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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Feb 02. 2024

친구들 덕분에 행복했던 시간들

30년이 다 되어도 여전한 친구들

  지난주 토요일, 고등학교 동창 5명을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이었으니  몇 년만 더 있으면 30년 지기가 된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 6명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갈려도,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도 참 끈끈했다. 그때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 근교 경기도에 거주했었기 때문에  나는 학구 위반에 걸려 내가 졸업한 중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가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강 건너에 있는 학교로 뚝 떨어졌다. 학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다행이었다.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입학했더니 나와 같은 지역에 살면서 비슷한 상황으로 이 학교에 배정받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같은 버스를 타고 하교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6명 중,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는 단 두 명이었다. 학교 바로 앞 아파트에 살던 친구 집이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 시간만 나면 거기로 몰려가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들을 싹쓸이하곤 했다.


  매일 밤 10시까지 야자하고 집에 들어갔다가 잠만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등교하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틈틈이 우리는 우리들만의 추억을 만들어 갔다.

  시험이 끝나면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 집에서 떡볶이도 해 먹고, 우리들만의 크리스마스 파티도 했다. 생일날, 방과 후에 종례 마치고 나오는 나를 옆 반 교실로 데려가 깜짝 생일 축하를 해 주기도 했다. 고3  4월, 중간고사를 일주일 정도 남겨 놓고 갑자기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 친구들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장례식장에 조문을 와 주었다. 고작 19살에....... 갑작스레 닥친 슬픔도 친구들의 위로 덕분에 잘 지나갈 수 있었다.


  5년 전쯤, 우리는 각자의 대학 생활과 연이은 결혼, 육아로 가끔씩 전화와 카톡으로 생사 여부만 물으면서 살다가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녀들이 어린 친구들이 있어 키즈 카페에서 만남을 시작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잠잠해질 때까지 모임이 중단됐다. 몇 년 사이에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다니지 않을 정도로 커 버렸고 온전히 우리만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고작 일 년에 두세 번 만나지만, 툭 터 놓는 솔직함과 편안함이 참 좋다.


누군가에게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는 고등학교 시절이 참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가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친구들 덕분이었다. 소소한 일상들을 우리들만의 특별한 기억으로 지금도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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