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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Mar 10. 2024

이성애자의 출산율 0.65을 바라보며

비틀어진 웃음이 나왔다


*시니컬한 비판 폭격 주의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3년 4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5를 기록했다. 이는 이성애자 남성 100명 여성 100명이 있다면 다음 세대 인구는 65명인 것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1. 성소수자로서 드는 생각


  성소수자로서, 동성애자로서, 이성애 부부의 자녀로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불평등과 한국 사회를 탐구하는 사람으로서, 30살 한국 시민으로서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과거 브런치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대학생 때 한국의 젠더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알고 싶어서 사회학과와 철학과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알아본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젠더 이데올로기는 유교 음양론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문화적•관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글 : https://brunch.co.kr/@kcljh5067/4


  필자가 배운 바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는 이성애자 남성(양)과 이성애자 여성(음)이 만나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 자녀를 낳는 것만이 '정상가족'으로 간주해 왔다. 이 관념에는 다양한 가족 유형들이 배제된다. 한부모 가정도, 독신 남성/여성도, 조부모 가정, 성소수자 가정도 배제된다. 정상 가족 범위 밖의 가정들은 '저 아이는 아버지가 없어서 저런가 봐' 등 혐오와 비하의 대상이 되곤 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나름 개선되고 있다곤 하지만 문화적 관성은 강하게 남아있다.


  이런 젠더 문화 맥락 속에서 성소수자로서, 동성애자로서 이성애자들이 출산율 0.65를 기록한 것을 보며 감정이 복잡하다. 특히 온오프라인에서 이성애자들의 성소수자 혐오 맥락을 볼 때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들의 가치관을 적용해 보자면, 이성애자들도 아이를 낳지 않으며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사랑의 결과물도 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누가 누굴 혐오해?


  이번 통계청 발표자료를 바라보면서도 한 명의 성소수자로서 이런 비틀어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재생산을 하지 않는 이성애자들도 결혼권 박탈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성애자들 중에 자녀를 낳지 않으면서 성소수자 혐오하는 사람들은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것은 혼자만의 폭력적인 생각이며 블랙 유머이다.



2. 경제적 문제, 가족 구성권


  개인적으로 나는 자녀를 키우고 싶다. 혼자서든, 동성 파트너와 함께이든 아이를 키우고 싶다. 3년째 가족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아이들은 무척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나도 꼭 입양으로라도 사랑스럽게 키우고 아이를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소득적인 측면이나 자산적인 측면을 보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는 적지 않은 이성애자들도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성애자들은 가족 구성권 권리라도 갖고 있지 성소수자들은 가족 구성 권리도 없다. 그나마 미약한 가능성마저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국가와 한국 사회,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면 다양한 가정들도 포용할 줄 알아야 할 텐데 그런 비전도 없어 보이고 생각도 없고 국정철학 자체도 없어 보인다. (비단 저출산 문제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바보 같다 한들 정치인이나 보좌관들이 보좌하며 잘 이끌어야 할 텐데 다들 도대체 뭐 하는 거지?)



3. 한국 사회 돌아보기


  나는 출산율 0.65 쇼크 때문에 한국 사회를 한번 더 돌이켜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살면서 내 주변에 평소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았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은 시작된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숨 막히는 경쟁을 한다. 대학교 입시에 실패하면 실패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름 없는 대학을 나오면 인터넷에서는 지잡대 나왔다고 놀린다. (필자가 특목고를 다닐 때 학교 선생님께서 일반고에서는 SKY가 수원대 경기대 용인대라고 말하고 모두가 비웃던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다) 대학교를 넘어 취업 준비를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소명이나 흥미•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양극화되고 고도의 자본주의화된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고소득 직종 - 대기업이나 전문직 - 을 좇는다.


  최근에 명절에 친인척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의 친인척들 중에 적지 않은 분들이 전문직•준전문직이다. 의사, 수의사, 건축사 등... 그리고 타인을 살짝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친인척 분들을 만났을 때 오시지 못한 00 고모는 오시지 않았다. 문득 생각해 보니 나는 00 고모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몰랐다. 그래서 무슨 일 하시는지 내가 여쭤보았다. 다들 뜸 들이다가.. "마트 캐셔야"라고 말하며 다 같이 비웃었다. 나는 반자동적으로 "마트 캐셔가 웃기신 거예요?"라고 말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친인척들 욕해서 죄송.. 하지만 비도덕적 발언 욕 드실 건 드셔야 하지 않을까요)


  서열적인 사회, 자기가 가진 재화가 별 볼 일 없으면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일평생 농락당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누가 애를 낳겠냐고. 고속 성장 끝에 서열화•계급화가 더 심해지고 정신만 더 피폐해지고 자기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사람은 찾기가 어려워진 사회다. 그리고 전문직•고소득 직종에서 일한다고 한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억 겹의 노력을 해야 한다. (야근을 하든 영업을 하든...) 자신의 위치 밖으로 나가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갖게 되기도 한다. 양극화는 모두에게 불행인데 다들 모르는 것 같다.



4. 정치의 실종


  이 와중에 정치는 개판인 것 같다. 바보 대통령에, 자의식 과잉 여당 당대표, 복지부동하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 아무것도 안 하고 자신의 안위만 신경 쓰는 듯한 야당 당대표, 180석 가졌어도 뭘 해낸 것도 없어 보이는 야당 정치인들... 기후위기, 저출산, 식료품 물가 폭등, 과일 가격 폭등 등 산적한 문제들 속에서 정치인들이 답답한 것은 기분 탓일까 아니면 내가 멍청한 탓일까.


  얼마 전에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낼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나도 평소에 '나중에 세금 절반 떼가는 거 아냐~?'라고 친구들에게 장난치고 다녔는데 장난이 현실이 되었다. 이 정도면 그냥 진짜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영어를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도피성 정착에 죄책감을 가지겠지)


*관련 글 : https://www.mk.co.kr/news/economy/10932782


  한국은행은 지난 1월에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인구집중도를 OECD 평균으로 하락시키면 출산율이 0.41가 오를 것이라 했고, 청년층 고용률도 OECD만큼 올리면 출산율이 0.12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근데 그 와중에 GTX 건설로 도시화율 더 늘리고... 장난치는 걸까?


*관련 글 :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368/view.do?nttId=10081530&menuNo=201140




  미래가 두렵다. 곧 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떼간다면 어떤 빙다리 핫바지 중산층 이성애자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싶어 할까? 도시화, 수도권 과밀화를 줄이겠다는 정치인은 왜 나타나지 않는 걸까?(보통 소수 진보정당에 많아서 신문에 나오는 걸 보질 못한 것 같다) 인구 문제가 이토록 심각한데 정상 가족 바깥의 가족들도 법적 구성원으로 포섭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거대 양당 정치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의원님들 저는 성소수자이고 입양해서라도 애 키우고 싶고 이민 가고 싶지 않고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근데 법적 가족도 만들지 못하는 시스템이에요.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성소수자가 낯설고 별로이더라도, 이렇게 저출산인 사회에서 이성애자가 웃겨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아시는지...



※ 참고자료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31015102718071?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https://www.mk.co.kr/news/economy/10932782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368/view.do?nttId=10081530&menuNo=20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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