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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Nov 22. 2021

수강 신청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용감하다

괴로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경험한 인류학 강의

수강신청을 시작한 이후로 나에겐 어떤 루틴이 하나 생겼다. 수강 신청 기간이 다가오면 그 누구보다 용감해지고 모험심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막상 학기가 시작되면 과거의 나를 말리지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Stay!) 그리고 이 루틴은 언제나 반복된다.


수강 신청 기간이 다가오면 강의들에 대한 정보들이 주변에 난무한다. 한국인 커뮤니티에선 어느 강의가 쉽다더라/어렵다더라, 어느 교수가 여유롭더라/깐깐하더라, 이 강의는 족보가 있다/없다, 저 강의는 한국인이 많이 듣는다/거의 없다 등등 첩보전이 따로 없다. 


나는 안 그래도 전공에서 한국인이 나 혼자 뿐이라 그나마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건 교양과목뿐이다. 전공 강의는 어렵든 쉽든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모두 필수고 모두 들어야 할 뿐. 선택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나의 연구와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면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수집한 정보들로 교양이라도 여유롭게 들으면 좋으련만 위해서 말했듯 그 시기에 난 누구보다 용감하다. 남들과는 다른 강의를 듣고 싶고, 어려워도 흥미가 가는 강의를 듣고 싶고, 깐깐해도 배울 것이 많은 교수에게 강의를 듣고 싶다. 주변에서 님아 그 길을 가지 마오 부르짖어도 난 나의 길을 간다. 


그 결과로 후회도 후회지만 당장의 버거움으로 눈물로 지새운 밤이 두 손으로 다 셀 수도 없다.  


한 번은 인류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아무도 듣지 않는 강의였고 그 때문에 강의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강의 타이틀과 설명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아주 용감하게 수강 신청을 했다.  첫 강의 날 놀랍게도 이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이 미어터지도록 학생들이 들어왔고,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앉는 학생들로 인해 돌아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다. 속으로 '이 강의가 뭐길래 이렇게 인기가 좋지? 우연히 대박 강의를 신청한 건가?' 하며 들떠있었더랬다. 


이 강의는 어떤 의미로 최고였고 다른 의미로는 최악이었다. 


강의는 과제 4개와 중간, 기말 프로젝트가 있었다. 과제는 2주마다 배운 내용들을 정리하고 실사례들의 예를 들어 제출하는 거였고 중간/기말은 강의 내용 중 한 주제를 가지고 더 다양한 시각과 예시를 정리해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팀플도 없고 시험도 없으니 나름 쉽다면 쉽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매 강의시간마다 진땀을 빼야 했다. 


강의 점수에 가장 높은 비중은 출석률이었다. 그냥 강의에 들어온다고 출석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강의 중 최소 한 번은 손을 들어 발표를 해야 했다. 


영어가 모국어이거나 익숙한 다른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강의는 없었을 것 같다. 아무리 바보 같은 질문이나 발표를 해도 교수는 능숙하게 받아서 다듬고 발표자의 발표의 방향성을 다시 잡아준다. 아무리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어려워도 몇 번 이 교수와 말을 주고받다 보면 용기가 생긴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영어였다. 이때는 미국에 온 지 2년째였고 떠듬떠듬 말을 할 순 있지만 엉망진창이고 리스닝도 상대방 말의 반도 이해를 못 하던 시기였다 (정말 영어를 못했다). 강의를 제대로 이해도 못하는데 그때그때 질문이나 발표를 하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더군다나 중간중간 교수가 학생을 지목해 질문을 할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질문이나 발표를 했을 때 영어가 너무 엉망이라 교수가 못 알아들을까 걱정이었다. 교수가 아무리 포장을 잘해준다고 해도 일단 처음부터 못 알아들으면 포장을 하고 싶어도 못하지 않나


매번 손을 들 때마다 괴로웠고 얼굴은 항상 빨갛게 익은 홍당무였다. 강의 전마다 예상 질문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질문들을 미리 만들어 갔고 예상을 벗어날 때면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발표할 문장을 쥐어짜 냈다. 


수업 중 영상을 감상하고 간단한 소감문을 낼 때는 애초에 영상을 이해 못 해서 소감문에 이미지로 보였던 '어떤 종족이 돼지를 구워 먹는다.'라고 써서 냈다. 다음 강의에서 교수가 익명으로 '돼지를 구워 먹었다는 소감문이 아니다'라는 말에 단번에 나인 것을 알고 울고 싶었졌었다. 


정말 최악의 시간이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듣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강의만큼은 정말 최고였다. 일단 강의가 시작하면 교수는 칠판에 몇 가지 단어를 적고 학생들에게 이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물어본다. 그 어떤 대답이 나와도 교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강의의 목표에 도달한다. 그 어떤 질문이 나와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줬으며 학생들의 질문으로부터 주제를 확장시킨다. 


강의 시간마다 괴로웠던 만큼 교수에 대한 경외심도 들었다. 이미 교수는 1주일 만에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웠고 한 사람 한 사람 발표할 때마다 발표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엄청난 경험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존중받으며 생각의 확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결과적으로 이 강의는 나의 모험심을 더욱 부추겼고 지금껏 수강 신청 시기가 오면 항상 용감해졌다. 모든 강의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강의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어렵고 힘들어서 후회는 해도 배울 것이 없었다거나 시간 낭비로 인한 후회는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을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선택한 강의에서 '아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라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내가 이 강의를 뭐하러 들었지?'라는 후회는 하지 않았다. 


추가로 1년 뒤 우연히 길에서 교수를 만났을 때 교수는 정확히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무서운-대단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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