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한글 떼기 도전기(2)
혼자서는 어렵다, 함께 하는 힘
한 달 동안 지윤(가명) 이를 매일 남겨 30분씩 한글을 가르쳤지만, 쉽게 늘지 않았다.
'ㅣ와ㅡ '의 벽을 어느 정도 극복해 70% 정도 정확도를 보였을 때, ㄱ,ㅋ.ㄲ의 자음을 가르쳤다. ㅋ와 ㄲ의 발음을 헷갈려했다. ㄲ를 보고, ㅋ라고 읽기도 하고, ㅋ와 ㄲ를 같은 발음으로 읽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아이의 발음이 부정확했다. '화장실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세 번 정도 해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자시 다녀오게요.'라고 말해 처음엔 알아듣기 어려웠다.
몇 년 전, 결국 한글을 못 깨치고 올려 보냈던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도 그랬다. 모든 발음에 받침이 없어 어눌하게 말해 알아듣기 힘들었다.
한글이 참 과학적인 글자인 이유 중 하나가 발음과 글자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글은 정확한 발음을 그대로 글자에 옮겨 담기만 하면 되는데 지윤이는 발음 자체가 부정확하다 보니 글자를 읽는데도 어려움이 있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 달이 지날 무렵, 이렇게 매일 30분씩 하는 걸로는 일 년 안에 한글을 못 뗄 수도 있겠다, 싶었다. 1학기 때 한글을 다 떼고 2학기 때는 그림책을 읽으며 유창성 기르기에 집중하려고 했었는데 어려울 같았다.
지윤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일 한글 읽기 숙제를 해올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그냥 학교를 다니다 보면 저절로 한글을 깨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는 엄마에게 약간의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이가 그동안 교과서에 있는 문장 하나 못 읽으면서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있는 게 얼마나 곤욕스럽겠는지 설명하며 매일 한글 읽기 숙제를 하도록 당부했다.
엄마는 고마워하며 꼭 숙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특수반 선생님도 찾아갔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글자로 만든 낱말들이 적힌 책을 복사해서 가져갔다. 매일 국어, 수학 시간에는 특수반에서 공부하고 있기에 하루 2~3시간은 특수반에서 개별학습 중이라 아이와 함께 한글 읽기를 복습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선생님은 한 달이 넘도록 계속 아이를 진단 중이었다. 4학년 교육과정으로 지도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수준을 낮춰 오늘은 1학년 국어 학습지로 공부했다며 평가한 시험지를 보여주는데 가슴이 탁 막혔다.
학습지에 나온 문제 자체를 읽지 못하는데 어떻게 했나, 싶었다. 선생님이 문제를 읽어주면 아이가 듣고 문제를 푼다고 설명했다. 1학년 내용이라 문제 자체는 쉽다. 예를 들어, '기역'이라고 발음되는 글자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된다. 당연히 'ㄱ'을 찾는 건 지윤이에게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그 질문 자체를 읽지 못한다는 것, 문제를 선생님이 읽어주면 답을 잘 찾는다며 맞았다고 동그라미 친 시험지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겨우 감정을 누르고, 말했다.
"선생님, 제가 지난달에도 말씀드렸지만, 지윤이는 지금 이런 문제 푸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한글 깨치는 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해요."
선생님은 동의한다며,
"그래서 지윤이 데리고 낱말 받아쓰기도 하고 있어요."라고 답변했다.
지윤이는 통문자로 글자를 익히기 어려운 아이다. 자연스럽게 통문자로 한글을 깨칠 수 있는 아이였다면, 3년 동안 수없이 많은 글자들을 만나면서 글자를 못 깨칠 리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글을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1학년 교육과정을 따라가며 자꾸 글자를 접하다 보면 저절로 한글의 원리를 깨치고, '우리', '우산', '기우'에 나오는 '우'가 모두 같은 글자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지윤이는 다르다. 모든 '우'가 새롭다. 낱말을 읽을 때마다 처음 보는 글자인 것처럼 여기는 아이에게 통문자 교육은 그리 효과가 없다.
모든 복잡한 감정을 내려놓고 부탁드렸다.
"저 혼자 매일 가르치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요. 지윤이가 매일 특수반에 내려오니까 수업 전에 저랑 배운 글자 한 번씩 읽게 해 주세요. 선생님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은 그러겠다고 하셨다.
한 주 정도 숙제도 꼬박꼬박 잘해 왔고, 특수반에서도 매일 읽었다고 하더니 띄게 달라졌다. 띄엄띄엄 읽던 글자들을 좀 더 빨리 읽기 시작했다. 진도 나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모음이 어느 정도 정착되니, 자음을 붙이는 건 쉬웠다. 몇 주 만에 ㄱ~ㅎ까지 모든 자음을 붙여 만든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 혼자 했다면 절대 못 했을 거였다. 부모님과 특수반 선생님의 도움이 아주 컸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괜찮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