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소한 즐거움과 확실한 행복을 누리자
만고불변의 진리
중국 잠언집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天地之氣 暖則生 寒則殺 故性氣淸冷者
천지지기 난 즉 생 한즉살 고성기청냉자
受享亦凉薄 唯氣和心暖之人 其福亦厚 其澤亦長
수향역량박 유기화심난지인 기복역후 기택역장
모든 생명은 천지의 기후가
따뜻하면 살고 차가우면 죽는다.
그러므로 성품이 맑고 심기가 차가우면
받아 누리는 복도 얇고 차가우며,
오직 심기가 온화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만이 복이 두텁고
은혜와 혜택 또한 오래간다.
공감능력의 '호모 심파티쿠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인생이 행복해진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태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아름다운 향기가 넘치게 된다. 삶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가슴에서 우러나는 인정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값지고 귀한 것은 없다. 그게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도 있다. 곧 메마른 대지에 내리는 한 줄금 단비가 될 수도 있다.
요즘처럼 정서가 무디어 가는 세상에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온화한 마음씨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보라. 그러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서적 기조를 바꾸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는 ‘호모 심파티쿠스’Homo Symphathicus 시대에 살고 있다. 미래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제레미 리프킨의 말대로 ‘공감하는 인간’이 되었다. 공감하는 능력은 이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감성에서 비롯된다. 감정, 느낌, 생각, 철학, 정서, 마음을 함께 하는 자세, 그것이 감성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
물질만능시대에 정이 메말라 있다는 것은, 갈수록 우리 사회에 따뜻한 감성이 고갈되어 간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물질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정이 넘쳤다. 개인, 이웃, 조직, 사회의 구석구석에 사람의 향기가 배어 있었고, 인정의 물기가 촉촉했었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나라 곳곳이 도시화가 촉진될수록 정감은 어딘가로 묻혀 갔다. 특히 한국사람의 부의 상징이 된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설수록 인간적 감성은 타산적 이성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행복이 1위인 나라 덴마크가 자랑하는 생활방식인 '휘게'Hygge의 따뜻함과 편안함은 동화 속에서나 찾을 법한 이상향이 되었다. 애초부터 우리에게 휘게는 얼토당토않게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뭐가 다를까. 경쟁을 통해 손에 쥐어지는 우월감이나 특권의식에 찌는 체질로 함께 나누는 기쁨과 행복을 찾겠다니 말이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휘게는 물질이 우선이 아닌 의미와 가치를 중심에 두는 삶이다. 곧 내가 있는 것에서, 내가 가진 것에서, 내 가까이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자의 존재를 인정해주며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다독거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일상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작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적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휘게의 가치를 갈구하면서도 실제는 점점 더 그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하이터치 감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계산이 철저하고, 수리에 밝고, 논리가 명확해야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어버린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치판을 보자. 선거에서는 명철한 논리와 명징한 이성을 갖춘 사람이 유리해 보인다. 똑똑하니까. 그러나 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감성에 녹아드는 유세를 펼치는 사람이 더 승산이 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기에 그렇다. 각 후보자들이 다양한 공약을 발표할 때 그 내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전달되는 분위기나 어법이나 태도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나 ‘하이터치'high touch 감각은 매력 포인트가 된다. 이런 사람들은 우뇌형 사고에 뛰어난 능력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서 감성적인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지금 세상은 과거 좌뇌형 제조 생산 시대에서 우뇌형 창조 문화 시대로 발전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네트워크의 시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