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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Feb 19. 2024

나도 제주 한달살기 해보고 싶다

사람들이 가본 곳만 다닌, 나의 제주 사진들



나의 휴가지 1순위는 늘 제주도다.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늘 빠듯한 살림에 해외여행은 부담이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아직 어린 아이들과 해외여행 비슷한 느낌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제주도 뿐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세어봐야 하겠지만 결혼 후 열 번 정도 제주도를 다녀온 것 같다. 나의 제주 여행은 늘 비슷하다. 탐방보다 휴양에 초점을 맞춘다. 본시 에너지가 그리 많지 않은 우리 부부는 회사일과 육아만으로도 삶이 벅찬 상황이고, 휴가를 가게 된다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 아닌,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최우선이다. 돌아다니는 것은 최소화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숙소에 많은 비용을 할애한다. 그래서 내가 제주 관련해서 글을 쓴다면 그다지 특별하게 소개할 곳이 없다.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을 우리도 찾았다. '숨겨진 매력포인트' 같은 곳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우리는 3박4일 혹은 4박5일의 일정으로 제주 여행 플랜을 짜고, 숙소는 거의 대부분 남쪽 (중문) 에 잡는다. 그리고 제주공항에서 서쪽으로 차를 몬다. 해변도로를 바로 옆에 끼고 달리기 위해서다. 나의 경우 어릴적 부모님을 따라 바다를 가게 되면 무조건 동해였다. 동해바다는 늠름한 대장부같은 거칠음과 무서움이 있었다. 대학에 가고 친구들과 주로 찾은 곳은 서해였다. 어렸을 때부터 동해바다에 익숙했던 나는 '이게 바다야?'라는 실망감을 느끼곤 했다. 대신 서해는 갯벌을 비롯해 놀 것이 많은 곳이었다. 감히 가까이 가기 힘든 동해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는 처가가 있는부산의 바다를 보게 되었다. 남해는 동해처럼 거칠지 않은 따스함과 깊이를 갖고 있었다.


제주의 바다는 동해와 남해의 모습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 어떤 곳에는 에메랄드 빛깔의 아름다움을, 어떤 곳에는 검고 거칠은 남성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람에 따라, 날씨에 따라 이토록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제주의 바다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22, 중문



2014, 섭지코지


제주 서쪽에는 협재, 금능 해수욕장이 있지만 오래 머무른 적은 없다. 첫째날 지나가는 코스이고, 일단 숙소에 빨리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쪽 해변에 대한 아쉬움을 늘 갖고 있다. 언제 한 번 느긋한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을까. 휴가를 온 것인데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2013, 협재 해수욕장


그대신, 해변을 구경할 수 있는 카페에 잠시 머무르는 방법을 최근부터 택하고 있다. 좋은 전망에 잘 꾸며놓은 카페들이 속속들이 생기고 있는지라 고마운 마음이다. (대신 가격은 ;;;)


2018, 애월




한 번은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장노출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중문 해변에 내려갔다. 육아가 시작된 이후 스냅사진 외에는 제대로 된 출사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런 여행에서라도 잠시 시간을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허락은 받았는데 하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노출을 위한 셔터속도 보존을 위해서는 차라리 다행이지만 아무튼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삼각대, 어깨에는 카메라가방을 맨 채 어렵사리 촬영을 했다. 의도대로 되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럴듯한 장노출 사진 한 장은 건진 것에 만족한다.


2015, 중문 해변



어떤 경우든 망원렌즈를 챙겨가면 정말 많은 풍경들을 건질 수 있다. 사실 여행 전날 짐을 챙기며 계속 갈등하는 것은 '이 무거운 걸 어찌 들고갈꼬' 라는 고민이다. 그러나 들고 갔을 때는 언제나 그 보답을 받을 수 있었다. 석양을 받으며 저 멀리서 운항하는 배도,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바다색도 담을 수 있는 옵션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2022, 색달 해변


2015, 애월




앞에서 우리의 휴가는 쉼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어린이용 방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거의 매년마다 가는데도 늘 갔던 곳을 또 간다. 반나절 정도 바다를 멍 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스케줄은 점점 희망사항이 되어간다.


