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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May 27. 2024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따르고

교육봉사, 대학교, 썸

#교육봉사


  가족센터로부터 3년째 방문하고 있던 가정을 마무리해 달라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센터 선생님께서는 다른 더 위급한 아동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셨다. 아동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나 현재 6학년이 될 때까지 오래 보았는데 다소 아쉽게도 이렇게 아이와의 만남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3년 전 2021년에 만났던 아이는 가정환경이 무척 열악했고 학습도 굉장히 느린 편이었다. 알파벳도 제대로 떼지 못했고, 구구단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아이를 가르치며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그래도 나름 스스로 노력하여 해 오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도 맛보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꼈다. 이게 바로 아이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고, 비록 나보다 17살이나 어리지만 나도 아이에게 이런저런 면모들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어제 3년 동안 만남을 지속했던 아동과 마지막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전날에 쓴 편지를 아이에게 주었다. 중고등학생이 되든, 성인이 되든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편지에 선생님 연락처를 적었으니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울기 직전처럼 얼굴이 빨개졌는데 울지는 않았다. 아동과의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하고 이별을 고했다.



#대학교


  며칠 전 내가 졸업한 대학교 근처에 볼 일이 있었다. 근처 방문한 김에 대학교도 오랜만에 방문하여 교정을 거닐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2년 3개월 정도 되었고 대학교 교정을 산책하지 않은지 1년 3개월 정도 되었는데 학교가 되게 낯선 느낌이었다.


  늘 걷던 거리에는 추억이 가득했다. 막학년 때 진로고민으로 가득 차서 거닐던 거리, 새내기 때 대학동기들과 함께 놀았던 장소, 술 취해서 고꾸라졌던 장소 등등...


  교정을 거닐다가 학교 뒷동산으로 가는 길을 보았는데 무척 반가웠다. 막학년 때 고민이 많아서 늘 뒷동산에 올라가서 경치를 보며 위로받았던 기억이 생각났다. 밤 12시에도 종종 올라갔었다. 부리나케 뒷동산에 올라가니 남산타워, 롯데타워가 보이고 늘 그러했듯 나를 위로해 주던 경치가 펼쳐져있었다.


  그런데 교정을 거닐 던 나, 뒷동산에 올랐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기분을 느꼈다.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내 기억 속 느낌으로만 존재한다. 지금과 살짝 다른 사람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사람은 늘 언제나 변화하고 현재의 나는 대학생이던 3년 전 나보다 3년 더 늙기도 했고 3년 더 성숙하기도 했다. 나는 나의 과거와도 이별했구나.



#썸


  최근에 썸 타다가 개같이 멸망했다. 내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내가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약간 집착처럼 보였던 것 같았다. 사람 사귀기 진짜 어렵다는 사실을 한번 더 느꼈다. (그만 느끼고 싶다.)


  주말마다 성당에 갈 때면 기도드리면서 '좋은 사람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 요즘처럼 만남과 헤어짐이 무척 쉬워진 시대에 괜찮고 좋은 사람이 어떤 것인지도 의문이긴 했다. 근데 그러다가 성당에서 문득 '그냥 서로 호감이기만 해도 천생연분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꽂혔던 터였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감정을 설레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무척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연하이고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서, 서울 사람들도 잘 모르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데려가고,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파는 음식점에도 데려갔다. 비록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이고 1주일에 만나는 횟수도 적었지만 내향형이므로 이해하고 맞춰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 관계도 개같이 멸망했다. 슬픔이라는 감정보다는 '허탈감'이라는 감정이 나를 지배한다. 왜 인간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하고, 왜 나는 항상 만남과 이별이라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며, 나는 가족을 잘 꾸려보고 싶은데 이것은 나의 너무 큰 욕심인 것일까 의문이며...




  모든 인간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동반한다. 친구든, 공간이든, 연인이든, 삶이든 모두 헤어짐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헤어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만남, 인연이 소중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잦고 많은 헤어짐이 개인의 삶을 채워간다면 허탈감과 개빡침도 개인의 삶을 채워나갈 것이다. 현대 사회의 자유는 축복일까 불행일까. 나는 현재의 만남을 생각하며 미래의 이별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세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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