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왕조의 종말과 이스라엘의 중흥
*표지그림 : 「엘리사의 지시에 따라 구원의 활을 쏘는 요아스 왕」, William Dyce
지난시간 우리는 이스라엘이 왜 분열되었는지, 그리고 떨어져나간 북이스라엘이 어떻게 실패의 길로 치달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아합이라는 왕은 바알 종교를 공식화했고 왕비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핍박을 가했는데, 이는 북이스라엘 국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커다란 위기가 됩니다.
아합은 선지자들의 경고에 잠시 양심의 가책을 받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욕심대로 나라를 다스리다가 아람과의 전투에서 죽고 맙니다. 그러나 아합 왕의 아들 요람이 아하시야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게 되고 변함없이 악을 행하며 나라를 다스립니다.
바알 신앙으로 물들어가는 이스라엘을 두고 보지 못했던 집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지자의 생도들'이라는 무리였는데요,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 신앙을 앞세우는 아합 왕조에 맞서 보수적인 이스라엘의 정신을 지키려는 저항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문화에 대해 극단적인 배타성을 보였습니다. 아합 왕 앞에서 이적과 기사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였던 선지자 엘리야와 뒤를 이은 엘리사는 그들의 리더 역할을 하였지요.
엘리사는 한 선지 생도를 통해 예후라는 장군에게 기름을 붓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예후는 쿠데타를 일으켜 요람 왕과 이세벨, 그리고 왕의 아들 70명을 모두 죽이고 이스라엘 안에 있는 모든 바알의 선지자들을 잔혹하게 숙청합니다. 이로써 바알이라는 신에게 통째로 잡아먹힐뻔 한 이스라엘은 일단 외면적으로나마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예후는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마자 호위병과 장교들에게 말했습니다.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을 죽여라. 한 사람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여라." 그리하여 호위병과 장교들이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을 칼로 죽이고 그 시체를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바알의 신전 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바알 신전의 나무 우상들을 끌어 내어 불태우고, 바알의 돌 우상도 깨뜨렸습니다. 그들은 바알 신전까지 무너뜨리고 그 곳을 변소로 만들었습니다. 그 변소는 지금까지도 있습니다.
이처럼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 종교를 없애 버렸습니다. (열왕기하 10:25~28, 쉬운성경)
그러나 예후의 숙청은 영적으로 사실상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해 급진적 개혁을 했지만 이스라엘을 진실하게 정화시키는 목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미 이방종교는 다양한 우상숭배를 방해받지 않고 성행시킬 정도로 이스라엘의 피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지요. 겉으로는 이방종교를 근절한 것처럼 보였지만 정신적으로 이스라엘은 토착신들의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겉만 바뀌었을 뿐 내면적으로 이스라엘은 아합 왕때의 정신을 그대로 갖고 있었습니다. 예후 왕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세운 금송아지 죄악으로부터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행운의 시대가 찾아옵니다. B.C 9세기 후반까지 북이스라엘은 다메섹의 아람이라는 나라로부터 극심한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 아람은 수시로 북왕국을 침략하여 비참하게 굴복시켰습니다(아합이 죽임을 당했던 것도 아람과의 전투였습니다).
아람의 유능한 장군 나아만을 아시지요? 나병에 걸린 그가 이스라엘에 병을 고쳐줄 유능한 선지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땅에 방문할 것이라는 서한을 보내자 이스라엘 왕이
"이 무슨 말이야? 우리가 제 병을 어떻게 고쳐? 우리를 침략할 명분을 만들려는거 아냐?"
라며, 두렵고 놀라서 옷을 찢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아람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고대국가 앗수르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며, 제국 앗수르는 북왕국의 가시와도 같았던 아람 왕국을 제압해버립니다. 게다가 앗수르는 거기에서 진군을 멈추고 이스라엘로 쳐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틈을 타 북왕국의 요아스 왕은 아람을 세 번에 걸쳐 격파하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오게 되지요. 그리고 앗수르 제국도 이후 50년동안 일시적으로 세력이 약화됩니다.
이런 행운의 정세를 틈타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유다 왕 웃시야의 활약과 더불어 남북 이스라엘은 솔로몬 시대와 거의 비슷한 국가 크기를 회복하게 됩니다. 무역이 재개되고 경제적 자원을 개발하며 국가적 부요가 찾아오는 제 2의 번영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스라엘의 분단 이후 북왕국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참된 국가를 세우기 위해 일어났지만 이방 종교에 나라가 통째로 삼키울뻔 했고 다메섹의 아람 국가로부터 지긋지긋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제국이라는 더 쎈 깡패(?)가 그들을 제압해 주었고 이스라엘 내부의 우상들도 예후에 의해 깨끗이 청소되었습니다. 더하여 여로보암 2세때는 솔로몬 때와 비견될 정도의 중흥을 이룹니다. 이스라엘은 서서히 옛 영광의 시대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상황은 어떻게 해석되었을까요? 아래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틀림없어.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신거야. 그들을 통해 원수들을 징벌하신 것이지.
'하나님의 나라'인 우리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러나 열왕기서 기자는 이와 전혀 다른 역사적 해석을 내놓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종이나 자유자나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도와 줄 사람은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열왕기하 14:25~27, 쉬운성경)
이스라엘이 부강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세우신 언약 때문이며, 그들을 멸하기 즐겨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했거나 믿음이 뜨거웠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죄악 가운데 허우적대는 그들을 도와줄 자가 없음을 보시고 고난에서 건지시기 위함이었던 것이지요.
오히려 이스라엘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영광의 시대를 다시 맞이하는 듯 했지만 사회의 내분은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허영, 공정하지 않은 재판, 물질 만능주의가 판을 쳤습니다. 종교 역시 탐욕을 기반으로 한 가증스러운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부터 믿고 있던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래와 같이 말이지요.
"고난 가운데서 우리가 드디어 일어섰다.
우리의 승리를 완성할 여호와의 날이여 어서 오소서!"
이러한 북왕국에 예언의 메시지를 던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화려함 이면에 있는 이스라엘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바로 드고아의 목자 출신 아모스 선지자였습니다.
▷ 2. 심판 아래 있는 이스라엘 국가(3) 에 이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