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아이폰을 필두로 스마트폰이 대중에게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면서 주목받았던 것은 카메라 기능이었다. 기존 폴더폰에도 카메라 촬영 기능이 있었지만 화질 측면에서 많이 모자랐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디지털 카메라가 여전히 필요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거듭되며 점차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웬만한 디지털카메라나, 심지어 DSLR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에는 화질을 이유로 스마트폰을 무시했지만 5년 전쯤부터는 상당부분에 있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은 사진을 촬영할 때 촬영모드(인물,풍경,정물,음식 등)를 재빨리 판단하여 디지털 자동보정을 실행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전 정의된 필터 기능으로 추가적인 후보정도 가능하다. 일단 이정도 수준만 되어도 웬만한 똑딱이(보급형) 카메라는 추월한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DSLR의 전유물처럼 간주되었던 RAW 파일 기능도 적용되어 유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의 발전이 DSLR 시장에 타격을 준 요소는 비교불가한 휴대성이다. 비록 화질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일상 스냅을 위주로 사진을 찍는 일반인들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을 선택할 것이다. 특히 가족들과 여행을 갈 때 스마트폰의 휴대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나도 최근 2년동안은 가족여행때 스마트폰만으로만 사진을 촬영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사진을 감상하는 플랫폼이 달라졌다는 것도 큰 변화이다. 과거에는 인화지, 10여년 전쯤에는 PC 모니터였다면 이제는 모바일 단말기 화면이다. 6~7인치의 작은 화면에서는 상세한 이미지 퀄리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요즘 시대에 굳이 PC를 켜서 사진 파일을 열어보는 사람은 드물다. "사진 확대해 봐. DSLR의 결과물은 달라."라는 주장은 이제 점점 힘을 잃어간다.
그렇다면 이제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는 설 자리를 잃은 것일까?
이 질문에는 나도 영향을 받는다. 언제부터인가고이 잠들어 있는 장비들은 1년에 3번 이상 빛을 보기 힘들다. 그렇잖아도 좁은 방구석에 커다란 제습함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사진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잘 나온다. 혼자 출사를 나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나도 카메라의 거품이 꺼짐과 함께 옛 장비들을 정리하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스마트폰 기능을 백분 활용하여 사진들을 촬영해 보았다. 결과에 따라 애물단지 장비들은 중고장터로 보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스마트폰은 얼마나 좋은 사진들을 뱉어낼 수 있는지 진지함을 가지고 테스트해보았다. 아래는 그 결과이다.
1. 놀라운 풍경사진
미세먼지 없이 푸른, 하얀 구름이 퍼져있는 하늘을 향해 스마트폰을 대면 자동으로 풍경모드 아이콘이 뜬다. 촬영하면 푸른 하늘은 더욱 푸르게 나온다. 폰으로 보는 결과물을 보면 이건 더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을 정도다.
2022, 강릉
2022, 강릉
노을이 지는 풍경도 마찬가지다. 타들어가는 것 같은 석양을 극적으로 표현해준다. 내가 포토샵이나 라이트룸으로 편집한다 해도 이정도로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우와! 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2022, 율동공원
2023, 부산 송정
불과 5~6년 전 모델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에서 처리하는 디지털 자동보정은 뭔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보정이 과하지 않다. 부각되어야 할 색상들이 강조되고 자연스러운 색감들이 어우러지게 연출된다.
2023, 부산
2023, 고속도로 휴게소 어딘가
2. 역광에 강하다.
스마트폰에도 고급 카메라 모델에나 탑재되는 강력한 HDR기능이 있다. 일반인 중에는 역광이라는 개념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피사체가 시커멓게 나오면 '내가 잘못 찍었나보다' 라고 생각할 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폰에서 알아서 광원과 함께 그늘진 피사체의 밝기도 조정해준다. 무심코 찍어본 역광 사진에 나는 또 한 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2023, 율동공원
3. 아웃포커스도 문제없다.
아마 적지않은 사람들이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한 이유는 얕은 심도, 즉 배경날림 때문일 것이다. 조리개를 활짝 열 수 있는 렌즈 하나만 구입하면 연예인 사진처럼 인물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옛말이다. 스마트폰 자체에 아웃포커스 기능이 있으며 초점만 잘 터치해주면 DSLR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얕은 심도로 결과물을 뽑아내 준다.
2023, 용인
4. 일반 렌즈로 불가능한 영역도 극복할 수 있다.
