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에도 불구하고 폐허가 된 유다
※ 표지그림 : 「히스기야 왕」, 작자미상
지금까지 우리는 이스라엘의 분단 이후 북왕국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북왕국이 앗수르에 멸망한 이후 이제 남유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합니다. 앗수르는 제국의 위용을 떨치며 유다에까지 손길을 뻗치게 되는 것이지요.
북왕국의 멸망 이후 이제 모든 소망은 유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유다 역시 멸망을 눈 앞에 둔 것과 다름없는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두 왕국이 함께 존재할 때도 모든 면에서 북이스라엘이 부유했고, 남유다는 그에 비하면 시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도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이제 북왕국이 없어진 지금 남유다는 침공의 경로가 완전히 열려버린, 바람앞에 촛불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북왕국과 아람 연합군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사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앗수르에 붙어버린 아하스 왕을 보셨지요? 그 선택은 유다의 자유를 팔아먹은 꼴이 되었습니다. 앗수르가 유다를 구해준 대가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마치 IMF시절 우리나라 경제의 모든 부분을 간섭하도록 외부에 내어준 것처럼, 앗수르의 강압적인 종교정책이 예루살렘 성전 안에 도입되었습니다. 유다는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했지요. 백성들의 마음 역시 '강대국의 신'에 대한 호기심에 빠져 우상숭배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북왕국을 파멸로 몰아갔던 도덕적 부패는 남왕국 유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선지자 미가는 유다의 부패와 악행들에 관해 예언한 사람입니다. 그의 예언들은 아모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유다의 죄악상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유다의 권세자들과 지도자들은 가난한 자를 수탈하였고, 법정을 뇌물의 거래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사마리아가 천벌로 받은 불치병이 유다에까지 번져와, 기어이 예루살렘에 다다랐다. (미가 1:9, 공동번역)
... 야곱의 지도자들아, 들어라. 이스라엘 족속의 지도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마땅히 정의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선을 미워하고 악을 사랑했다. 산채로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그 살을 뜯어 냈다. 너희는 내 백성의 살을 먹고 있으며 가죽을 벗기고 뼈를 부러뜨리고 있다. 가마에 넣을 고기처럼 내 백성을 잘게 썰고 있다. (미가 3:1~3, 쉬운성경)
선지자들도 깊이 부패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례금을 받으며 금액에 따라 예언을 날조하였습니다.
... 예언자라는 것들은 돈을 보고야 점을 친다. 그러면서도 야훼께 의지하여,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재앙은 무슨 재앙이냐?" 하는구나! (미가 3:11, 공동번역)
앞선 글들에서 선지자들이 북이스라엘의 그릇된 여호와 신앙을 지적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공의에는 무관심한채, "여호와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천박한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있어 남유다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시온산 한 가운데에 여호와의 성전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민족적 프라이드는 도를 넘어 자신들이 우물 안 개구리 처지인 것도 모른 채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즉위합니다. 히스기야는 아하스와 완전히 다른 성격을 소유한 인물이었습니다. 앗수르에 꿇어 엎드린 아버지와 달리, 그는 민족주의적 독립노선을 선택합니다. 다행히 이 시기에 앗수르는 바벨론을 포함한 북방의 여러 민족들과의 전쟁에 힘을 쏟고 있어 팔레스타인에 신경쓸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민족의 굴욕적 상황을 타개하기 원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종교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미혹하던 우상과 미신들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그는 산당들을 없애고 돌 기둥들을 부수고 아세라 우상을 찍어 버렸습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때까지도 모세가 만든 놋뱀에게 향을 피워 섬기는 것을 보고 그 놋뱀도 부숴 버렸습니다. 그 놋뱀은 느후스단이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믿고 의지했습니다. 유다의 모든 왕 가운데서 히스기야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없었습니다. (열왕기하 18:3~5, 쉬운성경)
히스기야 이전에도 유다에는 선한 왕들이 간혹 있었지만 그들의 개혁은 그릇된 전통을 없애는 데 한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들보다 본질적인 여호와 중심주의의 개혁을 시행했습니다. 비록 통치 초기에는 신앙심보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개혁이었다는 평이 있지만, 미가와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의 후원을 받았던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즉위한 이후, 제국은 유다의 행동들을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B.C 701년에 앗수르의 군대들이 이리처럼 내려와 처절하게 유다를 유린했습니다. 46개에 달하는 요새화된 유다의 성읍들은 완전히 함락되어 앗수르의 땅이 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요청으로 달려온 애굽 군대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습니다. 예루살렘에 갇혀버린 히스기야는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을 산헤립에게 바치게 됩니다.
하지만 앗수르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유다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합니다. 거기까지 응할 마음이 없는 히스기야 왕은 결사항전의 각오로 맞섭니다. 상대가 될 수 없는 포위전 가운데 이사야 선지자는 왕에게 믿음을 가질 것을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아시리아 왕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소.
'그는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 성에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가지고 이 성에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토성을 쌓지도 못하리라.
그는 제가 온 길로 되돌아갈 것이며 이 성에는 결코 발을 들여놓지 못하리라. 이것은 야훼의 말이다.
나 자신을 보아서, 그리고 나의 종 다윗을 보아서 내가 이 성을 지키고 구원하리라.'"
(열왕기하 19:32~34, 공동번역)
그리고 그 예언은 실재가 되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앗수르 군인 185,000명을 쳐서 죽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사건을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으로 서술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앗수르는 철수하게 되고 이후 산헤립 왕은 암살당합니다. 여호와께서 참으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 앞에서 겨우 목숨만 건진 것 이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무사했던 것은 예루살렘 뿐이었고 나머지 유다 땅은 완전히 황폐화되었습니다. 자유를 위한 히스기야의 도전은 가상한 것이었으나 그 대가로 백성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그 어떤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과연 당신의 백성을 다시 일으키실까요?
극도의 고뇌와 절망이 뒤덮던 이 시대에도 과감할 정도로 놀라운 소망을 써내려간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정한 백성들과 함께 만드실 나라와 메시야 사상을 노래합니다. 그의 이름은 우리가 앞서 몇 번 소개했던 이사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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