나는 남원읍에 있는 카페 서연의 집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추억 때문에 찾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풍경과 얼굴을 스쳐지나는 바람은 소박한 제주를 느끼게 해 준다. 정말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앉아있다 가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지겨워하는 아이들의 성화를 견뎌야 한다. 30분 내 커피 한 잔 다 마신 후, 다음 코스 출발이다. 아쉬운 마음에 창가에 앉은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 장을 담는다.


2018, 카페 서연의집


2018, 남원읍




제주도를 매력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화산섬의 특징인 현무암들이다. 까맣고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이 돌들은 육지인들에게는 신기한 것이지만 제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바다에서도, 농지에서도 가옥에서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제주의 트레이드 마크다.


2018, 제주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육지 사람 티를 마음껏 낸다. 차를 몰고 가다가도 앙증맞은 돌들이 꽃과 잘 어우러져 있으면 내려서 몇 장을 찍는다. 돌아와서 파일을 열어보면 별로 쓸만한 사진은 없지만 언제든 멈춰서서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자유 자체가 나에게는 힐링이다.


2013, 한림 어느곳




제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우도였다. 성산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면 진짜 조그만 섬이 나온다. 이곳에는 제주 토속적인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어 더욱 색다른 제주를 체험할 수 있다. 우도는 10여년 전 쯤 딱 두 번 가보았다. 당시에는 차량을 배에 싣고 가는 것도 가능해서 섬 한 바퀴를 도는데 무리가 없었다. 저속으로 좁은 해안도로를 달리며 보는 바깥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산호 해수욕장의 아름다움도 잊을 수가 없다. (소식을 들어보니 지금은 그런 옛모습들도 많이 없어졌고 섬 전체가 관광화되어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2013, 우도



2013, 우도





그래도 제주 하면 '말' 아니겠는가. 평소에 구경하기도 힘든 말들을 제주에서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라산 인근을 지날때 방목하는 말들이 나타나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섭지코지의 백마에게는, 내가 코앞에서 수십 장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었다. 성산 인근에서 아직 걸음이 미숙한 조랑말을 보듬어주는 어미 말도 기억에 남아 있다.


2012, 섭지코지

 

2015, 성산


말들이 많아서 그런지, 제주당근도 이름난 브랜드다. 아내가 유독 당근쥬스를 좋아해서 당근쥬스 잘하는 집들만 찾아다니기도 했다.


2017, 월정리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리는 곳은 함덕이다. (우리의 제주 코스는 늘 반시계방향이다) 그래서 내게 함덕 해수욕장의 이미지는 항상 '아쉬움'이다. 시간이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렌트카 반납 시간과 비행기 시간은 우리를 재촉한다. 이곳에 있는 카페는 정말 유명해서 자리 잡기도 쉽지 않지만 마지막 풍경을 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대기를 해서 시간을 알차게 채운다.


2017, 함덕



2017, 함덕


언젠가 김영갑 선생님의 제주 사진들을 보며, 나도 이곳머무르면서 그분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횟수로는 제주도에 꽤 많이 다녀왔지만, 나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갈증이 항상 남아 있다. 강하게 바람이 부는 날 한라산 인근에서 흔들리는 나무와 풀들 앞에 카메라 장노출을 걸어두고 싶다. 둘레길을 며칠씩 걸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 한겨울의 설경을 한라산과 함께 담아보고 싶다. 오름들을 하나씩 섭렵하여 제주의 전경을 바라보고 싶기도 하다. 아마 나홀로 한 달 살기를 하면 이런 것이 가능할 것 같다.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언제나 이루어질까?


올해도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아이들은 조금 컸지만 여전히 부모의 손길이 필요해서 이번에도 많은 장비를 꾸리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제주 여행 사진은 가족들로 가득하다. 아내와 아이들의 표정에는 일상에서 보지 못한 익살스러움과 행복이 스며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모습들을 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훗날 제주 한달 살기를 할 수 있을 때엔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족들의 사진들은 시간이 허락될 때 더 많이 찍어둬야겠다. 우리에게 너무나 행복한 곳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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