한 기억이 아주 좋아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면서 부모님이 여러 가지 고기들과 야채들을 골고루 먹기를 아이에게 권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의견을 말하게 된다.


“난 당근은 싫어요, 당근 대신 이것 주세요”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별 대수롭지 않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 그리고 억지로 권유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는 당근을 안 먹는구나 싫어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아이의 뇌 속에서 당근은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 되고 먹기 싫은 음식이 되며 나중에는 난 당근을 못 먹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때 나라면 어땠을까?

그냥 찌거나 삶은 당근을 아이가 싫어하면 볶아서 볶음밥에 넣을 수도 있고 동그랑땡을 만들어 당근을 포함한 온갖 야채를 다 넣을 것이다. 그리고 달걀말이를 하면서 당근을 넣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한 어느 음식에 대한 엘러지가 없는데도 특정 음식을 싫어하거나 못 먹는 건 어릴 적 잘못된 식습관에서 많이 온다고 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조금 싫어하게 된 재료가 있어도 다르게 접근을 다시 시도해 보면 의외로 맛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은 남편의 사촌 가족을 초대한 적이 있다. 이것저것 한국음식도 만들고 피자도 굽고 나름 다양한 요리를 준비했는데 친척의 아이가 먹을 음식이 아예 없던 점에 꽤 놀란 적이 있다. 그래도 와이프는 영국에서 태어난 아시아계이고 남편은 영국 남자였으니 더 다양한 음식을 접해서 음식에 대한 편견이 덜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의 식습관을 어떻게 가르친 것인지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여자아이가 피자에 토핑을 한 그 어떤 야채도 못 먹는 것이었다. 그냥 토마토소스와 치즈 외에 다른 재료가 추가되어있으면 아예 못 먹는다.

아니 안 먹는다.

놀라운 건 부모님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는 이것 이것만 먹는다고 딱 단정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피자는 치즈만 토핑이 된 피자였다. 김밥, 불고기, 피자, 유부초밥, 찹채 등 그 많은 음식들 중에 먹을 음식이 없었던 점이 난 너무 기도 안 찼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아이는 밥은 좋아한다기에 맨밥만 먹이던 게 생각난다. 그 당시 동갑내기였던 우리 딸은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가족들을 초대하거나 같이 식사를 하면서 느낀 점이 그랬다.


“우리 아이는 이것은 좋아하고 이런 재료나 음식들은 못 먹어요”

하고 부모들조차 다른 방법으로 많이 시도해 보지도 않고 아예 그 의견을 존중해 주고 그냥 단정해 버리는 점이 참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이었다.

그래서 영국의 아이들 중 아예 야채를 안 먹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 식습관과 건강의 문제점을 다룬 프로그램도 종종 볼 수가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보고 느낀 건 어른이 되어서도 편식을 하는 영국인들이 참 많은 것 같다.

하기야 동네 현지 친구는 심지어 어릴 때부터 평생 생선을 한 번도 안 먹어봐서 생선이나 바닷가에 사는 그 어떤 음식은 싫어하고 아니 싫을 것 같고 아예 못 먹는다고 하는 친구도 있을 정도니.


어릴 때부터 너무 의견을 존중해 준 나머지 그 음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까지 놓쳐버린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렇게 자란 어른의 자식들은 더더욱 다양한 음식을 접해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나 많은데.

이 부분들은 참 안타까운 것 같다.


프랑스나 스페인 친구들만 봐도 해산물이나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유독 영국인들이 편식이 심한 것 같다.

주변이 다 바다인데도 조개나 오징어 같은 해산물을 즐겨 먹는 영국인들은 잘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영국에서 가족을 위해 직접 만든 요리들. Instagram: alison__kit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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