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버킷리스트에 관한 이야기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라는 질문에
글쎄, 딱히 떠오르는 리스트가 없었다.
내가 당장, 혹은 앞으로 바라던 게 있었던가?
그저 매일 오늘 하루에 충실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 터라
미래의 버킷리스트 따위는 가지고 있는 게 없는 거 같은데..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괜히 쓸데없는 번뇌만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버킷리스트가 있다는 건 나의 삶에 이루지 못한 불만족 상태가 있다는 것이고
불만족 상태로 있다는 건 나 자신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생각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라이프,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주어진 것에 대해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서도,
....... 굳이 꼽자면
아, 영어 정도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는 것이 퍼뜩, 떠올랐다.
학교에서도 영어 공부만큼은 정말 어려웠던 거 같다.
교육과정 개편 전 이야기이긴 해서 완전히 옛날이야기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교과 과목 중 영어를 처음으로 배울 수 있었고
그때가 돼서야 나는 A B C 철자를 외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a b c d 대문자 소문자를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시험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유치원에서 이미 ABC 노래는 떼고 올라오는 시대로 봤을 때는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내 글씨는 악필이었지만 그래도 영어는 또박또박 쓰는 편이었긴 했었는데,
아직도 세 줄 연습장에 영어 알파벳을 쓰면서 외운 기억과 함께,
적는다는 느낌보다는 그린다는 느낌으로 쓰면서 외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영어는 정말 내 삶에서 생각 외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영향을 미쳤는데
학창 시절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학원이란 걸 가보면서
영어시간에 매번 나가는 1단원 메인 챕터 한 개를 통째로 외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도 기억난다. 제목과 첫 번째 문장이.
Lesson 8. New York , New York
New York city is the largest city and busiest city in the United States.
Several islands make up this city.
New York city is famous for many tall and wonderful buildings.
...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했는데도 기억하고 있다니.. 역시.. 주입식 교육의 힘이란..)
그때 당시 학교 영어 선생님께서는
모든 반 학생들에게 왠지 몰라도 영어책 챕터 한 개를 통으로 외워오라고 숙제를 시키셨고
약 두 달 정도의 시간을 주셨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영어 문단 챕터 전체를 외워서
학기가 다 될 때까지 개인별로 검사를 받게 하셨는데 그때 당시 내가 반에서 2등 인가로
선생님의 미션을 통과해서 반 친구들이
저 x 끼가 뭔데 저걸 통과하지??라는 꽤 경이로운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연히 학원 말이었고,
학원을 다니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고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공부를 해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영어 문장을 통째로 그렇게 긴 시간을 투여해서 외우고, 학원 선생님께 검사받고 등등..
이런 것도 처음 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한 번도 그렇게 집 밖에서, 집에서 공부를 한 기억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당시 12시가 넘어서까지 학원의 힘든 커리큘럼에 맞춰 수업을 받고
노란 학원 봉고차에서 내리는데
부모님이 봉고차 앞까지 마중 나오셨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어쩐 일로 그 새벽에 두 분 다 앞에 나와서
정류장 앞까지 오셔서 나를 기다리시던 모습에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던 기억,
내 존재에 대한 자부심이 뿜 뿜 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무튼 그 이후에 얼마 못가 학원은 여차여차한 사정에 그만두게 되긴 했지만
어떻게 공부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그때 터득했던 것 같다.
이후에 영어의 접점이 기억나는 건 고2 때였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숙제로 매번 영어 지문을 쓰고
영어 문제집에 있는 문제를 바꿔서 출제해보고, 셀프 답을 해 보라는 숙제를
매일 한 개씩 숙제로 내시고 종례 시간에 검사하셨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 이투스 영어가 처음으로 떠오를 때라서 하얗고 디자인도 예뻤던 그 문제집을
계속 풀고, 다시 문제를 내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매를 맞기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열심히 써 갔긴 했지만,
덕분에 영어에서 다른 건 몰라도 독해 문법 정도는
수능에서 내 기대 수준 정도의 성적을 거뒀던 것 같다.
물론 내신 성적은 영 시원치 않았지만 말이다.
영어와의 인연은 대학교에 가서도 이어졌는데
본의 아니게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지원하면서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영문학을 전공 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결과론적으론 그것이 내 인생에 상당한, 그리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물론 그때 당시도 내가 영어를 못 했기 때문에
해외 유학과 원어민 수업 등으로 다져진 여학우들에게 밀려
여러 가지 수모와 멸시와 자괴감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인문학은 취업이 안 된다는 그때 당시 공통 불변의 진리를 따라
군대를 다녀온 후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전공했고
경영학에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서
그 후로는 학교에서 졸업 전까지 장학금을 받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영어에서는 까먹고 경영학에서는 채워서 평점을 유지했던 기억이 난다.
이 영문과 생이라는 꼬리표는 꽤나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따라붙고 있어서 영문과 생이라면
당연히 영어는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영어는 뭐랄까, 나의 인생에서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을 하곤 했던 것 같다.
결국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다음 버킷리스트 같은 느낌으로
손 놓고 있던 전화 영어를 다시 신청했고,
가장 긴 코스, 주 5회 20분 과정으로 백 단위의 큰 금액을 질러 놓고
매일 밤 영어로 블라블라 떠들고 있는 신세다.
언젠가는 영어 네 녀석을 꼭 정복하고 말리라 이런 포부를 가지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벌써 9월이니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연도는 전화 영어로 마무리를 잘하고,
내년에는 강남 쪽 어학원에 등록을 해서
스피킹 스코어도 반드시 만점을 만들어 놓으리라는
장대한 포부를 품어 보기로 한다.
더 이상 영어가 내 발목을 잡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