전문 카메라로 달 사진을 찍으려면 높은 배율의 망원렌즈를 구입하고 삼각대 등 부가장비들도 필수적으로 챙겨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스마트폰 100배 줌 기능으로 천체 망원경 수준의 촬영도 가능해졌다. 달 사진 전용으로 기술을 적용한 것인지, 절구를 찧는 토끼까지 보일 정도로 상세한 결과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2023, 용인
2022, 부산
5. 감성 사진도 얼마든지.
스마트폰은 쨍 한 사진 뿐 아니라 인스타에 올릴만한 감성적인 느낌도 얼마든지 만들어준다. 상황에 맞는 색감과 밝기를 스마트폰이 알아서 처리해주니 일반 사람들은 구도만 신경쓰면 된다.설령 만족스럽지 못한 색감이 나왔다 해도 간단한 필터링 기능을 적용하면 모두가 공감할만한 , 느낌있는 사진들을 찍을 수 있다.
2023, 부산
2022, 제주
2022, 두물머리
그래서 나의 선택은
이상하게 느끼겠지만, 이렇게 멋지고 장점 많은 스마트폰에 대한 나의 최종 결론은기존 카메라로의 복귀였다.
스마트폰은 분명 앞에서 말한 장점들이 많다.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는 제약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밀키트는 나같은 사람도 큰 무리없이 음식을 만들 수 있게 재료와 양념을 패키지로 제공한다. 밀키트의 주어진 재료와 조리법에는손 댈 것이 없다.찌개는 그대로 넣고 끓이면 되고, 구이는 그대로 프라이팬에 올리면 된다. 시간들여 요리한 결과와 비교해도 맛이 좋다.
하지만 내 아내가우리 가족에게 밀키트로 음식을 만들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내는 직접 요리하고 양념 만들어 내기를 좋아한다. 오랫동안 자신이 갈고닦은 노하우가 있는데 밀키트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밀키트에서 제공하는 양념도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밀키트는 큰 불편없이 한 끼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편리하지만, 자신만의 레시피를 갖고 있는사람에게는 굳이 필요없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일반 카메라와 스마트폰간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자동보정 기능은 편리하고 유용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해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제약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별도의 보정 필터 앱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슨 예술가나 된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지만, 표현의 측면에서는 2%, 아니 0.1%의 차이도 크다. 전문 사진사는 3~40만원짜리 저가 렌즈만으로도 일반인들이 좋아할만한 사진을 충분히 찍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수 십 배의 돈을 얹어 몇 백, 몇 천만원의 장비들을 구성한다. 고가의 광학 장비가 가격 차이만큼 효과를 낸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성비로 따지면 꽝이다. 그럼에도 그 작은 차이를 위해, 조금 더 원하는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그들은 아낌없는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작은 차이가 '좋은'작품과 '탁월한'작품의 경계를 지을 때도 많다.
2020, 용인 (85mm 렌즈)
나는 사진 전문가는 아니므로 이런 경지(?)까지는 논할 처지가 못된다. 그럼에도 나만의 생각과 세계를 표현하는데 스마트폰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설령 스마트폰이 색감, 심도, 감성 같은 요소들을 탁월하게 제공해준다 해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색감, 내가 원하는 심도 느낌, 내가 원하는 감성 스타일은 아닐 때가 있다. 사진생활을 하다 보면 배경흐림도 그 뭉개지는 모양까지 고려하게 되고, 색감도 훨씬 디테일하게 뜯어보게 된다. 스마트폰은 카메라 전문 영역에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긴 하지만, 전문영역을 대체할 정도는 아직 아니다.
2013, 올림픽공원 (28mm 렌즈)
얼마전 사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어떤 분의 인상적인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 DSLR, 미러리스 카메라의인기가 식었다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카메라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것 뿐이다."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2000년대 카메라를 향한 사람들의 인기가 이상할 정도로 특별했다. 카메라가 이렇게 대중들에게 활발히 보급된 적은 없었다. 웬만한 일반인들도 노출과 구도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DSLR과 미러리스의 인기가 줄었다고 말하기보다는 그것들이 원래 사진을 취미로 하던 이들의 선호 수준으로 복귀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2021, 양재시민의 숲 (85mm렌즈)
결론의 결론이다. 결국 카메라라는 기기는 여전히 고유의 활용 영역을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휴대성과 편의성, 그리고 카메라 기기에 준하는 결과물은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앞으로 더 인정하게 되겠지만 표현과 창작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카메라 기기가 필요하다. (다만 스마트폰은 탁월한 서브 카메라 역할은 할 수 있다. 여차할 때는 동영상 용도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끝내 방구석에 처박힌 장비들을 처분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새로운 출사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기술이 광학 기술을 압도할 그때까지는 이 거추장스러운 놈들을 계속 들고다닐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