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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토끼 Jan 21. 2022

제5화 등산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희망이와 함께 산행하기

 제목과 달리 어릴 적부터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20대 중후반일 때,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행기 티켓을 끊어 제주도로 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때 당시 등산 초보였던 나는 한라산을 용감하게 오직 런닝화에 의지하여 올라간 적이 있었다. 프로 등산러가 나를 봤다면, 말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대담했다. 다행히 런닝화로 정상까지 등반했지만 내 발을 시작으로 종아리 허벅지까지 박살이 났었다.  온 몸에 파스를 둘러메면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파스의 향을 이기는 것 같았다.     




 2022년이 오면서 또다시 나는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희망이와 함께 정식으로 산에 가본 적도 없었고, 한라산 등반 이후에 산을 가본 적도 없었다. 간헐적으로 오는 등산 욕심으로 바로 나는 집 근처 가장 높은 산을 찾아봤다. 검색을 통해 알아낸 산은 바로 '북한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기도 하고, 등산코스도 매우 잘 되어 있기에 희망이랑 가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별명이 백추진이었기에(나의 성은 백씨이다.) 생각한 다음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북한산! 좋았어! 내일 가는거야!!" 

    

고봉산 모습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백추진이었던 나는 백주춤으로 하루 새에 바뀌었다. 전날 밤에 내린 눈으로 길엔 눈이 있었다. '지금 가면 북한산이 매우 미끄럽지 않을까?' 동전 뒤집듯 바뀐 마음으로 혼란스러웠다. 한라산 때 신었던 런닝화를 생각하면서 '난 등산화도 없는데 또 고생하는거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심란해졌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키고 아침부터 갈만한 산이 있는지 검색해봤다. 30분 검색 끝에 나온 산은 바로 '고봉산'. 고봉산은 북한산보다 훨씬 낮은 산이었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산인 것 같았다. 


올라가는 길에서 찍은 희망이 모습


 30분 만에 결정한 산을 가기 위해 챙겨두었던 짐을 챙겨 희망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집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입구에 도착해서 희망이를 쳐다보며 파이팅! 하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희망이는 거의 처음 산행이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내 걱정과 달리 희망이는 나를 보며 “빨리 가자!! 나 너무 신나서 좋아!!” 이러는 것 같았다. 너무 흥분해서 나무마다 인사를 하기 일쑤였고, 땅에서 젖은 흙 냄새가 나는지 평소보다 더 많은 냄새를 맡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냄새 맡는 희망이 모습


 똑똑한 희망이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 위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튼튼한 네 다리로 성큼성큼 가는 희망이 뒤에서 두 발과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나무를 잡으며 엉금엉금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려 훈련의 성과가 여기서 이렇게 빛을 보게 될 줄 몰랐다. 희망이가 잘 가는 모습을 보니 나중엔 더 큰 산을 가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도 생겼다. 

 

기다려주는 희망이 모습


 그렇게 엉금엉금 기어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까지 왔다. 정상에서 시내가 보이진 않았다. 200미터가 조금 넘는 산이라 금방 올라왔기에 도중에 간식을 먹거나 물을 먹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정상에서 바로 간식과 물을 꺼내 함께 나눠마셨다. 무거운 가방이 정상에서 조금 가벼워 졌고, 십여 분 정도 쉬다 함께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도 역시 희망이는 마치 이 산의 다람쥐처럼 거침없이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니 괜스레 같이 뛰어노는 다람쥐 가족 이 된 것 같았다.    


뭔가 소리난 곳을 보는 희망이 모습


 꽃피는 봄이 오면 산에는 봄의 냄새와 꽃 냄새로 가득할 것이다. 그 냄새를 맡으며 걸어가는 희망이를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산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까지 도착해 있었다. 차에 올라탄 희망이에게 나는 “희망아, 우리 다음에 목에 예쁜 두건을 두르고, 제대로 된 신발을 신고 함께 또 걸어가자.” 라고 말했다. 희망이는 뭘 아는 눈치인지 아니면 그저 새로운 곳에 와서 좋은 건지 웃으며 화답해 주었다.        

        

등산 후 남은 군고구마를 집에서 먹으려는 희망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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