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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현 Nov 15. 2023

도마뱀, 19

열일곱 겹

  서른한 살 딸아이가 제 몸통만 한 베개를 안고 부부의 침실을 찾았다. 잘 준비를 다 마치고 나란히 침대에 누웠던 나와 아내가 딸아이를 바라보자 내 큰딸 슬아가 배시시 웃는다.





  나 오늘 엄마아빠랑 잘래.





  귀여운 그 목소리와 접어 웃는 눈, 뽀얀 두 뺨이 어릴 때 그대로인데. 아내는 입을 함빡 벌려 소리 없이 웃으며 우리 둘 사이의 이불을 들추었다. 슬아가 꺄르륵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그 틈을 파고든다. 아내가 어린아이에게 하듯 딸아이의 가슴 위로 이불을 덮고 어깨 위를 꾹꾹 눌러 이불 틈으로 찬바람 들어갈 새 없이 다독였다. 얼굴을 맞댄 모녀의 얼굴이 꼭 닮아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가슴이 일렁였다. 아직도 이렇게 아이 같은데, 아직 내게는 두 줌짜리 아기인 내 딸 슬아는, 내일 우리 부부의 둥지를 떠나 제 둥지를 꾸리러 간다.


  내일은 큰딸 슬아의 결혼식이다.





-





  소소하게나마 반항기를 겪었던 아들 승호와 달리 딸 슬아는 늘 사랑스럽고 착하고 밝은 아이였다. 어마어마한 수재는 아니었으나 착실한 학생기를 거쳐 대학까지도 내 모교에 입학한 아이는 항상 우리 부부의 자랑이었다. 졸업하기가 무섭게 제 밥벌이를 했을 뿐만 아니라 첫 월급을 타던 날에는 우스꽝스러운 빨간 내복을 부모에게 선물하는 딸 슬아를 보며 나는 우리 어머니가 했던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 아이는 알아서 컸다. 어설픈 아비였던 내가 별 해준 것도 없이 키웠는데도, 슬아는 알아서 참 잘 자랐다. 부족한 나의 곁에서 늘 나의 행복이 되어주던 딸은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자 자랑이었다.


  그런 딸아이가 제 짝을 만난 것 같다며 남자를 소개하기로 했을 때,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남자를 데려와도 내게는 그저 도둑놈, 놈팽이겠지. 각오했던 일이었으나 사내를 만나는 주말이 올 때까지 나는 밤이면 밤마다 천정의 무늬를 눈에 아로새기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얼굴도 모르는 사내를 그토록 시기질투한 것은 알 까고 처음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딸은 태어나서 한 번도 나의 것인 적이 없었다. 아이의 영과 혼, 육 모두 날 때부터 오롯이 그 애 스스로의 것이었다. 살면서 몇 번인가 내가 딸아이의 것이라고 느껴본 적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 애는 항상 자유롭고 맑고 깨끗한 하나였다. 그러니 내가 내 것을 도둑맞기라도 한 듯 딸아이의 짝을 도둑놈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알면서도 왜 자꾸 이 못된 심보를 뿌리칠 수 없는가.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아버님! 김송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왜 딸아이는 이리 트집 잡을 데 없는 놈을 골라 와서 아비를 흡족하되 서글프게 하는가.





-





  슬아의 짝은 훌륭한 사내였다. 엄청난 미남은 아니지만 짙은 눈썹에 훤칠한 이목구비, 특히 넓은 이마가 깨끗하니 보기 좋았다. 단단해 보이는 턱이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든든한 사내로 보였고, 제법 큰 덩치에 두꺼운 흉통이며 어깨, 맞지 않는 서글한 눈웃음까지 트집 잡을 구석 없이 참, 괜찮았다. 슬아와 같은 대학을 다니며 연애를 했다 하니 나의 모교 출신인 데다, 직장은 나와 같은 계열의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어 안정적이기까지 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단히 훌륭한 사윗감이었다. 딸보다 두 살이 어린 것을 아내는 찜찜해하는 눈치였으나, 슬아는 '나보다 2년 늦게 퇴직해서 더 오래 벌 수 있다'며 그것이 큰 장점임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딸은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그 애의 눈을 늘 믿었다. 그렇기에 결혼을 반대할 생각은 없었으나 조금 투덜거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별 수 없이, 그러나 별 수 없는 것 치고는 아주 만족스럽게 슬아의 짝을 끌어안았다.





  상견례까지도 아주 순조로웠다. 비록 나는 긴장한 탓에 눈앞에 있는 비름나물만 가지고 밥을 먹었지만.





-





  엄마,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다시 지금, 어미의 겨드랑이로 파고든 딸아이가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음, 하고 잠시 고민하는 소리를 내었다.





  잘 생겼잖아.

  -이, 뭐야. 거짓말.





  그게 왜 거짓말인지 묻기 전 아내가 키들키들 웃었다. 그러자 딸아이도 아내와 비슷하게 킥킥 웃음을 흘린다. 우리 집 여자들은 종종 이렇게 내가 종잡을 수 없는 타이밍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나는 괜히 이불을 당기며 뒤척였다.





  아빠는?

  아빠? 아빠 왜.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했어?





  예쁘잖아. 라고 대답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물론 아내는 미인이지만, 그것은 내가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아니었다. 착해서, 성격이 좋아서, 손톱이 예뻐서, 목소리가 고와서, 코끝이 동그래서, 엄지발가락이 발가락 중 가장 길어서, 귓불이 넓어서....... 아내의 사랑스러운 점들이 마구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나는 그중 어떤 것을 콕 짚어내지 못했다. 으으음-....... 아까 아내가 뱉었던 것처럼 고민의 신음소리가 내 비강을 통해 빠져나간다.


  내가 왜, 어쩌다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더라. 나는 언제 아내와 인생의 한 자락을 나누어 가지기로 결정했더라. 나는 아내와 불타는 뜨거운 사랑을 한 적이 없다. 아내는 늘 평온하고 따스한 사람이었고, 우리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상대를 만나 적당히 결혼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적당히 그녀를 선택했었다고 대답하기엔, 그러기는 왠지, 그건, 아니었다. 왜였지, 언제였지, 언제였더라....... 기억의 끝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니 불 꺼진 거리가 보인다. 결혼 전 아내가 살던 동네, 그녀를 데려다주던 그 밤, 낯선 거리의 쌉쌉한 공기와 가로등이 막 켜진 조그마한 놀이터, 그 곁을 끼고 돌아 마감 시간을 넘기고도 불이 켜져 있던 그날의 그 꽃집. 만약 그날 그 거리에 그 가게가 열려있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 대답할 수 있다.





  운명이라서. 엄마가 아빠의 운명의 사람이라서 결혼했어.





  엄멈머! 아내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와 딸아이의 웃음기 섞인 비명소리가 이불 대신 내 얼굴을 덮었다. 내가 한 이야기가 웃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집 여자들은 역시, 언제 웃는지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웃음이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을. 나도 딸아이의 웃음소리에 내 웃음을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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